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넘겨주는 페이지
집을 나설 때 주머니에는 휴대폰 대신 얇은 책을 넣는다. 굳이 목적지는 정하지 않는다. 골목 끝 분식집 냄새를 지나, 담벼락을 타고 내리는 담쟁이의 그늘을 지나,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는 소리를 한 번 건너면 작은 공원이 나온다. 운동기구가 몇 개 있고, 모래 놀이터와 자전거 거치대, 그리고 벤치 두세 개. 오늘 선택한 자리는 그중 가장 오래된 벤치다. 손때가 닿은 목재 등받이, 초록 페인트가 벗겨진 금속 팔걸이, 어떤 구석에는 오래전 스티커의 끈적이가 남아 있다. 앉으면 등 뒤로 낮은 온기가, 엉덩이 아래로 얇은 냉기가 전해진다. 바람은 정면에서 오지 않고, 조금 옆으로 비껴온다.
책을 꺼내 무릎 위에 올린다. 표지를 한 번 쓸고, 숨을 한 번 길게 들이쉰다. 멀리서 자전거 벨이 ‘딩’ 하고 울리고, 강아지 목줄의 금속이 깃털처럼 부딪힌다. 유모차 바퀴가 작은 돌부리를 지나며 ‘톡’ 하고 걸린다. 도시의 낮은 소리들이 잔잔한 바다처럼 공원 바닥에 퍼진다. 그 바다 위에 얇은 책 한 권을 유유히 띄워 본다.
첫 문장을 소리 없이 읽는다. 바람이 페이지 모서리를 아주 조금 들어 올렸다가 다시 놓는다. 손가락으로 모서리를 눌러 각을 잡는다. 오늘의 읽기는 멀리 가려는 몸이 잠깐 앉아 있는 동안만 가능하다. 바람이 대신 페이지를 넘겨 줄 때까지 기다리는 일, 혹은 넘어가려는 페이지를 가볍게 붙들어 주는 일. 둘 다 나쁘지 않다.
옆 벤치에 할머니 두 분이 앉아 장바구니를 발밑에 내려놓는다. 상추가 조금, 대파가 조금, 귤이 몇 알 보인다. 한 분이 “비 오려나?” 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다른 분이 “바람 부는 거 보니까 괜찮아.” 하고 웃으신다. 그 웃음이 책의 두 줄 사이에 살짝 끼어든다. 밖에서 들려온 말이 과하지 않다. 오히려 그 균형이 좋다.
나는 페이지 여백에 연필로 작은 점을 찍는다. 오늘의 단어 하나를 정하기 전에 의식처럼 찍는 점. 점은 방향의 선택을 정중하게 미룬다. 점 하나를 찍고 나니 단어가 스스로 떠오른다. ‘바람.’ 오늘은 그 단어로 택했다. 바람이 페이지를 넘기면 읽고, 바람이 멈추면 멈춘다. 억지로 넘기지 않는다. 산책하며 읽는 책은 늘 그랬다. 앉을 수 있으면 앉고, 서 있어야 하면 단어 하나만 주워 온다. 챙길 문장은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아도 된다.
강아지가 가진 작은 공이 내 발치까지 굴러온다. 주인이 뛰어와 허리를 굽혀 공을 줍는다. “죄송해요.” “아니에요.” 짧은 대화가 지나간 자리에서 바람이 한 번 바뀐다. 페이지가 혼자 넘겨진다. 나는 그 스스로 넘어간 쪽부터 읽는다. 바람이 정한 순서가 의외로 알맞을 때가 많다. 계획하지 않은 쪽에서 오래 찾던 말이 나올 때도 있다. 도시는 종종 우연으로 시간을 채우고, 읽기는 종종 우연으로 문장을 완성한다.
한 장을 다 읽고 머리를 든다. 은행나무가 절반쯤 노랗다. 벤치 앞 보도블록에는 납작해진 잎들이 작은 접시처럼 깔려 있다. 자전거가 그 위를 지나가며 바람을 만든다. 그 바람이 내 페이지 가장자리를 스친다. 나는 손가락으로 모서리를 조금 더 단단히 누른다. 멀리서 초등학생 셋이 줄넘기를 하다 말고 서로의 점수를 세기 시작한다. “열둘—열셋—에고 쉬자!” 그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 여백 옆에 그대로 적어 둔다. ‘쉼.’ 바람과 쉼, 오늘의 읽기가 너무 과하지 않게 서로의 팔을 잡아 준다.
햇빛이 잠깐 나왔다가 구름 뒤로 숨는다. 빛이 나왔다 숨을 때마다 활자의 얼굴이 바뀐다. 같은 문장인데도 조금 더 부드럽게, 혹은 조금 더 단단하게. 빛이 바뀔 때 읽던 문장을 고집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외부 현실의 리듬이 책 안쪽의 리듬을 무너뜨리지 않게, 그러나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게. 택시 안에서 배운 리듬을 여기서도 그대로 쓴다. 공원은 흔들리지 않지만, 바람은 흔들린다. 흔들리는 쪽에 맞춰 읽는다.
