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핫팩 챙기기
날씨가 쌀쌀해졌다는 것은 곧 마음이 시릴 날들이 다가온 다는 것이다. 나는 추위를 제법 잘 견딘다. 좋아진 요즘 세상에서는 몸의 추위는 얼마든지 견딜수 있게 하는 문명의 이기가 많이 나와있다. 정말 추운 12월이 되기 전까지 얇은 상의에 짧은 치마를 거리낌 없이 입고 다니던 시절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물건들이긴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어른들이 했던 나이를 먹어 보라던 말을 실감하고 있다. 내 무릎은 날씨만 궂으면 시리고 쑤시기 마련이고 고양이들 때문에 창문을 늘 열어 놓고 사는 현 시점에는 신축성 좋은 파스가 나의 수면 메이트가 된지 오래다. 비위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목에 두르는 아로마 찜질팩도 착용하고 잤을 것이다. (신기하게 나는 음식물 쓰레기는 잘도 버리면서 강한 향을 버티질 못한다. )
몸의 추위야 늘 애용하는 수면잠옷 처럼 부드럽고 폭신하며 따뜻한 무언가를 대체할 수 있겠지만 마음의 추위는 어쩔수 없다. 드세게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 곳에 서 있어야 한다. 그 자리를 피해 따뜻한 통나무집 따위는 없다. 도망 가려고 하면 계속 쫒아오기 마련이다. 어쩔수 없이 굳이 그 길 위해서 끝지점에 도달하기 까지의 시간을 버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시즌에 맞게 돌아온 검은 멍멍이와 같이.
누군가가 우울증에 이름을 붙여 줬었다.
나는 그걸 보고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우울증이라는 이름은 괜히 정 없고 차가워 보여서 마주칠때 마다 피해야 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이건 나와 평생을 함께 할건데 뭔가 좀 그럴싸 한 이름이 없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검은 개, 그것도 조금 어리광 부리며 나에게 안기는 이름은 아니어서 나는 검은 멍멍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원래 덩치크고 까만 대형견을 좋아하기도 하고 멍멍이라는 어감을 마음에 들어 하기도 해서 그런지 (댕댕이 안된다. 멍멍이가 좋다.) 줄곧 애용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잘만하면 꽤 잘 길들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꼼짝없이 나는 이 수명없는 검은 멍멍이랑 살아야 하는 운명인 거다.
여기서 잠깐,
우울증 치료가 힘드냐고 물어보면
그것도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을 찾아보면 없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년간의 셀프 데이터로 우울증은 약 복용과 규칙적인 생활이나 식습관으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왜 내가 평생 이녀석이랑 함께 하기로 하냐면 나는 그 세가지를 꾸준하게 지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 또한 대부분의 우울증 동지들이 그럴 것이다. 무언가 꾸준하게 하는 것이 힘들다. 침대에 누워서 숨을 쉬는거 정도 빼곤. 정말이지 선택이 아닌 강제성을 띈 게으름이다.
겨울이 되면, 빠르면 가을 정도만 되도 검은 멍멍이는 우리집 대문 앞에서 낮고 긴 울음소리를 낸다. 문을 열어 달라고 우웅- 하고 길게 우는 소리를 들으면 일종의 챔피언 같이 굳은 마음을 먹어야 한다. 이 녀석은 문을 열어줄때 까지 울 것이고 문을 열면 공기처럼 집안에 들어와 나를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문을 안열어 주고나 쫓아내는 선택지 따위 없다. 그럼 든든하게 가방을 챙겨 매고 추운 거리를 여러달 동안 헤맬 준비를 해야한다. 매번 가방을 챙긴다고 챙기지만 결국 그 여정 끝에는 준비된게 다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챙길수 있는 만큼은 챙기는 것이 좋다. 군고구마든 붕어빵이든 수면양말이든 뭐든. 마치 동화 이야기 같지만 나의 동지들에겐 그 기간이 다음 년도의 생을 이어 갈 것인가 아닌가의 기로에 선, 까딱하다간 다음 년도의 나는 없는 일이 비일비재 할 만큼 끔찍하고 잔인한 시즌이다. 그만큼 계절성 우울증은 무섭다. 내 주변에서 신년을 맞이 한다는 의미를 붙인 약속을 잡고 나오지 못했던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그들의 마지막 얼굴이 생기와 체온이 넘치는 실물이 아니라 흰색 도자기 단지면 얼마나 충격적이겠는가.
