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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찾아온 손님(1)

'무엇'이 되기도 전에 '엄마'부터 되어버린 나

by 존치즈버거


처음 아이를 낳고 남편과 내가 둥지를 튼 곳은 신도시의 어느 구석 동네였다. 우뚝 솟은 아파트들이 즐비한 그 도시의 어느 모퉁이에, 아담한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봄이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이면 매미가 짱짱하게 울어대고 가을이면 단풍이 지고 겨울이면 먼지 하나 없이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볼 수 있는, 도시 속의 절경이 가득한 그 동네가 있었다.


봄이었다. 꽃구경을 멀리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문을 열면 너나없이 어깨동무를 한 벚꽃나무가 보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 날은 딸아이의 배밀이를 축하하듯 벚꽃잎이 폭죽처럼 산산이 바람에 날렸다. 나는 아이를 안고 창밖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봐, 저 꽃잎들 좀 봐, 하고 속삭였다. 아이는 콧속이 간지러운지 연신 재채기를 하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 말도 트지 않았고 제 손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손가락을 빨거나 장난감을 흔들고 던지는 게 전부인 작은 생명체에 불과한데도 어쩐지 나를 바라볼 때면 세상의 모든 진리를 깨친 사람의 눈빛을 했다.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무언가 울컥하는 것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내 속의 불안이나 나약함을 읽힐까 부끄러워 눈을 감고 아이 볼에 입맞춤을 해댔다. 그리고 그 감정은 사랑보다는 죄책감에 가까웠다.


아이는 남편과 내 삶에 축복처럼 찾아왔지만 나는 미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늦은 편이었고 나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던 때라 육아를 하며 자아를 지킬만큼의 힘이 비축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묘한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일단 해보자, 처음 엄마가 되는 사람들은 모두 미숙할 테고 나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갑자기 불어난 몸무게로 고관절에 통증이 오긴 했지만 나의 임신 기간은 평화 그 자체였다. 입덧이 없었고 별다른 이상이 없어 아이를 임신한 초반 5개월은 집에서 왕복 2시간 반이 걸리는 학교로 통학도 했었다. 배도 별로 나오지 않아 아무도 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피로함이 몰려와 과제를 할 때마다 투덜거렸지만 공부가 곧 태교다, 라는 일념으로 어쨌든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나갔다. 태명을 짓고 아기용품을 구입하고 어떤 식의 교육을 할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간들 동안 나는 오히려 더 희망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겨울 어느 날 아이가 태어났다. 혹여나 아이가 뒤바뀔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남편은 카메라까지 챙겨 왔지만 내 뱃속에서 쑥 미끄러져 나온 아이는 남편과 판박이였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닮을 수 있나 신기할 정도로. 아이는 남편과 똑같은 곳에 보조개가 있었다. 마치 아빠 딸이랍니다, 하고 도장을 찍은 것 같았다.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자마자 고난은 시작이 되었다. 병동에 누워있는데 전화가 왔다. "산모님 내려오셔서 아이에게 젖 물리시겠어요?" "아니오. 제가 걸을 수 없어서......." 나는 전화를 끊고 가슴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제왕절개를 통해 아이를 출산한 나는 시큰하게 아려오는 수술 자국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자연분만을 한 산모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그래도 몇 시간이 지나자 아이에게 젖을 먹이러 신생아실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불안이 시작됐다. 내가 매우 나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혹시 내 아이만 병동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이라면 어쩌지, 내 아이만 분유를 먹고 있는 것이면 어쩌지.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산후조리원이 천국이라 한다지만 나는 일찍 여기서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방에 데려오면 괜히 눈물이 났다. 내 인생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내가 이 어린 생명을 제대로 보살필 수 있을까. 나조차도 생의 고난과 쓴맛에 괴로워하는 날이 한 두 해가 아니면서 이 아이에게 제대로 된 세상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나는 그곳에서 조리원 동기라는 이름의 교류는커녕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이 우리 집을 감싸 안 듯 푸르른 산으로 둘러진 절경을 코앞에 두고도 나는 한동안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몸은 삐그덕 거렸고 아이가 자주 보채지 않는데도 나 홀로 쫓기는 기분에 정신이 없었다.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 1시간 2시간씩 잠을 끊어 자다 보니 생존에 대한 두려움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모두가 이런 과정을 거치는 건가? 이렇게 괴로운데 왜 애를 낳으라고 하지? 아, 그렇구나, 자기들만 당하기 싫어서 그런 거구나.' 나는 완벽한 염세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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