책을 한 손으로 들고, 다른 손은 주머니에 넣어 본다. 주머니 속에는 아침 모닝커피를 사며 받은 영수증이 한 장 접혀 있다. 모서리가 매끈하다. 나는 그 영수증을 꺼내 책갈피로 끼운다. 산책로에서의 표식은 가볍고 즉흥적일수록 좋다. 영수증, 낙엽, 티켓, 아무거나. 오늘은 영수증이 내 손에 잡혔다. 숫자는 보이지 않지만, 종이는 내 자리를 기억한다.
오래 앉지는 않는다. 산책하며 읽기는 오래, 길게 하기보다 자주 나오는 것이 핵심이다. 다섯 분이면 좋고, 열 분이면 더 좋다. 나는 방금 읽은 문단을 마음속으로 한 번 접는다. 반으로, 그리고 다시 반으로. 접힌 문장은 단단해진다. 그 크기가 주머니에 들어간다. ‘바람’이라는 단어를 그 접힌 문장 가장자리에 끼워 넣는다. 풍선에 매단 작은 모래주머니처럼, 날아가지 않게 붙든다.
벤치 등받이에 등을 살짝 기대자, 나무의 거친 결이 셔츠 천을 아주 미세하게 밀어 올린다. 몸이 무게를 맡기는 감각이 문장에도 전해진다. 오늘은 이해하려는 근육의 힘을 살짝 빼고, 기대려는 쪽에 힘을 쓴다. 기대는 힘은 방향을 바꾸지 않지만, 균형을 바꾼다. 균형이 바뀌면 같은 문장도 다른 쪽에서 열린다. 바람은 그 열린 쪽으로 들어온다.
어느새 구름이 한 겹 더 얇아졌다. 햇빛이 벤치 옆 쓰레기통의 모서리를 하얗게 만든다. 그 모서리와 페이지 모서리를 나란히 본다. 둘 다 날카롭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선명하다. 나는 여백에 오늘의 단어를 또 한 번 적는다. ‘가벼움.’ 무게를 없앤다는 뜻이 아니라, 필요 없는 힘을 빼겠다는 뜻이다. 가벼움은 얕음이 아니라 여유의 다른 이름이라고, 적으며 스스로 다짐한다.
한 아이가 비눗방울을 불어 공원 바닥 위로 날린다. 방울은 몇 걸음 가다 터지거나, 바람을 타고 높이 올라간다. 터지는 순간, 미세한 물방울이 빛에 스친다. 그 반짝임이 책의 한 단어 옆에 붙어 잠깐 빛난다. 나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 눈을 조금 더 크게 뜬다. 산책하며 읽기는 이런 찰나를 책 안에 붙이는 기술이다. 설명으로 붙이는 게 아니라, 장면으로 붙이는 기술이다.
바람이 갑자기 거세져 페이지가 한꺼번에 넘겨진다. 나는 서둘러 물러나지 않는다. 넘겨진 곳에서 눈에 들어오는 첫 문장을 읽는다. 뜻밖에도 그 문장이 오늘의 한가운데를 정확히 지나간다. 의도한 것보다 우연이 잘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그저 ‘좋다’고 말한 뒤, 여백에 점 하나를 찍고, 책을 덮는다.
일어나며 벤치를 한 번 뒤돌아본다. 방금 앉아 있던 자리에 내 몸의 온기가 아주 얇게 남아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바람이 와서 금세 지워 버린다. 지워진 자리에서 나는 더 가벼워진다. 가볍다고 해서 얕아지는 건 아니다.
공원 출구를 나와 골목으로 들어서면, 방금 접어 둔 문장이 주머니 안에서 꿈틀거린다. 주머니에 들어간 문장은 잘 잊히지 않는다. 필요할 때 손을 넣으면 금방 만져지기 때문이다. 신호를 기다리며 그 문장을 살짝 펼쳐 본다. “문장은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아도 된다.” 그 말이 오늘 하루의 남은 시간에 과속방지턱처럼 놓일 것이다. 큰 결심을 줄이고 작은 여백을 늘리는 쪽으로.
집에 가까워질수록 소리의 결이 바뀐다. 택배 트럭의 역회전음이 들리고, 2층 베란다에서 걸레를 짜는 소리가 한 번, 분리수거 바구니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한 번. 그 사이로 바람은 여전히 비껴온다. 현관 앞에 서서 가방을 열지 않고,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표지를 한 번 쓸어 본다. 표지의 온도가 손바닥의 온도와 비슷하다. 오늘의 산책은 이걸로 충분했다.
문을 열며 마지막으로 마음속 단어를 확인한다. ‘바람, 쉼, 가벼움.’ 세 단어가 서로의 팔을 붙잡고 있다. 넘어지지 않게, 그러나 멈추지도 않게. 바람이 넘겨 준 페이지 덕분에 나는 오늘도 멀리 가지 않고도 충분히 다녀왔다. 다음에 불어올 바람을 다시 기다릴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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