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덮어놓고 못 본 척하기

by 최초록별

매번 이사를 다니다보면 어떤 짐과는 헤어지기도 하고, 어떤 짐과는 다음을 기약하기도 한다. 이삿짐을 챙길 때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 온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헤어지고는 했다. 가족 외에도 계속 함께 해 온 동거인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 이름은 곰팡이였다.


내 인생의 3번째 집은 늘 그래왔듯 다세대주택이었다. 1층에는 술집이 있는 데다, 3층까지 올라가야 하는 계단은 이상할 정도로 가파르고, 현관 인터폰은 커녕 현관이 항상 열려있어 외부인 모두가 출입할 수 있는 열린 집이었다. (사실 나는 한 번도 공동 현관 잠금이 되어 있는 집에 살아본 적이 없다. 지금도 그렇고) 어쨌든 이 집에는 그 외에도 다양한 깜짝 사실들이 숨겨져 있었다. 그중 가장 놀라웠던 건 이 집과 내가 이미 구면이라는 점이었다. 그렇다. 나는 이 집의 화장실을 쓴 적이 있었다.


예전에 이 동네에 와서 부모님이 술을 마실 때 내가 썼던 화장실. 그게 이 건물에 있었다. 다세대주택 건물 현관 옆에는 불과 오른쪽 50cm 거리에 화장실 문이 하나 더 있었다. 1층 술집은 이 화장실을 쓰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화장실 방문객은 취객이 대다수였다. 매일 매일 취객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때 화장실 옆에 있는 현관문을 보며 이런 건물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걸까 생각했다. 거주민이 쓰는 현관의 안전성을 내려 손님들의 편의성을 한 껏 높인 모두의 화장실. 어이없는 설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게 우리 집 설계라니. 화장실 세면대에 가볍게 털어버리고 온 그 생각은 이제 우리 집의 본질적인 문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화장실을 지나서 50cm를 더 가야 들어갈 수 있는 현관 덕에 나는 집에 올 때마다 매일 같이 새로운 취객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교복을 입은 내가 지나가면 흠칫 놀라곤 했다. 마치 이런 곳에 사람이 살지는 미처 몰랐다는 듯이. 화장실을 기다리느라 줄 서 있는 취객 인파와, 한숨 돌리겠다고 현관에 앉아 있는 꽐라, 그리고 완전히 취해 건물 벽에 노상 방뇨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 그 건물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그 화장실은 도저히 입주민에게 도움이 되지를 못했다. 자기 집의 화장실에 사람이 찼을 때, 너무나 급하면 쓸만한 그 정도였다. 항상 더러웠기에 세컨드 화장실로 쓰기엔 무리가 있었다. 물론 입주민도 공동화장실을 쓸 수 있다는 건 일종의 장점이었다. 매일 같이 취객을 봐야 하는 단점의 100분의 1도 가려주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언벨런스한 조합 덕에 다른 곳보다 싸서 우리 가족이 계약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화장실 옆 현관이 이 집의 가장 큰 단점은 아니었다. 이 집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1번째 집의 가장 큰 단점이 바퀴벌레였고, 2번째 집의 가장 큰 단점은 보일러였다고 하면, 3번째 집의 가장 큰 단점은 곰팡이였다.


이 집은 곰팡이가 너무 많았다. 겨울철 결로현상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방보다 내 방이 나은 편이긴 했지만, 나 역시 방에 창문이 있었기 때문에 결로를 피할 수 없었다. 책상을 창문 밑에 두었기 때문에 내가 책상에 앉아서 가장 먼저 보는 게 곰팡이였다.


외벽과 맞붙어있는 내 방은 항상 추웠고, 패딩을 입으며 책상에 앉는 나에게 추위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거라지만, 곰팡이는 아니었다. 그 거무죽죽한 얼룩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았고, 창틀에서 맺힌 물방울 몇 개가 벽지를 타고 곰팡이에게로 내려갈 생각을 하면 답답했다. 곰팡이 생육에 아주 박차를 가하겠구나...


벽지를 다 뜯고 새로 붙이지 않는 이상 있는 곰팡이를 제거할 수는 없었다. 남의 집 벽지를 바꿔줄 돈도 없었다. 무엇보다 건물 설계를 생각하면 결로는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다이소에서 시트지를 하나 사 와 그대로 붙여버렸다. 단돈 2000원이었다. 내가 가진 돈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곰팡이 위를 가리기로 한 거다. 곰팡이 위를 시트지로 덮어버리는 건 통풍이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곰팡이 사육장을 만들어버리는 거나 다를바가 없었지만, 10대 때는 그런거 알지도 못했고, 그냥 당장 눈앞에 검은 얼룩이 안 보여서 마음이 편해지기만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당연히 곰팡이는 시트지 밖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마치 끔찍한 것을 본 양 다이소에서 또 다른 시트지를 하나 사서 시트지 오른쪽과 시트지 아래에 붙여버렸다. 다시 검은색 곰팡이는 안 보였다. 물론 일단 맨눈으로는 말이다. 나는 분홍색 시트지를 밀며 생각했다. 이 얇은 비닐 아래에는 내가 싫어한 것들이 그대로 있겠지. 나도 이건 그저 못 본척 하는 것뿐이라는 걸 알아. 사실 곰팡이랑 그대로 살고 있다는 것도. 그래도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시트지는 완벽히 붙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덮어놓고 못 본 척하는 게 전부였다.


인생에서는 못 본 척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새벽에 화장실에서 마주친 바퀴벌레, 싸우고 있는 엄마아빠, 나를 불쌍하다는 듯 내려다보는 아주머니, 해진 신발 밑창, 어느 브랜드 옷의 유행... 그것들처럼 벽에 쓴 곰팡이도 모른 척해야 할 대상이었다.


내가 시트지를 붙인 것은 나름의 노력이었다. 당장의 상황을 바꿀 수 없으니, 못 본 척이라도 해보겠다는 나름의 노력. 최고의 방법은 못됐지만, 나름의 최선이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시트지를 붙일 것이다. 못 본 척 해야 살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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