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19. 경기도에서 19.12.18. 서울에서 19.12.29. 창원에서 19.12.31. 당진에서 20.01.12. 부산에서
경찰은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고로 경찰은 죽는다. 위 논법으로 알 수 있는 건 경찰이 죽는다는 사실이다. 허나 경찰이 인간이라서 죽는다는 결과적 사실 외에 거기에 이르게 된 각각의 원인이나 과정까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작년 연말부터 올해까지 경관 5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자살했다. 아니 죽음에 이르렀다. 명백한 타살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형식상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맞지만 기사 내용을 보면 무언가에 의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식으로 읽힌다. 죽음의 원인을 온전히 개인에게 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경찰청 자료 등을 인용한 언론 보도를 보면 경찰 자살 원인을 직장 내 스트레스와 가정불화로 인한 우울증으로 꼽곤 한다. 사실은 사실인데 이는 온 국민 자살 원인의 전형처럼 소개되어 온 탓에 경찰이 왜 죽는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는 '그러한 부류'정도로 받아넘기게 한다.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누군가는 몹시 슬프다. 누군가는 안타깝다. 누군가는 일상처럼 덤덤하다. 친밀도에 따라 죽음에 대한 볼륨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모든 인간이 존엄하듯 모든 죽음도 존엄의 크기는 같아야 한다고 인식하며 그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최근 죽음에 이른 여러 경관을 생각하며 그 원인을 다시 생각해본다. 즉 직장+가정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자살을 우울증에 의한 것으로 귀결 지을 수 있는 건 삶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어 우울하든 우울해서 살고 싶지 않아서든 우울이 정점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은 왜 우울한가?
경찰의 원칙이나 본질을 잃어버려서 우울하다
살짝 언급했지만 경찰의 자살을 '자살'이 아닌 '죽음에 이르게..'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과정이 순수하고 온전하며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보기 어려워서다. 죽고 싶음이 내부에서 발현되기도 하겠지만 외부의 어떤 영향력 안에서 찾는 게 합리적인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얼마 전에 있었던 아름다운 아이돌들의 아픔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러므로 외부로 시선을 돌려보자면 늘 용의 선상에 있는 계급장과 승진을 향하게 된다. 경찰에게 승진은 단순히 일 열심히 한 보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그 기회가 자주 주어지기는 하겠으나 그것과는 별도로 어떤'시간'과 어느'공간'에 있느냐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것을 '운'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기회는 평등, 절차는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말이 유행이다. 다석 유영모 선생이 한 말이라고 네이버에서 보았으나 출처는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사람이 우선'이라는 대통령의 국정철학과도 맥을 같이 하는 이 말은 근대 이후 인류의 보편적 가치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가 만연한 대한민국의 경찰에게 luck_승진은 평등, 공정, 정의와는 어딘가 모르게 물과 기름처럼 들떠있는 모양새다.
경찰의 존재 이유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면 국민의 헌법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인류 최고의 가치, 국민이 원하고 시민인 경찰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고 경찰 활동 기준의 제1의 원칙이자 덕목. 이 정도의 고고한 보물을 수호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그들 스스로가 자부심으로 만개해야만 옳다.
유감스럽게도 저 덕목들이 경찰 개개인에게 없다. 왜냐하면 승진이 도적질해 가버렸기 때문이다. 계급은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전능한 존재로 활동한다. 기회도 절차도 결과도 정의롭지 못하지만 승진은 그렇다고 믿게 만든다. 승진을 했으니 곧 정의라고 말이다. 경찰의 우울증은 이렇게 시작된다. 시민이든 자신이든 그저 승진의 도구가 된다.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그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보고 겪는다.
그런데도 단순히 성공과 실패의 문제로 가볍게 다룬다. 인간으로서 존엄이나 자존감에 심각한 타격을 받아도 그렇다. 전능한 계급이 믿게 만든 선하고 정의로운 프레임에 반발했다가는 조직 원칙에 반하는 부적절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서다. 그래서 가치를 지키지도 못하는 경찰 그리고 그 가치가 훼손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억압한다. 이로써 만성 우울증 월드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경찰의 일하는 방식이 인간적이지 못해서 우울하다
욕설ㆍ폭력ㆍ상해ㆍ사망과 같은 위험이 경찰 주변 곳곳에 깔려있다. 잘못 밟으면 터진다. 두렵다. 거기에 밤샘 근무로 지독한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있다. 경관들의 신체와 멘탈이 정상 궤도에서 이탈해 있다는 방증이다. 이는 경찰이기 전 건강하고 행복해야 할 인간의 기본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정황도 된다.
범죄를 예방하고 검거하는 일, 위반자를 지적하고 단속하는 일, 난폭한 현장에서 고성을 내며 진정시켜야 하는 일, 만취자의 고약한 냄새를 맡으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만 할 때, 이 모든 것들이 정신과 육체를 폭행당하는 일이거나 셀프 폭력 하는 일로서 문명사회의 합리적이고 감성적인 인간의 활동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경찰은 우울하다. 그것이 죽음을 재촉하고 있는 거다.
경찰이 자살에 이르지 않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급여나 승진 기회는 좋아지고 있다는데 왜 경찰은 죽음을 멈추지 않을까. 아니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허상인가. 아니다. 그것은 사실이다. 허나 더욱 교묘해지고 세련된 경쟁시스템은 승진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의심 없게 한다. 영생을 얻기 위한 신자들의 넋을 탈탈 털고 있다. 첨단 장비ㆍ공기청정기가 보급되어 일터는 쾌적해져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칠흑 같은 공포 안에서 날밤 까는 것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울함도 함께 간다.
꼭 우울하지 않더라도 이래저래 사람은 죽는다. 하지만 우울해서 죽는다면 그래서 그 의심되는 원인이 있다면 우리는 자살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방법도 동시에 유추할 수 있다. 즉 비정상. 우리가 놓여있는 처지가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개인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조직의 문제라고 생각해야 답을 찾을 수 있다. 경관들을 대하는 모습, 그들의 업무 환경과 그 내용들이 너무 거칠고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사실 말이다.
- "스트레스·가정불화" 자살 경찰관 늘어…5년간 평균 20명 (연합뉴스.17.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