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다
결혼 준비를 하며 커플들은 사상 초유의 전쟁을 벌인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난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계곡물 흐르듯 시원하게 속전속결. 그러나 남편과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한 공간에서 살을 부비고 사니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부분이 생긴다. 신혼 초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치약을 어디서부터 짜는지, 양말을 왜 뒤집어 놓는가 같은 사소한 문제를 두고 다툰다고 말하는 부부들을 보며 의아해했다. 아니 그게 싸울 거리가 되는 건가, 치약을 내가 밑에서부터 짠다면 너는 그냥 위에서부터 짜면 될 거 아냐? 어차피 치약은 손으로 조물조물거리면 모양이 바뀌는데!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자 그간의 우리 사이를 흐르던 인내심들이 조금씩 바닥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우리가 가진 인내심을 거의 아이에게 쏟아부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언성을 높이며 싸운 적은 없다. 우리의 싸움은 보통 나의 무표정에서 시작된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집안 주위를 쓱 둘러보다 수다맨이 지하철 노선을 읊어대듯 잔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그러면 남편은 핸드폰을 들고 조용히 안방으로 가 가구처럼 몸을 쭈그리고 내 기분이 풀릴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눈치를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상황을 면피하기 위해 일부러 더 불쌍해 보이는 모션을 취하는 것 같아 어쩔 땐 남편 뒤를 졸졸 쫓아가 잔소리를 할 때도 있다. 이러면 내가 내 기분에 따라 소위 말하는 바가지를 긁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실제로 남편은 어이없는 행위를 반복한다. 바로 앞에 쓰레기통이 있지만 자기가 쓴 치실을 꼭 바로 위 탁자에 놓아둔다던지, 핸드폰을 닦은 알코올 솜을 보란 듯이 주방에 놓아둔다던지, 깨끗하게 이를 닦고 침대 위에서 쭈쭈바를 먹는다던지. 놀라운 것은 내가 작심하고 치우지 않으면 3일이 넘도록 치실과 솜과 쭈쭈바 껍데기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나의 지적에 남편도 곧장 수긍하고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이 행동들은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나는 가끔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봐라.'는 메시지와 함께 그가 남긴 치실의 잔해를 사진으로 찍어 전송하기도 한다.
물론 나라고 매사 반듯한 것은 아니다. 나는 청소기 안에 가득한 먼지를 치우는 것에 게으르다. 다 마른빨래를 걷어 거실 한복판에 놔두고 한참 있다가 갠다. 그리고 갠 빨래를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놔두고 가는 경우도 많다. 남편은 묵묵히 그것을 치우면서도 꼭 내게 한 마디씩 한다. 뭐? 왜? 하는 반문에 고성이 묻어 나오면 다행히 소음을 싫어하는 딸이 나선다. 엄마, 아빠 조용히. 딸의 말을 잘 듣는 우리는 금세 입을 다문다. 하지만 빈정 사나운 기분은 금방 회복되지 않는다.
사소한 투정을 반복하고 함께하는 생활에 익숙해지며 우리도 연애 때의 설렘을 잊고 드디어 프렌드쉽이라 불리는 단단한 함선에 몸을 실었다. 사랑의 밀어보다는 재테크와 아이 교육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합리적인 사람이 좋다고 호기롭게 말하고 마치 나도 그와 같은 사람인양 굴었지만, 결혼 생활에서 일어나는 선택은 이성보다는 '기분'에 가까웠고 때로는 보편적 도덕 규칙을 거스르는 흥분을 보이기도 했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다툼을 벌이기로 했다. 합리는 개나 줬고 남편과 나는 서로의 바닥과 치부를 하나씩 내보이며 인간적으로는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지만 연애 시절의 그 감정과는 점점 더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남편과 대화를 하던 어느 주말. 시사적인 부분에서 논쟁 벌이는 것을 즐기는 우리는 그날도 서로의 논리를 주창하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논쟁은 논쟁으로 끝나야 하지만 흥분한 나는, 평소 남편의 좋지 않은 습관을 들먹이며 빈정댔다. 그러다 문득 내 행동이 과한 것 같아 바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서로의 잔을 부딪히며 흥분의 소강상태를 맞은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그런데 자기는 나한테 왜 화를 안 내? 나 가끔 굉장히 지나치지 않아? 그런데도 자기는 왜 화를 안 내?" 그러자 남편이 특유의 가는 눈을 뜨고 말했다.
