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이 퇴근길 버스에는 사람이 가득 찬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앞문으로 탈 때가 있다.
앞문에 오르면 역시나 사람이 가득 차 있어서 버스 기사님 근처에 서 있게 된다.
손을 쭈욱 뻗어야 겨우 승차기에 버스카드를 찍을 수 있을 수 있는 그 자리. 앞문에서 매우 가까운 자리. 위험해서 평소에는 좀처럼 서 있을 수 없는 이 자리.
만원 버스를 탈 때, 이 자리에서만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있다!
스포츠를 즐기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 자리에서 왼팔이나 오른팔을 들어 버스 내부 구조물을 잡는다. 기사님의 자리를 구분하는 봉을 잡거나, 문 구조물을 잡는다. 단단하게 고정되어 잡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괜찮다. 시선은 앞을 본다. 버스 통창의 앞 유리가 아주 큰 스크린같이 보일 것이다. 투명하고 거대한 유리창 밖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거나, 또는 아주 깜깜한 바깥이 보인다. 그 풍경을 바라본 채로, 발끝을 살짝 올려보자.
그러면 꼭 서핑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내가 인생의 8분의 1 이상을 대중교통에 바치고 만들어 낸 버스 서핑 놀이다.
버스를 타고 있으면서도, 내가 타는 건 버스 서핑이라는 최면을 걸어본다. 나는 서핑보드 대신에 버스를 타고, 도로를 유영하고, 드라이빙 리듬에 맞춰 거리 위의 차들을 교묘히 빠져나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즐거워진다.
이건 꼭 버스 앞자리에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앞자리에서 하면 가장 재밌지만, 다른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창문이 보이는 통로 자리에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만원 버스에서도 할 수 있다. 다른 자리의 만원 버스에 갇혀있을 때면 나는 피로한 눈을 지그시 감고, 봉을 잡고 있는 손을 살짝 느슨히 한 채로, 발끝을 올려본다. 그러면 이 버스에서 현실에서 조금 발 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적혀 있던 문장이 떠오른다.
정신이 더 이상 주인으로서 섬기지 않는 거대한 용은 무엇인가?
'너는 해야 한다' 이것이 거대한 용의 이름이다. 사자의 정신은 이에 대항하여 말한다. '나는 원한다'라고.
새로운 가치의 창조. 이것은 사자도 아직 이루지 못하는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획득. 이것은 사자의 힘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사자도 하지 못한 일을 아이가 한다.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한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너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 한다'라는 용을 '나는 탈출을 원한다'는 사자의 정신으로 물리치고, 사자도 하지 못한 일을 '그럼 현실 탈출할 겸 새로운 놀이 하나 만들지 뭐~'하는 어린아이 정신으로 적당히 대충 해내고 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행동 하에서, 나를 버틸 수 있게 하는 대응을 작게나마 하면 그만이지 않을까. 버스 서핑은 그런 노력 중 하나다.
만약에 견디기 힘든 만원 버스를 탔다면, 평소처럼 하던 영상 보기/노래 듣기/게임 하기도 너무 피곤하다면...
버스 서핑을 꼭 한 번 해보기를 추천한다. 즐거운 일상 탈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