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가난이 만들어 낸 윤곽

by 최초록별

가난은 삶의 얼굴에 얼마나 오랜 그림자를 지니게 하는가. 가난이 한갓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해도 가난은 삽시간의 태풍처럼 그 인생을 이곳저곳 파여 놓고 만다. 도저히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 없을 듯한 천재지변이 인생을 휩쓸고 지나가 버리고 나면, 울퉁불퉁해진 삶의 윤곽을 반듯하게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가난했던 나는 생활 수준이 떨어졌고, 한정된 선택지만 골랐고, 내 마음에 솔직하지 못했고, 모든 것에 쉽게 중독됐고,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쉽게 해쳤고, 간편하게 사랑하려 했고, 돈을 쓰는 방법을 몰랐고, 나와 남의 실수를 쉽게 포용하지 못했고, 모든 게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글에서 묘사했듯이, 내 삶 역시 이곳저곳 상처투성이다.


그렇지만 그 모든 글에서 묘사했듯이, 나는 몰랐던 걸 배워나갔고, 이해하는 법을 배웠고, 극복하는 법을 배웠고,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나갔고, 위험한 것을 끊어보려 노력했고, 나눠주는 걸 연습했고, 진심을 다해 사랑하려 했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모든 게 이전보다 나아질 것임을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


여기저기 길고 두껍게 파인 자욱들은 내 인생의 척추가 되어 삶의 입체감을 살려 놓고 있다. 이미 깊게 파여버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싶어질 때면, 나 자신에게 말한다. 결국 사람을 사람같이 보이게 만드는 건, 그 사람의 깊이를 정하는 건, 삶의 음영이라고. 볼록 튀어나온 부분과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들. 그 단차가 만들어내는 상대적으로 밝은 부분들과 상대적으로 어두운 부분들. 그 굴곡이 인간미일 거라고 말한다.


삶은 내 얼굴에 수많은 상처를 새겨 가는 일이다. 일에게, 사람에게, 상황에게, 그리고 가난에게 자기 얼굴을 내어주었던 모든 사람한테도 말해주고 싶다. 상처로 인한 굴곡이 생기는 걸 두려워하면 단지 흰 바탕밖에 될 수 없다고. 그저 새하얀 사람, 그냥 밋밋한 사람밖에 되지 못한다고. 그러니 너무 상처를 미워하지 마시라고. 이 책을 빌려 꼭 말해주고 싶다.


상처는 굴곡을 만들고, 굴곡은 음영을, 음영은 윤곽을 만들어낸다. 상처로서 당신만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 아름다운 윤곽 안에서 당신의 밝은 부분은 어두운 부분 가운데서 더 밝게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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