수많은 아이템 중에 핫팩을 챙기라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일단 기동성이 좋다. 그리고 원하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 게다가 원하는 부위에 붙일수도 있고 위치만 잘 잡으면 온 몸에서 냉기 정도는 물리칠 수 있는 야무진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단점을 뽑으라고 하면 조절이 안되는 온기가 간다는 것 정도가 될 것 같다. 원하는 온도, 그것은 세상에서 굉장히 어려운 축에 속하는 것 중 하나가 아닐까. 핫팩을 신나게 흔드는 동안은 올라가지 않는 온도에 슬쩍 짜증이 밀려오고 슬슬 온기가 전해져 오다보면 내가 원하는 온도 이상의 뜨거움이 피부를 통해 전해져서 추워 죽을거 같다는 중얼거림을 내 뱉던 자신은 고마운 줄 모르고 그 열기를 괄시하게 되고 그렇다고 또 괜찮은 온도가 되어 서너시간 즐기다 보면 빠르게 식어간다는 거다. 그거 말고는 크게 단점이 있을까? 아, 가끔 너무 가까이 있고 싶다는 생각에 핫팩이 터져버리는 경우가 있긴 하다. 무척 드물지만 말이다.
마치 이것은 겨울을 살아가는 나의 노하우 같은거다.
겨울을 위로해 주는 어떤 것을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한참 바닥을 허우적 대던 그 시절에 나는 그것을 못 찾아서 매일 저녁마나 그렇게 나를 괴롭혔다. 내일이 오는 것이 끔찍하게 싫어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서 어찌되었던 지금 이 저녁에 내 삶을 끝내는 종착지에 도달하고 싶었는데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나의 고양이들, 나의 월셋집, 우리 엄마, 꾸준하게 늘고 있던 내 대출금, 다섯캔째 마셨던 맥주 값인 만원도 내 카드로 긁었는데, 이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이 검은 멍멍이와 적당한 거리를 잘 유지하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나의 방어기재 아니었을까 생각도 든다. 내 정신은 당장 문 닫고 이 빌어먹을 인생 끝내자라고 계속 말하고 있는데 내 몸은 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자신은 좀 더 걷고, 먹고 마시고, 여러가지를 보고 느끼고 싶다고 했던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라고 물어보면 사실 나도 좀 설명하기엔 어렵다. 그냥 그렇다. 내 몸이 살고 싶어서 정신을 속였던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마음의 핫팩을 찾기 시작했다. 술과 약기운에 몽롱한 정신의 처음의 나는 가진게 별로 없어서 피가 철철 흐르는 팔과 손으로 고양이들을 쓰다듬으면서 어렵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피칠갑이 되어 있는 고양이들의 털 색이 마치 맛똥산 색이랑 비슷해서 괜히 가만히 있던 고양이들을 씻기면서 혼냈었다. 가뜩이나 목욕은 싫을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대역죄인도 없다. 샤워기와 고양이 샴푸를 든 팔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털 아래에 상처들을 보면서 금방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캔을 까주면서 울었었다. 그 이후엔 고양이들 한테 좀 미안해서 깨끗한 손과 팔로 안아주려고 노력했고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을 좀 더 진심으로 좋아하려고 노력 했었다. 나의 변덕이 언제 들이닥쳐 집 안의 모든 물건을 쓰레기장에 옮겨 놓는 부지런함을 떨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것도 힘들었다. 일단 돈은 내일의 내가 버니까 원하는 책들을 꼬박꼬박 샀었고 베개에 머리만 대면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다리의 이질감에 질주하듯 걸었던 그 새벽의 걸음이 아니라 잠요정 가루에 눈을 뜨지도 못했지만 슬리퍼를 끌고 나가 햇볕을 30분 이상 쬐며 낮 시간에 걸었다. 그것만으로 엄청난 체력적 소모를 가지고 와서 산책을 한 날은 대부분의 집안일은 하지 못하고 침대에 낡은 그물처럼 늘어져서 하늘이 어두워 지는 것을 바라봤다. 그래도 그런 날엔 조금 편했다. 나의 하루 체크리스트에 산책이라는 항목 앞 동그라미를 채워넣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그것으로 족했다.
뭐든 좋다.
마음의 핫팩 하나쯤을 찾으면
내년의 당신도 있을지 모른다.
