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한 라이프스타일

by 최초록별

대학은 사는 지역을 크게 떠나는 첫 경험이다. 온통 새로운 것이 신입생을 기다린다. 새로운 지역, 새로운 학교, 새로운 공부, 새로운 사람들. 따뜻한 봄 캠퍼스는 대학동아리 신입 부원 모집이 한창이었다. 나와 친구 역시 신입생이었기 때문에 이곳저곳 동아리 홍보부스를 구경했다.


그중 한 부스에서는 신입 부원 설문지를 받고 있었다. 가입하지 않아도 되니 일단 설문지만 내보라고 성화였다. 와 영업 잘하시네. 알겠다고 대답하고 설문지를 채워나갔다. 특이했던 건 신상을 묻는 여러 가지 질문 중에 가계 소득을 적는 부분도 있다는 점이었다. 매우 높음-높음-보통-낮음-매우 낮음. 5단계의 소득분위가 준비되어 있었다. 친구가 물어봤다. 이거 낮음으로 하면 뭐가 좋나요? 동아리 홍보지를 건네준 사람이 답했다. 매우 낮음을 하고 가입하시면 밥 먹을 때 저희가 사주고요, 매우 높으면 저희가 얻어먹어요. 아니, 진짜요? 신기하네. 그럼 전 낮은 거 같아요! 친구가 거침없이 매우낮음에 표시해서 지원서를 냈다. 이제 뭐 사주실 거예요? 선배는 능청스럽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은 다음 웃어 보이며 이 질문은 재미로 적은 부분이라 말했다. 그렇지만 가입하면 한 끼는 무조건 사준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그냥 중간을 냈다.


대학은 신기한 곳이었다. 잡지나 책에서 드라마에서 본 라이프스타일을 사는 사람들이 진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는 아주 소수의 사람이 경험하기 때문에 매체에 실리는, 일종의 꿈과 소망 같은 거라 생각했었는데 꽤 많은 이에게 현실이라는 점에 놀라고 말았다. 다들 진짜 그렇게 사는 거야? 놀라웠다.


사는 집에서 앞에서는 한강이 뒤에서는 산이 보인다는 이야기, 생일선물을 당장 오프라인매장에서 구매해 퀵으로 1시간 안에 보내준다는 이야기, 매번 비즈니스석 이상으로 타서 장거리 비행에서 허리가 아팠다는 말을 공감하지 못한다던 이야기, 스피드를 좋아해 과속 벌금을 몇백만 원씩 내도 속도제한 구간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던 이야기, 대학 졸업 전 선물로 부동산을 받는다는 이야기, 공부를 못해서 유학을 통해 외국인 전형으로 대학에 왔다는 이야기, 생일 파티를 위해 가게 하나를 전세 내고 이벤트를 벌인 이야기.


아는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치 집에서 만든 가내 수공업 로켓을 타고 달에 갔다는 얘기를 들은 것처럼 아득해졌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닌데, 최소한 내 삶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사소한 것에 깜짝깜짝 놀라던 경험도 있다.

썼던 인덱스를 그냥 그대로 버리던 모습에 놀랐다. 한 정거장 거리도 버스나 택시로 이동해서 놀랐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예시 답변으로만 보던 부모님의 직업들이 실제 직업인 것에 놀랐다. 학식의 3배가 되는 외부 밥값에 놀랐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어 7시부터는 금식이라 말한 뒤에, 정말 7시가 됐을 때 먹고 있던 음식을 쓰레기통에 바로 버릴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거의 모든 학생이 명품 하나씩은 들고 있어서 놀랐다.


초중고 학창 시절에 놀랐던 것들. 누군가의 집에는 항상 뜨거운 물이 바로 나온다는 것, 누군가는 장조림에 소고기만 쓴다는 것, 아름다운 가게나 나눔 장터에서 물건을 한 번도 산 적 없다는 것, 타임세일을 기다려본 적 없다는 것, 책이나 음식을 살 때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나는 이미 충분히 놀랐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와보니 놀랄 것투성이었다.


가난하게 살면 자꾸 내 상식이 세상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검열해야 한다. 모두가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각자의 평균을 생각하고 있고, 각자의 평균은 실제의 평균보다는 항상 높게 자리하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방의 평균 기준에 못 미칠까 봐 몸을 사렸다. 처음 본 것은 처음 보지 않은 척, 해보지 않은 것은 해본 척 애를 썼다. 그러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무심해지기였다. 적게 말하고, 적게 반응하는 것. 지금 생각하면 조금 촌스럽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나 싶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그렇게 살던 중에 솔직한 사람들을 봤다. 어떤 후배는 이런 음식은 처음 먹어서, 너무 즐겁다고 환하게 웃었다. 어떤 친구는 같이 간 호텔에서 ‘이게 첫 호텔의 맛인가, 좋아! 친절을 돈으로 사겠어!’ 농담하며 꺄르르 웃었다. 처음 막 발을 딛는 사람이 보여주는 감정의 폭발은 보는 사람에게 쉽게 전염된다. 처음 봤으면 처음 봤다고, 새로우면 새롭다고 기뻐해 준 덕에 나는 같이 먹는 음식이, 같이 갔던 여행이 더 즐거워지는 걸 느꼈다. 처음이라고 고백하는 얼굴들은 부끄럽거나, 어색하거나, 멋쩍은 게 아니었다. 솔직한 만큼 사랑스러웠다.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 얼굴을 보고서야, 내가 처음 본 것을 내색하지 않고 숨기느라 기쁘게 감동할 기회를 제대로 맛보지 못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내가 무심한 태도를 연기했기 때문에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줬던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험하지 못했다는 건 아직 감동받을 것이 남았다는 거구나. 그때부터 나는 더 많이 놀라고,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반응하려고 한다. 솔직한 만큼 사랑스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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