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 돌보기
인생의 첫 번째 고비를 넘으며
나의 탄생은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세상 밖으로 나와 처음 만난 엄마는 아들을 애타게 목 놓아 기다리던 여인이었다. 당신 아들을 큰 집에 빼앗기고 '내 찍시' 아들을 낳고자 고군분투하는 불쌍하고 나약한 여인이었다. 호적상 남의 집 자식인 큰아들을 실제 당신 삶에서조차 다 빼앗겨버릴까 불안 초조한 마음에 말썽쟁이 아들의 고집 생떼와 줄다리기하며 힘겨운 시집살이를 참고 참을 수밖에 없는 가련하고 한 많은 여인이었다. 내가 처음 만난 세상은 예측불허의 불안하고 무서운 폭풍우 같았다. 엄마 자궁 안에서 따뜻한 양수 바다를 떠다니던 그때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폭풍우였다. 세상은 두려웠다. 따뜻한 엄마 품에 안겨 있으면서 아기를 응시하는 눈빛들의 마음도 모르겠고,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어떤 희로애락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기, 나에게 세상은 불안하고 두려운 존재였다.
남동생이 태어나고 엄마 품에서 밀려난 어린 나는 억울했다. 가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밀려난 채로 외로이 혼자 울고 있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 꿈 분석 상담을 하면서 그때서야 깨달았다. 꿈속에는 형제자매들이 타고 있는 자동차가 나온다. 그 자동차에 내 자리는 없다. 앞에는 남동생이 앉아 있고, 뒤에는 언니들과 오빠가 타 있다. 다섯 명이 탈 수 있는 자동차이다. 내가 앉을자리는 없다. 차 문을 열고 서서 '어어 내 자리는 없네?' 속으로만 의아해한다. 문을 열고 문 밖에 서 있는 채로 난감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낑겨 타야 하나? 혼자 남아야 하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낑겨 타지도 못하고 차 문을 그냥 닫지도 못하고 멍하니 자동차 안을 바라만 보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꿈 분석 상담 진행자는 “왜 아무 말도 안 하셨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나의 자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나는 경쟁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누군가와 동등하게 겨루어야 한다면 그 경쟁이 싫어서 그만 둘 핑계를 찾았다. 먼저 양보하고 다른 자리로 찾아가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다. 자신의 것을 찾는 것이 욕심이고 이기적이 될까 봐 두려웠다. 어려서 “니가 젖 다 빼사 먹어브난 자이 저츠륵 못먹언 말라시네(너가 그렇게 젖을 다 먹어버렸으니 동생은 저렇게 엄마 젖을 못 먹어서 몸이 말랐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어른들의 이 말 한마디는 내 뒤를 따라다니며 무의식적 죄책감을 키웠다.
나는 놀이치료사이다. 두 아이를 데리고 놀이실을 찾아온 직장여성 엄마를 만났다. 여섯 살 딸은 손 잡고 남동생은 품에 안고서 놀이 치료실로 들어오는 엄마를 보며 어릴 적 동생과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놀이실을 찾아온 엄마의 호소는 동생이 태어나고 누나가 어린아이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동생만 예뻐한다며 동생을 시기하고 질투한다고, 자기 장난감을 만지는 동생을 주먹으로 쥐어박으려 하고, 동생을 때리지 못하게 말리면 엄마는 맨 날 동생 편만 든다며 울상 짓는다고 했다. 아이를 놀이치료실로 데리고 온 엄마는 누나가 왜 그러는지 아이 마음을 모르겠다고 답답하고 속상해했다.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바쁜 엄마이다. 엄마는 일과 육아로 지쳐있다. 엄마 자신을 돌볼 시간은커녕, 일터에서 돌아와 두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고 늘 시간은 없다. 놀이실에서 누나는 유모차에 앉은 어린 아기를 돌보며 자기 양육 놀이를 한다. 어린 아기를 돌보며 재미있고 뿌듯하다. 마치 자기 자신을 돌봐주듯이 그렇게 엄마 역할을 하며 아이는 기쁘다. 남동생도 따라 들어와 유모차로 달려든다. “안 돼, 내가 할 거야.” 누나가 남동생을 밀치고 유모차 하나를 두고 서로 경쟁을 한다. 아이 엄마는 당황하여 두 아이를 떨어뜨려 놓는다. 누나는 결국 남동생에게 유모차를 양보하고 도화지에 유니콘을 그리며 혼자 놀고 있다. 동생이 태어나고 엄마 품에서 밀려난 어린 누나, 누나는 슬프고 속상하고 서럽다. “나도 아직 어린데. 나도 아직 엄마 돌봄이 더 필요한데. 엄마는 맨날 동생만 이뻐해. 엄마는 동생 편만 들어.” 어린 누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 같다. 내가 어린 누나의 마음을 반영해서 말해주니 누나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떡인다.
마치 어릴 적 나와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는 여섯 살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미운 세 살, 엄마 품에서 밀려난 어린 나도 그러했을 것이다. 외롭고, 쓸쓸하고, 엄마 품에 안길 나의 자리는 없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때 어린 나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이다.
