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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Oct 08. 2021

여행은 살아보는 것, 삶은 여행처럼 사는 것

스무 번째 이사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던 한 광고의 슬로건처럼, 나는 통영에서 살았다고 해야 할까 여행을 했다고 해야 할까... 음, 뭐가 됐든 정의 내리기 힘들다. 여행하듯 살았고, 살면서 부지런히 여행했다. 통영에서 1년 6개월을 살았던 이야기는 여러 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많이 썼다. 그만큼 통영에서의 1년 6개월이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굵은 선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 선은 스타트라인이기도, 데드라인이기도 했다.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잣대로 살아왔던 인생을 마무리하는 데드라인이자, 앞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과 속도로 세상을 시작하겠다는 스타트 라인이기도 했다. 많이도 언급한 만큼 통영에 대한 마음이나, 의미들은 넘기고, 통영에서 내가 좋아했던 곳, 그리고 아직도 일 년에 한 번은 찾아가 먹을 만큼 그리운 맛집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클리셰가 클래식이다. "동피랑 마을"

통영에는 뻔하디 뻔한 코스가 있다. 통영의 유명한 벽화마을 동피랑이다. 몇 년에 한 번씩 벽화를 교체하는데 뻔한 캐릭터나 유행하는 이미지들이 그려져 있어 여행 좀 다녀봤다 하는 내 눈에는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동피랑을 제대로 즐기려면 시야를 조금 더 확장해야 한다. 동피랑이 왜 동피랑인지. 통영의 고지도를 살펴보면 통영을 둘러싸고 동포루과 서포루, 그리고 북포루가 있다. 이순신 장군의 일화로 유명한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의 현장이기도 한 통영은 500년 이상 조선의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다. 그래서 통영 항구를 중심으로 하여 왜적의 침임을 감시하고 포를 쏘는 포루가 통영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동포루는 동쪽의 제일 높은 곳에, 서포루는 서쪽의 제일 높은 곳에, 북포루는 북쪽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이 포루들만 찾아다녀도 통영의 경치와 야경을 볼 수 있는 꿀 명당인 셈이다. 동포루는 동피랑 마을을 걸어 오르면 닿는 꼭대기에 있다. 수도 없이 갔던 동피랑 마을은 이제 벽화를 보는 것보단 동포루에서 내려다본 통영의 장관을 보러 오르는 편이 더 좋다. 그리곤 서포루를 향해 걷는다. 지금은 서포루도 공원 조성을 잘해두어 찾아가기는 쉽지만. 모르는 사람이 꽤 많다. 서포루로 가는 골목골목들도 아기자기하게 잘 만들어져 있다. 서포루의 정자에 가만히 앉아 있자면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어, 한여름 더운 날 땀을 순식간에 식혀준다. 동포루를 내려와 강구안에서 충무김밥을 포장한 다음, 해 질 녘 서포루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충무김밥에 맥주 한 캔을 하면 통영 여행을 온몸으로 느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북포루. 북포루는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다. 통영에서 사귄 유일한 친구가 삼겹살이나 먹자고 데려가 준 곳이 바로 북포루였다. 북포루는 낮은 산이라 20분 정도의 등산을 필요로 한다. 땀을 흘리고 오른 산에서 통영의 야경을 보며 먹는 삼겹살과 소주의 맛이란, 지나온 인생을 통째로 바꾸자고 해도 고민 없이 지난 내 인생을 내어드리리.*



* 당시에는 북포루에서 화기 사용 및 음식을 먹는 행위에 대한 제재가 없었던 때라 가능했습니다만, 현재는 문화재 관리를 위해 화기사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인생을 내어줄만큼의 기분이 궁금하신 분은 치킨한마리와 맥주 한캔 정도 들고 오르셔서 야경을 보시면 어떨까요? :-) 통영의 쌀통닭이 아주 맛있습니다.