지금 나의 핫팩은 내 파트너의 든든한 뱃살과 체온으로 고정되어 있긴 하지만 넉넉하게 여유롭게가 삶의 모토가 되었다 보니 다른것도 챙기고 싶어 하는 이 성질에 이것저것 찾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핫팩 찾기는 어렵다. 예전엔 꾸준히 영위 하지 않으면 어떠한가 했는데 그 때 내가 행복하면 된다는 의견이 좀 컸었는데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체력을 빨아먹는 행동이라 지금은 소소하지만 꾸준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아마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한 것 아닐까. (물론 내가 한달정도 글을 안썼던건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다. 근데, 그래, 키보드에 손 올리는 전초과정이 너무 귀찮아서였다. 이런 건 좀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동지들은 스스로 뭔가 생각하고 마음먹기 어려워 할 듯 하여 몇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출처는 내 경험이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고 (이건 정말이지 너무나도 찬성한다. 혹시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이라면 최대한 안 좋은 티를 내며 만나는 것을 추천한다. 적어도 안부를 물어주는 상대방은 잘 없다. 이 또한 지나면 안주거리가 되기 충분하다.) 나가는 것이 좋다면 작게는 산책 부터 크게는 여행도 추천한다. 1년에 두세번 이상은 다니는 것이 좋다. 기왕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 보다 가기전에 계획을 큼직큼직하게 짜 보는 것도 좋다. 엑셀에 빽빽하게 말고 여행가는 곳에 맛집 한두군데나 구경할 곳 정도면 충분하다. 플랜을 짜보라는 건 불안감을 줄이기 위한것이고 시간단위로 엑셀에 만들지 말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여행가면 그 일정 때문에 체력이 먼저 방전 되서 안된다. 불안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집착이 생기면 곤란하다. 또 특정 물건 모으는 것이 좋다면 일단 집안에 그 물건들을 두는 자리를 정하고 모으는 것이 좋다. 왜냐면 정리하는 것도 귀찮아서 포장도 안뜯고 쌓아둔다면 집안 환경에 악영향은 물론 내가 그 무더기에 속해 있는 쓰레기 같다는 감정 때문에 더 안좋아 질 수 있다. 우울증의 천적은 청소와 정리정돈, 그리고 샤워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샤워제품에 집착하는 것도 꽤 좋다. 향이 좋거나 성분이 좋은 제품을 모으고 사용하다 보면 내 이미지도 달라질 수 있다. (러쉬 사랑합니다. 돈 많이 벌면 재벌처럼 사러 갈거야. 여기서 부터 저기까지 주세요 이런거.) 그림 그리기나 글 쓰기 같은 것은 내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어서 추천한다. 물론 실력은 하면 할수록 늘수 있으니 조바심 내지 말라. 이런 개떡같은 글을 쓰는 나도 하고 있지 않은가.
꼭 이거 따라가라는 법은 없다.
반박시 니 말이 다 맞다.
이것 말고도 내가 모르는 것들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근데 이걸 읽고 있는 당신, 뭐 다른데서 다 말하는 것만 알려주냐는 생각이 들면 반대로 생각해 봐라. 다른데서 왜 알려 주는지. 좋으니까 알려 주지 않을까. 마치 요즘 유행하는 다 있는 그곳에 꿀템 베스트3 숏폼 같은 뭐 그런거다. 됐고 이건 참고만 하고 그냥 당신이 하고 싶은걸 해라. 대신 술, 자해, 도박, 절도 등등 내 몸에 안좋고 법에 위배 되는건 추천 하지 않는다. 내인생 니인생 갈길 가지만 이런 것들은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꽤 깊은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술이나 자해가 나와서 말인데 다음 글엔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볼까 한다. 거기서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결과를 남기는 지 알려 줄 수 있을것 같다. 구미가 당기는가? 그럼 구독자가 되어 달라.)
겨울을 잘 지내보자. 스치듯 지나가는 계절이지만 버티면 봄이 돌아온다. 잘 살라는 말도 안한다. 그냥 살아만 달라. 어차피 평범하고 평온한 인생 사는게 제일 힘들다. 저런것들을 지킨다고 해도 여전히 검은 멍멍이는 붙어 있겠지만 그 까만눈에 비춰지는 우울한 내가 좀 괜찮게 보여야 내일의 나도 맞이 할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보다 내일의 나는 썩 괜찮을 지 모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작되는 겨울에 서 있는 당신의 손에 따끈한 핫팩이 꼭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