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안에서도 나를 잃지 않기

너와 나 사이, 건강한 경계선 긋기

by 두콩아빠

“The greatest masterpiece of man is to know how to live to purpose. Lend yourself to others, but give yourself only to yourself.” — Charles Cotton, The Essays of Montaigne


“타인에게 당신을 빌려주되, 당신 자신은 오직 당신에게만 주어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양보해 왔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갈등을 피하기 위해 말을 삼키고,

상대의 불안을 대신 짊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종종 나의 생각은 뒤로 밀렸고,

나의 감정은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았습니다.


사랑은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가감이 곧 흡수는 아닙니다.


몽테뉴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빌려줄”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관계의 존재론에 대한 선언입니다.


나는 나로 존재할 때만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는 사랑이 아니라 의존이 남습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경계는 더 섬세해야 합니다.

멀리 있는 사람과는 자연스레 거리가 생기지만,

가까운 사람과는 의식적으로 중심을 세워야 합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상대의 감정은 나의 책임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타인의 감정은 그의 삶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가 모두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공감은 함께 서는 일이지

함께 무너지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을 지우면서까지 유지되는 관계는 언젠가 반드시 균열을 맞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오래 버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십 이후의 사랑은

더 이상 나를 증명하기 위한 무대가 아닙니다.


젊은 날에는 사랑을 통해 나의 가치를 확인하려 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이미 많은 시간을 살아왔고, 사랑했고, 상처도 받았습니다.


이제 사랑은

나를 더 잃는 일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내가 나로 단단히 서 있을 때

상대의 불안에 휘둘리지 않고,

상대의 기대에 잠식되지 않고,

상대의 기분에 따라 나의 가치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중심이 있을 때 사랑은 가벼워집니다.


이제는 설득하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나로 서 있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사랑 안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거리를 두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존재를 지키겠다는 약속입니다.


나는 나에게 속해 있고,

당신은 당신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 전제가 분명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리에르 부티크 : 경계를 세우는 내면의 자리]


설명하려 애쓰기보다, 스스로를 이해하십시오.

모두에게 이해받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이해하면 사랑은 훨씬 단단해집니다.


상대의 감정과 나를 분리하십시오.

상대가 힘들다고 해서 당신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상대의 불안이 당신의 책임은 아닙니다.

공감하되, 중심은 지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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