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역사에 획을 그을 만한 사건, 기소독점주의에 심각한 균열이 일어나는 일이 벌어졌다.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 공수처법의 통과로 설마설마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그렇다고 검찰이 황권에서 완전히 내려온 것은 아니다. 제후국 경찰과의 관계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마저도 성큼 다가오고 있다.
진짜루 형소법 개정마저 이루어지면 검찰은 수사에 관해서 경찰과 협력해야 한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경찰서에 올 일 없었던 그들이었지만 이제 공수처라는 곳에 가서 조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지경에 이르며 국민 전체가 깨닫게 된 것은 삼권분립의 민주공화국이 아닌 전제군주 검찰 아래 있었다는 사실이겠다. 큰 값을 치렀다.
기형 경찰
한번 풀어져 버린 역사의 시계를 되감기 어렵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답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쓰나미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지금도 그 흐름은 중심에 있다. 어찌 되었든 이 세상은 그리고 우리의 인식은 옳고 그름의 치열한 논의 속에 변화하고 있다.
생각하건대 검찰 개혁의 추동은 경찰의 노력이 아님을 단언한다. 애씀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나 마침 검찰 개혁의 주도권을 쥔 정권을 만났고 흐름에 편승한 수준이라고 본다. 경찰을 폄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권에 대하여 그렇게 일관하지도 조직적이지도 뜨겁지도 못했다. 엄밀히 따지면 현장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과거에 저질러온 업보 탓이겠지만 경찰은 조직적으로 나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이러한 억압이 대 국민 인식을 바꾸어 놓기도 하였으나 정권과 언론의 눈치를 보며 수사권 주장이 들락날락한 효과로 이어졌다. 한편 억눌려 있던 힘의 공격성은 내부를 향했는데 특히 현장 경찰을 짓누르는 형태로 발현되었다.
물건을 계속 밟아보라 어찌 되는가. 그렇다. 상상한 대로 얕게 눌리든 터지든 기형적 형태를 띠게 된다. 그 대상이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끔찍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리라. 나는 경찰 조직이 기형적 형태를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정의를 추구하는 정의롭지 않은 조직’이 되어버린 원인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의롭지 않은 절차적 정의
알려진 대로 경찰은 조직의 색채를 바꾸려 하고 있다. 경찰 정신은 백범에게서, 경찰의 활동은 좀 더 디테일한 물리력 행사에 관한 기준과 회복적 경찰활동 및 절차적 정의라는 것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물론 전자와 후자들은 상호관계를 맺고 있고 이러한 조화가 제대로 어우러진다면 괜찮은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
말하자면 방향성은 옳다. 이유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물리력 행사 기준은 공권력 행사 대상인 시민의 인격을 고려한 절차다. 회복적 경찰 활동은 피의자의 진정 어린 반성과 피해자의 용서 나아가 관계자들의 화해를 구상한다. 절차적 정의는 단적인 예로 단속 과정에서 피단속자에게 단속의 취지를 이해시켜 자발적 동의를 구한다.
이러한 경찰의 움직임은 이제 곧 법적 인정을 받게 될 1차 수사기관이자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경찰기관으로서 새 옷을 갈아입기 전의 몸 씻기라고 이해했다. 그러므로 동의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정의를 실현하여 자리 잡게 만들 주인공들을 움직이게 하는 방식은 비인간적이며 폭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