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지? 지지리도 못난 친구놈 덕분에 지리산 등반 공친 사건.
아무튼 이래저래 열흘정도 흐른 어느날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폰 메모 앱을 열어보니 사찰 앞에서 썼던 글이 눈에 띄더라.
공기 좋고 물 좋은데까지 가서 이런 걸 썼나 싶었는데 아마도 궁상 맞은 친구놈과 녀석을 둘러싼 인간들이 그날 하루 펼쳐주었던 스펙타클한 짓거리 덕분이 아닌가 싶더라.
친구놈은 성정이 차분했지만 부당한 것에 앞에서는 나만큼이나 눈감지 못했지. 그래서 경찰만한 일이 없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더군. 나역시 엄지 손을 치켜주었지.
사법시험에서 연거푸 물을 마시고 있던 내가 경찰시험을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나보다 앞서 경찰옷을 입은 녀석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경찰 되었다고 좋아라 하던 녀석의 표정에 생기가 사라진 건 1달이 채 지나지 않았어. 막걸리 사준다고 광장시장으로 부르던 놈이 빈대떡엔 손도 안대고 막걸리 한통을 몇 모금에 들이켜더니 그러더라.
"안정성만 생각하는 기계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직장이야. 대신 정의나 자유같은 건 포기해야해. 너는 어느쪽이냐?"
그때는 그 뜻을 이해 못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잘 알고 있지.
녀석과 나는 루소ㆍ칸트ㆍ맑스를 읽으며 10대 20대를 보냈어. 레드제플린ㆍ도어스ㆍ퀸을 곁들이면서...
친구들 대부분이 가난했고 사회는 그런 자들에게 인색하잖아. 그런 때 그 냥반들은 인생의 오아시스나 나침반이었지. 궁상맞아 보여도 자칭 우리는 이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자였던 셈이지.
"당연히 자유와 정의지."
녀석은 그 뒤로 그런 말들은 입밖에도 꺼내지 않고 정말 열심히 자신의 몸을 돌렸어. 정말 기계라도 된 것처럼. 그리고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경로를 통해 올라가고 있는 중이지.
나는 녀석이 정의나 자유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간신히 붙잡고 있는 게 보이거든. 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정의나 자유 따위가 무슨 소용있겠어. 타협이라는 말로 치장하지만 디게 없어보여. 가치의 본질이 바뀌어 버린거잖아. 그런데 뭘.
나는 대한민국의 시민의식 결여의 원인을 비이성적이고 비민주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국가 기관을 보면 감잡을 수 있다고 봐. 그런 의미에서 경찰은 적절한 사례가 되어 줄 수 있지.
힘있는 극히 소수의 자가 대다수 조직원을 대하는 모습과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절대 다수를 보면 아무리 부정하려해도 더욱 강하게 긍정하게 되고 말거든.
그럼 뭘까?우리의 낭만을 빼앗은 건... 무엇이 사랑이 넘치고 불의에 눈감지 못하며 자유로운 생각으로 하늘을 헤엄치던 한 인간을 버튼 하나 달린 로봇으로 간단히 리셋해 버렸을까.
뭘까?
ㆍㆍㆍkantrolㆍㆍ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