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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Jan 02. 2019

발칙한 순경 타락한 昇進을 생각하다




경찰학교에 입성하는 순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스스로에게 의무를 부여한다. 의무를 부여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숭고하다. 자유롭게 스스로 해야 할 만한 일을 선정하고 기꺼이 그 일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의무라는 것이 자신 외, 타인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숭고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자발적인 의무감으로 무장된 이들은 본연의 의무를 잘 이행하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게 되는데 첫째로 승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개인의 영광과 유익을 추구하기 위함이 아니다. 상승에 따른 수준의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는 경찰관으로서 전문성을 추구하려 한다. 열심히 배워 특출 나고 숙련된 기능을 익히는 것은 경찰관으로서 역량을 발휘하는데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무감은 한동안 지속되지만 학교생활 적응기에 도달하면서 다소 느슨해지기 시작해진다. 시험을 준비하느라 지친 심신을 추스르는 과정에서, 비슷한 과정을 거친 동기들 간에 운명공동체라는 동질의식이 싹트면서 긴장감이 풀리고 동시에 애초의 의무감을 철회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흔들림에도 아직까지는 경찰이라는 두 글자에 무언가 뭉클함을 느낀다. 이윽고 자신의 의무감을 확인해보고 두 가지 목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그랬던 그들도 세상에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공황상태에 빠진다. 왜냐하면 그들의 숭고하고 드높았던 의무감이, 나의 편히 잘 시간을 타인의 안전을 위해 반납할 각오로 충만했던 자유 함이, 안개 걷히듯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충격이 거센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의 의무의 대상이라고 믿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적들로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장비와 인력의 한계가 있으나 시민들은 더 완전한 서비스를 원하고 충족되지 않을 경우 그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아울러 술 취한 분들이 초법권적 지위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알고는 무기력한 자신을 보며 절망감에 빠지고야 만다.


이런 혼란은 일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여 애초의 의무감조차 예외일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의무감을 상실한 이들은 한 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그 상실감을 메우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되는데 그때 그들은 애초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선정했던 목표를 수정하기에 이른다.


첫째 목표였던 승진은 이제 더 이상 숭고한 의무를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는 아니며 자신의 숭고했던 의무를 상실하게 한 보상으로 삼는다. 이는 국가와 시민을 향해 품었던 애초의 의무를 실행하지 못하게 한 것이 시민 자신들이라는 것으로 원인을 돌리고 일종의 복수심으로서 자신의 상실감을 정당화하려 한다.


더욱이 승진을 하는 길만이 자신들을 훼방하고 의무감마저 폐지시켜버린 시민을 향한 멋진 복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신뢰해버린다. 왜냐하면 승진하게 되면 대민접점부서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을 지켜 줄 민중의 지팡이로 믿는 시민을 뒤에서 비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목표도 동일한 이유로 변질되는데 사실상 의무감이 철회된 상황에서 더 이상 순수한 의미의 어떤 전문성을 꿈꾸려 하지 않는다. 살펴본 대로 이제 승진만이 그들의 상실감을 매워줄 강력한 도구로 믿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탓에 우리는 경찰관이 된 순간 승진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분위기가 형성되고 말았다. 하지만 승진은 자체 진화를 거듭하여 단순한 상실감 보상차원을 뛰어넘는 경찰 조직을 움직이는 원천이 되면서 모든 권력과 돈이 집중되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좌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경찰이 된 이들은 애초부터 승진을 목표로 하게 되고, 성공과 실패의 바로미터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승진을 하지 않았든 못했든 그들은 '루저'로서 도매금으로 넘어가버린다. 반면, ‘경찰이고 뭐고 일단 올라가 보자.’라는 기치 아래 승진을 한 사람은 그 과정에서 정당성을 상실하여도 때론 사술이나 비위가 개입되어도 승진을 하는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때론 장려될 뿐만 아니라 대단하고 훌륭하며 유능한 사람으로 우러러보게 된다. 이런 현상은 조직 특유의 정서로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변질되어 버린 승진은 참 의미의 회복이 거의 불능한 상태에 이르러버린 지 오래되었다. 이제는 회복해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말한 대로 많은 이가 좀비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승진은 경찰의 모든 기능을 움직이고 있는 동력원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국가와 국민을 향한 경찰의 이상향은커녕, 비상식적이고, 정의롭지도 도덕적이지도 못한 상황이 조직 깊숙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찰로 지내는 이상 늘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순수한 경찰 자체로서의 행복함이나 만족감과 같은 감성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승진의 마력은 두려울 정도로 우리의 이 모든 감성 작용을 마비시키고 철저히 상승 욕구에만 포커스를 맞추도록 하였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려는 생각을 할라치면, 즉, 승진 외의 다른 길을 모색할라치면 ‘왜 그러느냐?’며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이 말리기 일쑤고, 덧붙여 인생의 커다란 실패와 좌절 그리고 조직으로부터 영영 소외되어 초라한 종말을 맞이하고 말 것이라며 여러 사례를 들며 친절하게도 두려움과 공포심을 심어준다.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법집행자로서의 경찰관의 당당한 품행을 내던지게 되며, 소위 말하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순수할 뻔했던 경찰관은 제왕 ‘승진’의 저항할 수 없는 폭압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종속적인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는 숭고한 경찰관이 되어 보겠노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경찰관이 되려고 했던 작은 흔적마저 델리트 시켜 버린다.


그런 그들은 그들이 전수받은 대로 조직을 비난하고 국가와 국민을 비웃는다. 게다가 이미 스스로 경찰관임을 포기한 상태이므로 내면은 말할 것도 없이, 보여야 할 기본 경찰 작용마저 태만에 이른다. 제복은 입었지만 마음은 조직과 국민들을 향해 ‘나는 경찰이 아니야!’라고 울부짖는다. 이는 너무 깊숙이 들어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없이 가야만 하는 고독의 외침인 것으로서 외로운 늑대의 울부짖음과 같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때로는 아련히 경찰학교 때의 모습을 기억해보려고 애를 써 본다. 스스로도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가 지금보다 나았다고 알고는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미 식을 대로 식고, 무기력해질 만큼 무기력해진 가슴은 간신히 희미하고도 가늘어져 버린 맥박만이 느껴질 뿐으로, 그나마 남겨진 기억의 부스러기를 주워 담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깊은 포옹과 격려 그리고 숭고한 의무를 부여했었던 감격 정도를 감지하게 해 준다.


애써 쓸어 담아 올린 희미한 감격의 기억이나마 있다는 것에 기뻐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이미 승진 왕국의 종살이를 해 온 지 오래되었고, 나가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허탈감마저 상실해버린 그들은 신기루와 같은 행복감을 잠시 느껴보기 위해 오늘도 책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남보다 튀면 끝이다.’는 격언 아래 복지부동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며, 전화번호부를 검색하며 특정 출신과 연줄을 닿아 보려 애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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