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제삿날이었다. 엄마는 소쿠리 한가득 음식을 담아 머리에 이고 큰집으로 갔다. 집을 나가면서 점심은 큰집에 와서 먹으라 했다. 나는 큰집에 가기 싫었다. 큰집 변소에는 아직도 똥돼지가 있기 때문이다. 똥돼지가 있는 변소는 무섭다. 양다리를 벌려 두 발을 놓아야 하는 발판이 흔들거릴 때가 있다. 흔들거리다가 자칫 잘못하면 똥통에 빠질까 봐 겁난다. 저 멀리 있던 똥돼지가 언제 어느 순간에 달려들지 몰라 불안하다. 똥돼지에게 공격당할지도 몰라 두렵다. 어렸을 적에는 우리 집 변소에도 똥돼지가 있었는데, 몇 해 전에 아빠가 변소 바닥에 시멘트를 바르고 미장을 해서 개량 변소로 바꾸었다.
점심 때가 되어서 나는 큰집에 갔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고, 집에 갈 때까지 참지는 못할 거 같고. 오줌 누고 싶다는 나에게 엄마는 소리를 질렀다. 참지 말고 얼른 변소 가서 일 보고 오라고 했다. 혼자서 변소 가기를 불안해하는 어린 나에게 엄마는 혀를 차며 “으이그... 다 큰 년이 혼자 오줌 누러도 못 가냐?”라고 혼꾸녕을 냈다. 엄마에게 혼쭐이 난 나는 훌쩍이며 울다가 오줌을 참지 못하고 변소로 뛰어갔다. 양다리를 벌리고 흔들거리는 발판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오줌을 누다 말고 "엄마야!!" 소리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똥돼지가 나의 그곳을 공격하려는 듯 달려든 것이었다.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부엌까지는 들리지 않았나 보다. 부엌 가까이 가서 힐끔 보니 엄마와 어른들은 음식 준비로 분주했다.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신작로로 나가는 긴 골목길 벽에 기대어 서서 혼자 울었다. 아무도 달래주는 사람 없었다. 혼자 훌쩍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똥돼지의 습격에 놀란 가슴, 어린 나는 어떻게 마음을 달랬을까. 혼자서 무얼 했을까.
작은언니를 따라서 바닷가에 물놀이 갔다가 물에 빠질 뻔한 적이 있었다. 그 후 다시는 바닷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해수욕하는 여름바다 대신 겨울바다를 좋아했다. 골목 길에서 무서운 개에게 쫓겨 물릴 뻔한 적도 있다. 작은언니랑 뒷골목길 친구 집에 갔다가 혼자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후에 그 집에 놀러 가지 않았다. 언젠가 한번은 개에게 손가락을 물렸을 때, 엄마는 된장을 발라 주었다. 손가락에 바른 된장 냄새도 싫었고, 된장 묻은 손가락은 창피했다.
백중날, 가족들은 모두가 물맞이하러 강천천으로 간다고 하는데, 나는 물가에 가기 싫었다. 엄마는 어린 딸을 혼자 집에 남겨두고 가기가 불안했던지, 같이 가지고 어르고 달래고 설득했다. 끝까지 안 간다고 고집을 부리자, 엄마는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서 천도복숭아 세 알을 남겨주고 갔다. 혼자서 평상에 누워 천도복숭아를 먹으며 어린이 잡지 <새소년>을 보았다. 잡지 이름은 왜 소녀가 아니라 소년일까 생각하면서.
국민학교 1학년 등굣길. 혼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은 멀고 무서웠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작은언니는 동생을 데리고 다니는 게 귀찮은지 친구들이랑 먼저 가버렸다. 동생인 나는 어쩌다 한번 따라가면 귀찮게 징징거리기나 하고, 겁 많고 고집 세고 달래기도 힘들었다. 언니가 친구들이랑 산딸기 따먹으러 선반내 다리를 건너 숲 속으로 갔을 때, 나는 풀벌레를 보고 겁먹고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무섭다고 울었다. 언니는 괜히 따라와서는 친구들 앞에서 창피하게 그런다며 핀잔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선반내 다리를 건너다가 왼쪽 슬리퍼 한 짝을 잃어버렸다. 물 속에 빠져버린 것이다. 울면서 한 짝 슬리퍼만을 신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라리 혼자인 게 좋았다. 집에서 혼자 책을 보는 것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책을 보면서는 현실을 잊을 수 있었고 책 속 세상에는 현실과는 다른 재미와 흥미가 많았다. 혼자가 편하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