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력으로 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력 이동이 뭐냐면, 오로지 내 발의 동력만을 가지고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발로 구르는 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것. 나는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다 보니 꽤 잘한다. 시간이 괜찮을 땐 비교적 먼 거리도 자력으로 이동하곤 한다. 이제는 나만의 몇 가지 이동 규칙을 갖고 있다.
1) 먼 곳은 대중교통으로, 가까운 곳은 자전거나 도보로 이동한다. (동행도 괜찮다고 하면 함께 자전거나 도보로 이동한다)
2) 주로 시간이 급하지 않으며 동행이 없는 경우에는 먼 곳도 대중교통 대신 자력으로 이동한다.
- 자전거: 편도 20km 안은 자전거로 이동
- 걷기: 편도 6km 정도는 걸어서 이동
그날도 위의 규칙을 따라, 의정부에서 쌍문동까지 약 13km를 타고 이동한 날이었다. 무엇을 타고 왔냐는 말에, 내가 여기까지 자전거로 왔다고 답하자 사람들이 놀랐다. 여기까지 자전거로요? 1시간 정도 걸리지 않아요? 이 8월 한여름에요? 안 힘들어요? 내가 빨갛게 익은 얼굴로 대답했다. 네, 1시간 정도 걸려요! 힘들지 않아요! 재밌어요!
그렇게 말하면 어느 때는 사람들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힘들지 않냐는 걱정을 듣기도 한다.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둘 다 한꺼번에 듣는다. 대단한데, 힘들 것 같다는 거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다 보면 사람들이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어본다.
“왜 자전거를 타고 오셨어요?”
내가 자력 이동을 하는 이유를 알려면, 내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한다. 내 취미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어렸을 때부터 나는 매일 가야 하는 곳이 비교적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비극적인 아이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직장, 다음 직장까지. 고등학교를 제외하면 전부 다 40분 이상의 거리였다.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최소 5번은 버스를 타야 하는 운명이었다. 매일같이 버스를 타던 어린시절의 나는 생각했다. 버스는 지루하다.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고, 타고 가는 것도 지루하다. 특히 타야 할 버스를 놓쳐 기다리다 보면, 이 시간이면 그냥 걸어가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생각이 발걸음까지 옮겨 놓을 때 처음 집까지 혼자 걸어왔다.
어느 날 지각하지 않으려고 탄 택시가 너무 편해서 새삼스럽게 감동받는 것처럼, 매일 대중교통을 타는 일상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도보 생활은 일종의 일탈같이 느껴져 즐거웠다. 그 결과 45분 정도 걸려서 집까지 항상 걸어오게 됐는데, 그게 습관의 시작이었다.
자력으로 이동하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을 제공했다. 대중교통 안에서는 사람을 구경하거나, 대충 핸드폰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게 다였다. 반면 친구랑 걸어올 땐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길게 떠들 수 있었다. 혼자 걸어올 땐 강한 음악에 맞춰서 괜히 멋진 척 걸어 보기도 하고, 가볍게 콩콩 뛰면서 걷기도 하고, 또는 아주 천천히 걸어볼 수 있었다. 나만의 템포대로 걸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햇빛과 바람을 피부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나는 대중교통에 내 생의 많은 부분을 할당했던 만큼, 자발적인 자력 이동에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배분했다. 그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력 이동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이동을 운동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이동하는데 운동까지 된다고 생각하니 효율의 천재가 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력 이동 한 번당 약 1500원씩을 아낄 수 있었다! 심지어는 의도치 않았는데 환경을 위한 에코프렌들리(Eco-friendly)를 실천한다는 이미지까지 챙길 수 있다.
결핍은 생각치도 못했던 것들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도 그중에 하나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돈을 아끼다 보면 환경이 원하는 방향과 일치할 때가 많다. 나는 물 쓸 때만 수도꼭지를 틀어 놓는 것, 받은 봉투와 상자는 보관했다가 재활용하는 것, 꼼꼼하게 분리수거하는 법, 필요한 옷만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걷는 게 즐거운 것, 자전거 타는 게 행복한 것도 결핍으로부터 시작된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다.
그러니 왜 자전거를 타고 왔냐고 물어보면 저 위의 것 중 하나를 골라 말해주곤 한다. 그날 말하고 싶은 주제가 나의 대답이다. 오늘은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자력 이동은 생각보다 즐거운 에코 활동 중에 하나니까. (돈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렵지도 않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이동하고, 자전거로 이동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해봐서 아는데 같이 하면 더 즐거울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