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하굣길의 친절한 여자

그 친절은 과분한 안도감을 주었다

by 최초록별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집에서 가까웠다. 걸어서 15분 정도. 대신 꽤나 외진 곳에 있었다. 골목을 쭉 타고 터널 하나를 지나야 학교 하나가 겨우 덜렁 있었기 때문에, 학교 정문까지 데려다주는 버스는 겨우 마을버스 한 대였다. 등교할 때는 여러 정거장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하교할 때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쏟아져 나왔으므로 버스 탑승은 치열했다. 치열한 건 충분히 넘치는 게 고등학교 생활이다. 더 이상의 경쟁을 견딜 수 없는 내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면 마을버스 대신 15분 거리의 큰길까지 내려와 시내버스를 타곤 했다.


내 고등학교 하교 끝은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버스를 탈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이 되었다. 나는 하루 15분의 하굣길과 15분의 기다림, 총 30분씩 매일 같이 친구와 이야기하며 보냈다.


그중 P는 나랑 가장 많은 하굣길을 함께 보낸 친구다. P로 말할 것 같으면, 거인만큼 큰 이성과 소인만큼 작은 감성을 가진 친구다. 나도 이리저리 현실을 따지고, 단체 행동보다는 개인행동을 훨씬 선호하는 사람이라지만 P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더 현실적이고, 독립적인 친구였다.


P는 기념일 선물의 경제적 효익을 논하며 ‘주고받을수록 손해가 나니 모두가 주지 말고 모두가 받지 말자’는 주장을 담담한 얼굴로 하는 성격이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건 깜짝 생일파티를 성공적으로 끝내서 한 친구의 눈에 눈물까지 맺히게 한, 오늘 저녁 오후에 할 말은 아니지! 나는 소리쳤지만, 그 애는 개의치 않았다. 만일 자신의 생일에 한정 짓는다면 생일 선물이란 대-손해임을 강력히 주장한다고 했다.


나는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는 너무 공감 능력이 메말랐다며 야유받곤 했지만, P랑 있을 때는 어김없이 내가 18세기 낭만주의파 역할이었다. 나는 ‘친구가 오롯이 나를 위해서만 고민하는 그 시간은 얼마나 눈물겨운지!’라든가, ‘선물이 주는 정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라는 감성적인 근거를 들어 반론을 시작했다. 잘 먹히지 않자, ‘몰라서 갖고 싶지 않았지만 막상 받고 나니 너무나 새롭고 마음에 드는 경우, 선물이 주는 효익을 무시할 수 없다’는 식의 경제적 논리로도 열심히 반박해봤다. 하다못해 ‘자, 우리가 기념일마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지속적인 소비를 만들어내지? 그러면 뭐가 오른다? GDP가 오른다!’ 하는 눈물겨운 주장으로 어떻게든 그 애의 의견을 감성파 쪽으로 돌려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그랬다. 그러나 P는 꿋꿋이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그런 꼿꼿함이 매력적인 친구였다.


그날도 별일 아닌 것을 심각하게 얘기하던 하굣길이었다. 그날은 그 애가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겠다고 말한 흔치 않은 날 중 하나였다. 우리는 밭밖에 보이지 않던 거리를 지나 터널을 넘었다. 하굣길 양 쪽에는 아파트가 빼곡했다. 수많은 창문이 만들어 내는 불빛들은 눈 부실 정도로 반짝반짝했다. 그 야경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우주를 보는 듯한 어떤 막막함이 느껴졌다.


“이 좁은 동네에도 아파트가 이렇게 많다니 맨날 봐도 맨날 신기해.”


“아파트가 정말 많긴 하지.”


“이렇게 많은데 내 건 없다는 게 슬프지 않아? 나중엔 살 수 있으려나.”


“살 수 있을 거야.”


친구가 내 미래를 꽤나 희망적으로 바라봐주는데도 형언할 수 없는 막막함에 압도돼버린 나는, 별 감흥 없이 대답했다.


“어떻게 사. 혼자서 돈 모으려면 한참인데~ 집 살 때쯤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을 듯… 그리고 무엇보다 같이 사는 사람도 없어서 쓸쓸하게 늙을 듯…”


나는 아주 슬픈 목소리로 미래를 읊다가 이윽고 킥킥대며 웃었다. 자학 개그는 늘 즐거웠다. P도 나를 따라 살짝 웃었다.


“같이 모아서 사면 되지. 걱정마.”


나는 뒤를 돌아 그 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P의 표정은 여느 때와 같았다.


“나랑 살자.”


고저 없는 평탄한 목소리에 변함없이 진지한 얼굴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의문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우리가 각자 결혼을 할 수도 있고, 해외에 나가 살 수도 있는데, 한 치 1년 앞도 못 봐서 올해 대학에 합격할지 불합격할지를 놓고 세상 모든 걱정을 다 안은 듯 방금까지도 대화하고 있었으면서 나랑 같이 사는 걸 약속한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어떻게?”


“그냥, 그렇게 할게.”


그때의 안도감이란… 약속 하나 잡으려 할 때도 쉽지 않은 애가, 그래서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 노력하는 애가, 나하고 같이 산다고 단언해주니까, 그게 그렇게 안심이 되었다. 순식간에 ‘만기까지 든든한 종합보험’에 가입된 느낌.


그날 집에 가서도 온통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나는 미래를 고정해놓은 채로 현재에 해야 할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25살까지 알바로 5000만원을 모은 뒤 그 이후에 취업해서 매달 200만원씩 모으면 30살 전까지 1억 5천씩을 모을 수 있겠구나! 어이없어질 정도로 당돌한 나머지 숨만 쉬고 일해야 하는 기적의 계산법이었다.


다음날 하굣길에 나는 그 애에게 산술식을 짚어주면서 ‘30살까지 너 1억, 나 1억 5천 모아서 집을 사자!’고 강제적으로 약속 받으러 달려들었다. 꼭 같이 살자고 소리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애는 영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렇게 빠듯하고 조급하게 계산할 건 뭐냐고 타박을 주면서도 순순히 약속해줬다.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 그 말이 나랑 오랫동안 같이 있어 줄 것임을 약속받은 것이란 걸. 내가 반드시 결혼하고, 육아하지 않더라도, 서로 돌봐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말에 안심할 수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대가족도 이웃 주민도 점차 사라져가는 고독한 1인 가구 시대에 친구가 줄 수 있는 미래 사회의 안전망 같은 게 아닐까.


대학생 때까지도, ‘자신은 평생 비혼일 테니 네가 40살까지도 혼자면 와라.’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던 그 애는 이제 멋진 회사원이 되었다. 결혼은 안 하냐는 주변 어르신들 말에 걸핏하면 ‘좋은 남자가 있으면 결혼하겠다’고 말해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이상형이라곤 좀처럼 없는 나랑 달리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상형까지 있다는 점도 아주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럴 때면 이거 원금손실나는 변액보험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응원할 것이다. 내가 친구와 살게 되더라도, 살게 되지 않더라도, 친구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결혼하더라도 나는 항상 P를 응원하고 싶다. 물론 결혼해서 나랑 살아주지 않게 된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는 그날에, 신부보다 더 펑펑 울겠지만. 그 애가 어떤 모습의 삶을 선택하든, 오랜 시간 나에게 주었던 과분한 안도감만큼, 내가 그 애에게도 돌려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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