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에서 버티기

by 최초록별

나는 한 평생 경기도 안의 작은 시에 살았다. 그러다 대학을 서울로 다니게 된 순간부터 꾸준하고 반복적인 이동루틴을 갖게 되었다.


지하철을 1시간 정도 타고 마지막 종점에서 내리면 긴 횡단 보도 건너편 끝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집으로 가는 버스는 단 2대.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보통 15분에서 20분이지만, 항상 버스 2대가 동시에 정류장에 도착한다. 때문에 한 대를 놓치면 다른 한 대도 그대로 놓치기 일수였다. 눈앞에서 버스 두 대를 놓치고 나면 다음 버스를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그 말은 퇴근 버스 타기가 전쟁에 가깝다는 것이다. 내가 강남에 있던 회사에서 돌아오기 위해 지하철을 타면 칼같이 퇴근하더라도 똑같이 칼퇴한 직장인들, 그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야근하고 퇴근한 직장인들과 싸워야 했다. 매 퇴근길 버스는 항상 만원이었다.


그날 도착한 버스는 특히 더욱더 사람으로 가득했다. 터질 것 같은 모습이 적재량을 한참 초과한 화물차처럼 위태로웠다. 정거장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도 주춤거리기만 할 뿐 문이 열린 버스에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버스 안은 사람 한 명이 더 들어가긴 힘들어 보이는 모양새였다. 사람들은 저걸 타느니 차라리 20분을 기다리는 게 낫겠다는 포기의 제스처를 보였다. 나는 20분을 더 기다리느니 차라리 오늘 길바닥에서 쓰러져있다가 그대로 내일 아침에 출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면 분명 노숙자나 쓰러진 사람으로 신고당할 게 분명했으므로 그냥 저 자리에 나를 넣어서 타고 가기로 했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뒷문으로 탑승해서, 문이 닫힐 수 있도록 나를 최대한 구겨보았다. 뒷문이 몇 번의 시도 끝에 닫힐 때 그제야 오늘도 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넘겼구나.


이렇게 안도하고 있는데 눈앞에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 문에 붙어 있는 주의 표시 문구였다.


'주의 (CAUTION) - 노란색 밖에 서십시오! 문에 다칠 수 있습니다.'


내 얼굴과 몇 cm 떨어져 있지도 않은 거리에 붙어있는 스티커가 단호히 경고하고 있었다. 노란색 바깥에 서야 한다고. 나는 내가 서 있는 바닥을 바라보았다. 노란색이었다.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한 달 전에도 나는 몇 번이고 이 노란색에 섰다. 원칙적으로는 들어와서는 안 되는 노란 구역에 기꺼이 서 있었다. 이마저도 오늘처럼 갖은 노력을 다 하거나, 또는 운이 맞아떨어져야 겨우 설 수 있었던 자리다. 나는 그 위에 설 때마다 주의문의 경고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직접 증명하곤 했다. 몇 번은 열리는 문에 몸을 얻어맞았고, 나머지 몇 번은 문 사이로 끼일 뻔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다 보면 왜 사람이 노란색 밖에 서야 하는지 깨우칠 수밖에 없다.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야했기 때문에, 버스 뒷문도 몇 번 더 열리고 닫혀야 했다. 나는 몸이 문에 얻어맞지 않도록 곡예를 부리며 생각했다. 버스는 왜 배차가 이렇게 적은 걸까, 버스를 타야 하는 사람은 왜 이리 많은 걸까, 그리고 나는 언제까지 노란색 위에 서야 할까.


사람의 삶에는 권장되는 규칙들과 규격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매일 매 순간이, 인생의 모든 순간이 안전하고 권장되는 영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안전하지 않은 자리, 못 본 척해야 하는 자리, 심신이 취약해지는 자리에도 사람은 있다. 정규직 사이의 위태로운 비정규직 자리, 무례한 농담을 웃어넘겨야 하는 술자리, 산업 안전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자리 위에서 우리는 버틴다.


내가 발 디딜 수 있는 곳이 애초에 존재해서는 안 될 곳뿐이라면 내 존재는 사회의 여분인 걸까. 세상에 살 수 있는 사람에 비해 살아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걸까.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인 걸까 싶어 울적한 기분을 떨치기 힘들었다.


이번에는 사람이 꽤 많이 내리는 정거장에 도착했다. 나는 문밖으로 먼저 내려서 수많은 사람들이 내렸을 때 다시 얼른 올라탔다. 드디어 노란색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버티면, 어쨌든 내 자리가 생기는구나 싶다. 내 자리가 계속 노란색에 머물진 않겠지,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집에는 가겠지. 이 버스가 그렇듯, 내 인생도 그렇게 되겠지. 그때까지는 사람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곳 위에서도 이리저리 곡예를 부리며 버텨봐야지 다짐한다. 그렇게 버티다 드디어 보통의 삶으로, 내 인생이 있는 곳으로 도착할 수 있도록.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날의 연속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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