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어쩌지?

by 고도리작가

공무원을 그만두려면 여러 가지 관문을 거쳐야 한다


먼저 나 자신이 결심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직원들이 붙잡는다. 직원들이 대체 뭐라고 내 인생에 감내라 배내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공직사회뿐 아니라 대부분의 조직 사정이 비슷할 거다. 겉으로는 상대방을 위해 참으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에게 말하는 거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사표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다. 현재 상황이 힘들 때는 굳이 사표를 쓰지 않아도 부서를 옮기든지, 교육을 가든지, 휴직을 하든지, 아니면 아예 다른 부처로 인사 교류하는 등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사표 이야기는 쉽게 꺼낼 수 있는 패가 아니다. 좋은 복지혜택을 받는 공무원들도 매일매일 이 놈의 직장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가서 특별히 먹고 살 일이 없으니 공무원 계속한다고 자조한다. 그러니 내 옆에 누군가가 사표를 쓴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서 굳건히 버티고 있는 지금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증명하는 꼴이다. 공무원들은 서로서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로 약속이나 한 듯하다.


그리고 간부들이 말린다. 맥락은 직원들과 비슷하다. 간부라고 마냥 룰루랄라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다른 종류 다른 수준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을 거다. 간부들은 사표 쓰려는 직원에게 부서변경, 승진, 육아휴직, 교육 등 온갖 당근을 제시한다. 강력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만의 하나 그런 달콤한 제안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까도 고민해봤다. 그래서 그 당근 받아먹고 다시 돌아와? 그래서 그 고민을 또 해? 얍삽한 수는 쓰고 싶지 않다.


또한, 가족들이 반대한다. 강력한 반대이다. 공직사회는 한번 나가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으니 후회하지 않도록 다시 한번 잘 생각하라고 설득한다. 사실은 직원들보다 가족들 반대를 설득하지 못해서 회사에는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나는 상당히 운이 좋은 케이스다. 남편과 아이들이 심하게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초등 고학년인 딸아이가 좀 떨떠름해 하긴 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걱정. 부모님의 걱정

부모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님 이야기



부모님은 나를 보험이라 생각하셨을까?

요즘 세상에 자식을 보험으로 생각하시는 부모님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자식이 공무원이라면 그냥 받는 것 없이도 든든하고

자식이 평생 먹고 살 방도는 마련해 주었으니 부모역할 다 했다고 안도하셨을 거다.


부모님은 내가 30세에 임용되기까지 2년 반 동안 경제적, 심리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매달 학원비와 용돈을 주셨고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는 기간에는 하루에 점심, 저녁 도시락 두 개를 싸주셨고

적시에 한약을 해주셨고 끝까지 나를 믿어 주셨다.

두 번째 시험에도 떨어지고 풀 죽어 있을 때 아빠가 산책하다가 품 안에서 꺼내 주신 구겨진 하얀 봉투를 잊을 수가 없다. 30만원이 들어있던 하얀 봉투.


"다시 한번 해봐"


살면서 때로 애증의 대상이었던 아빠였는데 그 순간 이 세상에 내 편은 아빠뿐이었다.

그 날 아빠와 나는 가까운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아빠는 어리기만 하던 딸이 커서 시험에 떨어져 좌절하면서도 인생을 진지하게 대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나 보다.

사방 벽에 온갖 낙서가 되어있는 주점이었는데 아빠가 가만히 둘러보더니 이렇게 쓰신 걸 기억한다.


'세월은 유수와 같으니.. 내 딸이 어느덧 자라서... '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평생 현학적인 것과는 거리 있던 분이라 그리 창의적인 문장은 나오지 않는다.

그 힘을 받아 나는 다시 한번 도전한다.

다음 해 7급 시험 합격자 발표 결과에 흥분하여 여기저기 전화하시던 아빠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옛날 부모님은 나에게 투자를 하셨다.

투자했으니 이제 뽑아먹어야지 그런 마음은 아니겠지만

자식이 사표를 쓰는 일이 생기거나, 죽을 때까지 연금 받을 거 까지 생각해서

평생 큰돈 걱정은 없을 거라고 안심하고 계셨을 텐데 사표를 쓰다니...


부모님에게 사직 이야기를 정식으로 꺼낸 적은 없다

다만, 고민을 토로하는 식으로 일 그만두고 그냥 집에 있는 것도 괜찮겠다는 정도는 말한 것 같다

그때도 그런 분위기로 엄마와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순간적으로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하시는 표정


엄마는 낯설어하셨다

'특별하지 못할 바에야 그냥 남들처럼 살면 된다'라고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그런데 뭐 그리 뾰족한 수도 없어 보이는 딸내미가

공무원을 그만두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니 낯설었을 거다.

회사 사람들 시선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고, 가족들도 날 믿어주고 있었는데

점점 나이 드시는 부모님이 가장 걱정이었다.


아무리 사위가 잘한다 해도 그건 엄연히 남의 자식이고

내 자식도 돈을 버니 그래서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런 마음도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은 항상 부모님을 배신한다.

나는 일단 부모님에게 말씀드리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그래도 될 만큼 자신 있을 때 실행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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