통영은 해물이지

관광지엔 유난히 비싸기만 하고 먹을  없는 음식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가도 관광객이 가는 식당은 피하고, 되도록이면 주민들이 평범하게 먹는 음식을 주로 먹으려 한다.  흔한 백반집도 동네마다 특성이 다르고 반찬이 다르기 때문에 통영엔 굴이 유명하다더라~ 해서 코스요리로 나오는  정식집에 가는 것보다, 항구  작은 백반집에 들러 식사를 하는 것이 통영의 진짜 매력을 느낄  있다. 나더러 통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어냐 물어본다면 단숨에 짬뽕이라 말한다. 몸이 너무 고단한 날도, 마음에 상처를 받은 아픈 밤도, 축하할 일이 많은 기분 좋은 날에도 짬뽕을 먹어야 한다. 나에게 짬뽕이란 소울푸드  자체다. 전국   짬뽕집을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마음에 든다 싶은 짬뽕집을 발견하면 주야장천 먹어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사를 다닐 때마다  동네 맛있는 짬뽕집 하나쯤은 뚫어놓아야 마음이 편하다. 통영으로 이사를 오고   통영의 구시가지로 통하는 중앙동을 기준으로 명정동 일대의 중국집을 모두 먹어본 결과,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중에 괜찮은 곳은 '심가네 해물짬뽕'이란 곳인데 관광지와 가까워 그런지 이미 점심때가 되면 줄을 서야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주민 입장에서 아무리 맛있는 집이라도 점심을 먹으러 가서  시간을 줄을 서는  억울한 노릇이니 다른 집을 찾았다. 그곳은 통영 버스터미널에 가까운 '이화원'이라는 중국집이다. 이미  동네 사람들에겐 맛있는 중국집으로 ~명하다. 브레이크 타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손님으로 가면 빈 테이블들을 보고 '금방 나오겠지?'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앞으로 밀린 배달 주문이 끝도 없으니  시간은 오래 걸리는 편이었고, 정신없이 나가는 배달 그릇을 보면  집의 인기를 실감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전국   짬뽕이라고 해서 가본 집보다도  맛있었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짬뽕,  자체인데 퀄리티가 아주 높다. 굳이 1-2  비싼 해물짬뽕을 시키지 않아도 기본 짬뽕만으로도 해물은 넉넉하고 국물도 아주 진하다. 이쯤 되면 전국 5 짬뽕에서 통영 이화원을 넣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최근 전국 5 짬뽕이라는 강릉 교동짬뽕에서  실망을...)


그리고 소개할 다음 맛집은 통영 여객선 터미널 근처의 도천동에 있는 '장어 잡는 날'이다. 통영에서는 갯장어보다 '바다 장어'를 더 많이 먹는다. (갯장어 집은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바다 장어는 양식이 없다고 하며, 갯장어 보다 사이즈는 작고 잔가시가 조금 있는 게 흠이라면 흠인데, 갯장어에 비해 담백함이나 맛은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이 식당은 통영으로 처음 내려가서 통영의 주민분들이 거하게 술을 마시러 간 날에 따라갔던 곳인데, 그 넓은 홀에 손님들이 가득 찼고, 둘러보니 놀러 온 사람들보다는 주민이 대부분이었다. 갯장어에 비하면 저렴하지만 그래도 싼 음식은 아니기 때문에, 좋은 일이 있거나 가족모임을 하면서 '고기나 먹으러 가자~' 하는 것처럼 '장어나 먹으러 가자~!' 하고 가는 곳이 '장어 잡는 날'인 것이다. 어느 후기 글쓴이에 말로는 통영에 신선한 장어란 장어는 다 이 집으로 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료가 신선하고, 장어탕도 고소하고 얼큰하니 술안주와 보양으로는 이만한 게 없다.


이화원 짬뽕과 자부심 가득한 부먹 탕수육
장어 잡는 날, 장어구이







통영은 일출도, 일몰도 죽여줍니데이 "해바라기 코스"

