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이름을 서투르게 받아 들고서 나는......
자존감 하나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나였는데, 아이를 키우며 매일 확인하는 나의 무능력은 나를 쓸모없는 인간인가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런 노력 없이 아이를 대한 것은 아니다. 육아서를 들여다보고 1등급 한우로 이유식을 만들고 프리미엄이라는 딱지가 붙은 과일로 아이의 미각을 일깨워주었다. 웬만한 상활에서는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려대며 비위를 맞추었지만, 내 속에서는 매일 커지는 어떤 말이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아이를 낳은 걸 후회해. 내 삶은 이대로 끝일 거야."
아이가 8개월이 되었을 즈음 모유를 끊었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했고 나는 학교에 복학했다. 끔찍하게 느껴지던 서울의 교통체증도 이상한 사람들이 이상한 논리를 들먹이는 시위들도 버거운 과제도 나에겐 해방이자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발걸음이 가벼웠고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가던 이전과 달리 유유자적 캠퍼스 안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아이가 보고 싶으면서도 나의 자유를 조금이나마 연장하고 싶은 아이러니를 매일 반복했다. 그리고 집 앞에 당도한 때에는 늘 되풀이하던 한 마디, "내가 엄마라니!"
문이 열리면 아이는 나를 알아보고 득달같이 안겼다. 볼을 비비고 눈을 맞추고 반가움의 고성을 지르고. 어쩌면 아이는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나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면 눈물이 핑 돌았다. 육아서에서는 그런 순간들을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 수 있는 일인가. 나는 지친 남편과 바통터치를 하고 엄마 노릇을 하다 밤이 되면 내 옆에 누운 아이를 예전보다 훨씬 더 꽉 안아주었다.
그런 하루들의 반복, 마지막 학기는 넘쳐나는 과제들과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이 나 버렸다. 늦은 나의 졸업식에 아이와 함께 참석했다. 아이가 낯선 환경에 울어대는 통에 결국 졸업장을 받을 땐 가족 없이 나 혼자였다. 남편은 팀을 바꾸어 다시 서울지사로 컴백을 했다. 간간이 아이를 봐주던 엄마도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미처 등단을 하지 못한 나에게 남은 것은 다시 제자리, 육아뿐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아이가 성장할 때마다 힘든 순간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첫 젖니, 첫걸음, 첫 단어가 부모에게 희열의 순간을 만들어 줄 때 아이는 까칠하게 돌변하고 만다. 그리고 그 순간을 넘기면 다시 안정기가 온다. 미끄럼틀 같은 곡선이 우리 삶의 그래프를 그렸다. 나는 아이의 감정 변화에 맞서 대치하기도 하고 먼저 지고 들어가 달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그동안 나는 틈틈이 글을 썼다. 남편이 이직을 했고 이사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모전에 낙방해도 크게 개의치 않은 건 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하는 다사다난 때문이었다. 좌절할 여유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나 또한 엄마라는 삶에 서서히 적응을 해갔다. 내면을 휘저어 버리던 고민과 투정들도 희미한 흔적만을 남기고 증발했다. 글을 쓰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아이의 스케줄에 나를 맞추는 것이 익숙해져 갔다. 사실 내가 품고 있던 소재들은 풍부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재를 어떻게 탁월한 이야기로 만드느냐이다. 나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무언가에 오래 집중할만한 공간도 시간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기엔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신이 내게 맡긴 짐짝처럼 생각하지 않기 위해 늘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주위에서 말하는 모성애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나의 무언가를 버려 가면서도 아이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이유는, 어떠한 아이라도 충분한 보살핌과 관심을 받아야 하며 보편적 도덕 규칙에 의거해 아이를 어떤 학대의 경험도 당하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나의 윤리적인 신념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내가 아무리 나의 욕구를 방해받고 하루에도 열두 번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참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였다.
나중에 내 아이가 나의 이런 감정들을 알게 된다면 아마 서운함을 느낄지 모른다. 아무 이유 없이 엄마라는 이유로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임으로. 그런 아이에게 내가 느낀 감정들은 일종의 기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이런 진실을 가감 없이 토해내는 것은 결국 내가 느낀 죄책감과 우울이 결국은 아이로 인해 새로운 희망으로 변모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나는 이제 내 아이를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엄마와 아이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이야기에 더 이상의 비아냥을 거두고 온전히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나이를 먹어 지혜로워졌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지혜로워진다면 아마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보기 좋았을 것이다. 나를 변화시킨 것은 다름 아닌 나의 아이다. 내 아이가 가진 특유의 사랑스러운 기질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이는 내게 불쑥 위안의 말을 건넬 때가 있다.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거나, 엄마는 정말 멋진 사람이라거나, 엄마는 참 똑똑해 같은 말들. 늘어난 자신의 어휘력을 자랑하기 위해 칭찬을 말을 빌리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런 아이의 찬사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쪽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이는 이제 제법 커서 내가 노트북 앞에 앉아 골똘히 글에 몰두할 때 내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아 조용히 숨을 죽인다. "엄마는 공부하는 중이니까 쉿."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사리 같은 손을 자기 입에 대고 먼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무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내게 나만의 시간과 침묵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은 기다림이라고 하는데 아이가 먼저 모범을 보이니 도리어 내가 배운다. 가끔 아이는 나를 흉내 내며 노트북 메모장에 알 수 없는 단어들을 타이핑한다. 그리고 입으로 그 단어들이 정말 무슨 뜻이라도 가지고 있기라도 하듯 진지하게 언어로 조합해 내뱉기도 한다.
나는 사실 내가 특별한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프로 작가라도 된냥, 노트북 앞에 앉아 탄성을 내지르고 무수한 단어들을 쏟아 낸다. 나는 아주 나이를 먹은 뒤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엄마가 원래 꿈이 작가였어." 그렇다면 어른이 된 아이는 왜냐고 물을 것이고, 나는 나의 포기를 감출 수 있는 그럴듯한 거짓말을 핑계 대며 그 상황을 모면하겠지.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나를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으로 알고 있는 내 아이에게 내게 무조건적이며 굳건한 사랑을 알려 준 나의 아이에게 최소한 도전하고 노력하였지만 실패한 사람이 되는 편이 낫지, 지레 겁먹은 도망자가 되고는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조금 서운함을 주더라도 내가 아이를 가졌던 처음의 두려움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 두려움을 고백하고도 나는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나를 다시 꿈꾸게 만드는 내 아이의 얼굴을 통해서이다. 내가 아이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배웠듯, 아이도 나의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실패를 맛보아도 도전하는 결기를 배우길 바란다. 그리하여 아주 나이가 든 후 우리 둘 다 서로의 삶을 긍정하고 여전히 응원할 수 있길.
아이라는, 내 생에 불쑥 찾아온 손님처럼 나를 불편하게 만든 그 존재는 이제 내 옆에 단단한 똬리를 틀었다. 나는 더 이상 불편하지도 않고 도망치지고 싶지도 않다. 다만 사랑하고 꿈을 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