"나는 널 사랑하기 때문에 화가 안 나. 네가 화를 내면 아, 쟤가 또 화가 났구나, 하고 생각은 하지만 그게 나를 화나게 하지는 않아."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새삼 내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과 결혼했는지 기억이 났다. 그는 언제나 배려심이 가득했고 다정하게 말했으며 내가 가진 단점들을 정확히 파악하고서도 모른 척해주던 사람이었다. 나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고 돌발적인 충돌에도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던 사람. 남편의 저 말을 듣자 그동안 내가 해댄 충동적 힐난들이 생각나 마음이 무거워졌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나는 그에게 얼마나 예의 없는 태도를 보였던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사람이 되자는 말을 그렇게 떠들어댔으면서 말이다.
그 날 남편도 아이도 잠에 든 밤 나는 홀로 책상에 앉아 우리가 연애 시절 함께 찍었던 사진을 꺼내보았다. 나는 연애를 시작한 첫날부터 우리의 연애가 900일 정도를 맞을 때까지 아침마다 의식처럼 하던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남편이 나에게 고백을 한 순간부터 연애가 진행되는 오늘까지 그 순간들의 주요 장면을 빠르게 머릿속으로 복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남편이 내게 했던 사랑의 말들을 언제나 기억했고 그 감정을 언제나 소중하게 간직하는 사람이었다. "널 좋아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서로의 조건이나 상황을 따지고 잴 것 없이 정말이지 순진무구한 아이들처럼 서로의 품에 와락 뛰어들었던 첫 고백의 날. 나는 그 말 때문에 남편을 영원히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토록 애틋한 마음을 선물해준 사람과 행복에 겨운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익숙하다는 이유로 나는 정말이지 아무 말이나 툭툭 뱉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연애 때처럼 가만히 그 시절을 다시 복기해보았다. 그리고 900일이 너머 결혼을 준비하며 우리에게 있었던 일들부터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지금까지 모조리. 우리를 만나게 해 준 학교 앞을 다시 찾아 이루어진 눈물의 프러포즈와 결혼 생활 틈틈이 내게 건넨 쪽지들. 생각해보니 그랬다. 결혼을 하고서도 남편은 변함이 없었다.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기념일을 잘 못 챙기는 나를 대신해 우리의 기념일마다 꽃을 건네거나 맛있는 간식을 사들고 오기도 했다. 달라진 생활의 방식만이 있었을 뿐 남편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내 옆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다툰다. 남편도 여전히 자기가 쓴 물건을 제자리에 놓지 않고 쓰레기를 잘 버리지 않는다. 나 또한 청소기 비우는 것을 잊고 빨래 널기와 개키는 것에 소질이 없다. 다만 그러는 와중에도 남편과 내가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였고 흥분을 잘하는 내가 삶의 균형을 나름 잘 맞추고 사는 것이 결국은 나를 견뎌주고 이해하는 그가 있음을 안다. 나는 이제 기분이 상할 때마다 남편이 내게 해 준 말을 떠올린다. 사랑하기 때문에 화가 나지 않는다는 말. 그것은 무슨 마법처럼 내 마음의 풍랑을 잠재운다. 생활의 고단함이 우리를 덮쳐와도 우리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다정한 구원. 일상의 단조로움을 견디게 만드는 따스한 손길이 분명하니. 그러니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조금 더 용기를 내기로 한다. 삶이란 알 수 없어 이렇게 사랑을 말하는 우리에게도 어느 날 종말이 찾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던 오늘은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 그대로 임을 아니까. 나는 오늘도 남편에게 전해 줄 사랑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사랑을 말한다고 우리 삶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이 말은 믿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