동해는 수평선을 보는 게 좋다. 파란 바다와 시야를 가리지 않는 수평선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서해는 일몰이 예쁘고 갯벌이 있어 조개구이를 먹으러 가면 나름대로 낭만이 있다. 그럼 남해로 여행을 가면 무엇을 기대하면 좋을까? 남해는 바다 앞에 즐비한 섬, 그 사이로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둘 다 볼 수 있다. 멀리 있는 섬까지 나가지 않으면 탁 트인 뷰가 없는 건 아쉽지만 섬에 들어가 육지를 보는 것과, 육지에서 섬을 보는 뷰가 거의 비슷해서 육지인지 섬인지 헷갈리는 것도 매력이다. 통영에 사는 동안 유난히 일출과 일몰을 보러 자주 나가곤 했는데 온 몸으로 느껴본 일출과 일몰, 명당자리를 소개해보려 한다. 놀랍게도 일출과 일몰 명당은 같은 산양면이다. 산양면의 오른쪽 해수욕장 쪽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일출을, 산양면의 왼쪽 고지대인 달아 공원 쪽에서 보면 일몰 포인트다. 일출은 통영 육지에서 유일하다는 해수욕장*에서도 볼 수 있지만, 차를 가져온 경우 해수욕장에 주차를 하고 1시간 정도를 트래킹 해서 만나는 해바라기 전망대에서 보는 일출은 솔직히 말해서 지리산 천왕봉에서 보는 일출보다 멋있었다. (물론 개고생에 감격까지 더하면 지리산 천왕봉을 따라올 일출은 세상엔 없을지도 모른다.)

통영에서 일몰로 유명한 곳은 달아 공원이다. 일몰을 보기 위한 전망대가 있을 만큼 시설도 잘 되어 있지만 날이 좋고 일몰이 잘 보이겠다 싶은 날엔 정말 관광객이 바글바글 하다. 달아 공원에 주차를 하려고 줄을 서다 해가 다 떨어져 버린 적도 있다. 그러니 실패 없이 일몰을 보려면 다양한 스팟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사람이 많이 없는 날이면 달아 공원을, 달아 공원이 만석이다 싶으면 얼른 차를 돌려 5분 거리의 ES 리조트로 가야 한다. ES 리조트는 숙박객이 아니더라도 방문할 수 있으며 주차가 무료다. 꼬불꼬불 길을 굽이 오르면 ES리조트가 보인다. 리조트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야외수영장 옆 벤치에 자리를 잡으면 당신은 일몰 명당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한 겨울에도 ES리조트에 야외수영장엔 물이 차 있으니 뷰도 예쁘고 해가 질 때까지 한 바퀴 산책을 하기에도 좋다.



지도에 나오지 않는 곳, C표시쯤 가면 해바라기 전망대 계단이 나온다
다시 찾은 ES리조트에서의 일몰, 통영 2017


동피랑에 몰려온 수많은 관광버스,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동피랑 마을을 구경하고, 꿀빵을 사 먹고, 중앙시장을 한번 살펴본 뒤 다시 버스에 오른다. 미리 약속된 횟집에서 해물 뚝배기로 점심을 먹었을 테고 사람들은 다시 버스에 올라 거제도 바람의 언덕으로 갔을 거다. 통영은 언제나 거제도에, 남해에 밀린다. 들리는 곳쯤으로.  게다가 젊은 여행객은 더더욱 찾아보기가 참 힘들다. 통영에 일 년 반을 머물면서 아쉬웠던 장면이다. 핀란드 여행을 할 때, 포르보라는 작은 도시를 검색했을 때 사람들은 다 이렇게 말했다. 잠깐 들러서 2시간 정도 보고 오기 딱 좋다고. 나는 포르보에서 3일을 머물렀다. 이왕 여행을 갔다면 슬쩍 보고 돌아오는 건 방문이지 여행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나 역시 연화도도 대매물도도 우도 가보고 싶은데 아직도 못 가봤다. 일 년 반을 살아도 좋다는 곳을 다 가보지 못했고, 맛있는 음식을 다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살면서 매년 한 번씩은 통영을 가려한다. 이젠 통영에 살지는 않지만 여행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오래오래 통영을 여행했으면 좋겠다. 법정스님이 출가하신 사찰로 유명한 미륵사의 편백나무 숲길도, 통영의 터줏대감 수다 카페도, 산양면의 해안선 드라이브 코스도, 박경리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여행도 해보길 바란다. 하나도 버릴 게 없이 곳곳이 예쁘고, 모든 공간이 이야기인 이곳 통영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북포루는 낮은 산이지만, 조금의 등산이 필요하고 저녁이 되면 인적이 드물고 위험할 수 있다. 동네 오래된 토박이와 함께 올랐으니 망정이지 길도 모르고 갔으면 조난되기 딱 좋으니, 주의! 하시길.

통영은 바다와 땅의 경계가 모두 돌로 되어있다. 모래가 들어찬 해수욕장은 이곳이 유일하다. 비진도라는 섬에 들어가면 모래사장으로 된 해수욕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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