어렸을 적, 엄마는 늘 바빴다. 제사나 명절, 집안의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큰집으로, 친척집으로 일하러 새벽 걸음에 가야 했다. 제주에서는 일가친척들을 괸당 또는 방상이라고 한다. 방상 일을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은 일가친척들에게 은근 따돌림받거나 무시당하곤 했다. 지금으로 치면 왕따, 은따같은 그런 것이겠지. 엄마는 늘 “방상에 일나믄 가봐산다(일가친척들 일이 있을 때는 가봐야 한다)”라고 했다. 엄마는 방상의 일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꼼꼼히 챙기시는 부지런하면서 알뜰살뜰 일 잘하는 그런 아주망이었던 게다. 엄마는 방상의 일을 보러 갈 때면 그곳으로 밥 먹으러 오라고 했다. 남의 집에 가서 밥을 먹는 게 싫었다. 방상에 일이 있을 때 제주에서는 똥돼지를 잡는다. 그것으로 몸국도 하고, 고기를 썰어서 고기 선반도 돌리고. 잔치 때마다 하는 제주 음식, 어른들은 맛있다고 환장하는 그것들이 나는 싫었다. 맛도 없었다. 고기 냄새도 싫고, 모양새도 징그럽고. 어떻게 저런 걸 맛있다고 먹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잔치집에서는 고기 선반 하나 더 챙겨주는 것을 마치 단골손님에게 사은품 하나 더 주는 것처럼 “이거 하나 더 줨수다양”하고 사람들에게 선심 쓰며 건네주었다. 어린 나는 어른들 그런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사탕 하나를 더 주지' 생각했지만 좋아하는 사탕은 귀하고 싫어하는 음식들만 넘쳐났다. 집에는 먹을 것이 있지만 내게는 먹을 것이 없었다.
나이 오십이 되어서 여성 자서전 쓰기 릴레이를 한다. 자서전 쓰기는 치유 글쓰기 카페에서 카페지기 J 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나이 마흔에 예술치료대학원에 입학하고 심리 공부를 하면서 상처 받은 어린아이의 상처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긴 애도의 시간들이 있었다. 상처는 아물면서 피부에 딱딱하게 딱지가 앉았고, 치유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그 딱지들을 떼어내려 한다. 딱지들이 떨어진 자리에는 새 살이 돋아나겠지, 기대하면서. 자서전 쓰기는 상처 떠나보내기, 수많은 감정들과의 작별 의식이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다짐하면서 자서전 쓰기를 한다.
어른이 되어서 글을 쓰다 보니 이제는 다른 사람들 상황도 보이고 그들 마음도 이해가 된다. 방상의 일 보러 다니며 바쁘고 분주하고 제 자식 돌볼 여유가 없었을 엄마, 겁 많고 소심하면서도 고집은 세서 데리고 다니기 힘든 어린 동생이 성가시고 귀찮았을 작은언니의 마음도 알겠다.
나도 바쁜 엄마였다. 큰딸 리나는 동생 안나를 데리고 다니기 귀찮아했다. 리나는 온 동네를 누비며 싸돌아다니며 노는 반면에 안나는 집에 혼자 있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안나는 집에서 혼자 책을 보며 놀았다. 혼자가 편하다고 혼자 집에 남아 엄마가 남기고 간 천도복숭아를 먹으며 책을 보고 있던 어린 나에게서 작은 딸 안나의 모습을 본다. 안나도 그랬다. 혼자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보고 또 보고. 달달 외워서 엄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웃고 좋아했다. 안나도 어린 나처럼 혼자여서 좋기도 하고 그러면서 외롭고 쓸쓸하기도 했을 것이다.
혼자서 노는 어린아이, 어린 나를 가만 바라본다. 아이는 얼마나 불안하고 무섭고 두려웠을지, 얼마나 서럽고 서글펐을지. 마음 짠하니 안타깝고 아프다. 예민하고 겁 많은 어린아이에게 세상은 얼마나 무서운 것 투성이인지. 내향적인 사람은 감각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라고 한다. 외부 세상이 자극적이고 불안하니, 무서운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어린 시절, 어린 나도 그랬을지 모른다.
내가 그런 아이였는 줄 예전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민함을 몸속 깊은 곳에 꼭꼭 숨겨 감춰두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 작은딸을 키우면서, 나를 닮은 작은딸 모습 속에서 어린 나를 보고 느끼며 알게 되었다. 오래된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작은딸은 어려서 소심하고 겁 많고 민감해서 엄마랑 떨어지는 것을 무척 불안해했다. 엄마 아빠 빼고 다른 어른들은 모두 불편하다고 했다. 소시지, 베이컨 등의 가공육은 먹지 못하고 냄새조차 싫어했다. 딸을 보며 생각했다. "아아, 나도 그랬었는데." 늦게서야 알았다. 어린 시절의 나도 예민하고 내향적이고, 그래서 세상에는 무섭고 두렵고 불편하고 싫은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것을. 그러나,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때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다.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어른이라면 그 어린아이 울음 달래주고 안아주고 도닥여 주었을 텐데. 그때 타인으로부터 받지 못한 위로와 돌봄, 내가 나에게 해준다. 이젠 나두 진짜루 컸으니까. 이젠 내가 어른이니까. 어른 나가 어린 나를 달래준다.
“그랬구나. 그땐 그랬었구나. 그랬던 거구나.”
“놀랬겠구나. 무서웠겠구나. 많이 놀랬지?"
"괜찮아, 이제 괜찮아. 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