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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실 Aug 10. 2023

소란스러운 축제

장마기간에 대한 이야기




한참 환청, 환촉 현상이 심할 때 나는 비 오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 자라온 환경이 만드는 취향이나 어떤 기억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 같은 이유로 내 테두리 안에 넣지 않는 어떠한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릴 때 눈이든 비든 하늘에서 뭔가 가 내리기만 하면 그것을 바라보는 것뿐 만 아니라 그것이 내 피부에 닿아서 이게 어떤 감각을 나에게 주는지 느끼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똘똘 뭉쳐 있는 아이였다. 그래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이 굳이 묻는다면 눈 쪽이 더 좋다고 하겠지만 비도 그에 못지 않게 좋아했다. 재미있지 않은가? 해가 뜨고 달이 뜨고 하는 재미없는 하늘에서 뭔가 내려서 땅을 촉촉하게도 얼게도 만든다는 거 자체가 마치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가고 있다는 자연의 시계 같은 느낌이었다. 꼭 자연의 신이라도 있다면 이번엔 내가 지나가고 다음엔 다른 신이 올꺼야 하고 나에게만 몰래 알려주고 가는 그런 비밀 이야기 같은 느낌. 나는 계절의 변화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조울증은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하루, 아니다. 하루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거의 5분, 10분마다 내 기분은 극과 극을 달렸다. 우울로 기분이 바닥으로 치닫다가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려도 하늘을 날아 갈 수 있을 것 같이 기분이 좋아 졌다가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가 뭐든지 하고 싶어 졌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당연히 하루에 쓸 수 있는 한정적인 체력은 남들의 두배, 세배 빨리 소진될 수 밖에 없었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게 비가 오는 날엔 더 심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비가 오는 날에 밖을 나가면 그렇게 시끄러울 수 없었다. 늘 듣고 다니던 자동차 소리, 사람 소리 같은 일상적인 소음들이 엄청나게 크고 선명하게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 빗소리는 꼭 내 귓가에 늘 따라다니는 그 아줌마 목소리 (내 환청은 40~50대 정도의 여성의 목소리였다.)뿐만 아니라 아저씨 목소리, 아이 목소리, 청년 목소리 등등 마구잡이로 섞여 잔소리와 폭언을 쏟아 냈다. 원래 없었던 집중력 조차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긁어 모아서 버리려는 듯 그렇게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나는 겉으로 봐선 뚱뚱하고 못생긴게 예민 오브 예민충이 될수 밖에 없었고 성격도 좋지 않으면서 회사도 제대로 못다니고 파트타임을 세개나 뛰면서 겨우겨우 대출과 카드값을 갚아 살아가고 있는 별 볼일 없는 인생으로 보였다.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나를 나락으로 끌어 내리고 있었다.




비가 통,통,통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노크소리 같았다.




천천히 내리는 비가 아니라 제법 쏟아지는 장마 비는 그놈의 성격을 닮아 급하기 그지 없다. 잔잔하게 내리는 비가 내는 규칙적인 소리와 달리 우두두 하고 쏟아지는 장마 비는 금방 유리에 왔노라 하고 도장을 찍기 마련이다. 얼마나 예민했으면 나는 그것 조차 무서웠다. 그 비가 내리는 동안 하루종일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실제로 내가 있는 공간의 문은 멀쩡하게 잘만 닫혀 있는데 몇번이고 문이 잘 잠겨 있는지, 창문이 잘 닫혀 있는지 벌어진 틈은 없는지 보곤 했다. 뭐가 들어올거 같았냐고 물어보면 글쎄, 지금 생각해 보면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말 할수 없는 여러 존재가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그 당시 내가 알고 있는 존재들 중 나를 보호해 줄수 있는 존재보다 나를 아프게 할 존재들이 훨씬 많았었던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밥벌이를 위해 아침마다 밖을 나가는 위해 정말 심청이가 인당수행을 정하는 것 만큼 큰 맘을 먹어야 했고 지하철에서 쓰러지거나 토하러 가야하는 시간대 까지 계산해야 해서 한시간 일찍 나오는건 기본이며 그 외에 대부분의 시간엔 스스로 갇힌 원룸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통, 통, 통 하고 불규칙하게 울리는 소리가 10평도 안되는 작은 원룸안을 울리면 나는 고양이 두마리를 안고 가만히 귀를 닫고 구석에 앉아있었다. 비가 그치고 다시 해가 뜨기를. 해가 뜨지 않아도, 흐린 날이라도 이 비가 제발 그치기를. 조울증이 주는 환청과 환촉은 자연의 신이 전하는 비밀 이야기를 좋아하던 어린 나를 까맣게 잊어 가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비를 싫어하냐고?




내가 지금  정신병 몇년차인데 아직까지 그러고 있으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장마기간을 맞이하는 나름의 다 방법이 있다. 매체에서 시키는 거 이것저것 해 봤는데 사실 이게 나에게 맞는걸 찾는게 제일 좋긴 하다. 근데 그걸 또 그 매체에서 찾기 보단 이것저것 하다가 어? 이게 괜찮은데? 싶은걸 찾는게 맞는것 같다. 나도 그런식으로 찾아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 방법이 고정적이 아니라서 이걸 해봐! 라고 이야기를 못하겠다. 먼저 이야기 했다시피 나는 기분의 리듬이 굉장히 다이나믹 하고 (말이 좋아 다이나믹이지 그냥 조울쩐다) 변덕이 굉장히 심하기 때문에 뭔가 추천 했다가 뭐야? 이 사람 전에 이러케 이야기 했잖아? 라고 유지보수 요구를 할 가능성이 거의 내일 당신이 치킨이 먹고 싶어질 확률과 동일하기 때문에  그건 좀 접어두는 것이 좋겠다. 그냥 최근 6개월 사이에 내가 자주하는 것들만 몇가지 나열해 보겠다.



1. 잠을 충분히 잔다. (그것이 회사를 째고 학교를 째고 하루를 통채로 날리는 일이라고 해도)

물론 무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게 또 불가능 한 것도 아니다. 제발 쓸데없는 거 하지말고, 내일 해도 되는건 그냥 미뤄두고 갑자기 거슬려서 화장실 청소 같은거 하지 말고 자라. 정병러 한테 제 시간에 자고 제시간에 일어나는 건 약 챙겨 먹는 것 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상태가 안 좋다고 느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라. 자주가 되서는 안되지만 (솔직히 당일 연차 내서 자는거 두번 이상 되면 병원가자. 님 지금 좀 심각하다.) 하루정도는 잠에 투자해도 좋을 것 같다. 이게 생각보다 꽤 회복이 많이 된다. 그렇지만 이것도 그닥 성공적으로 완료될 리가 없었던 터라 나는 나만의 규칙을 정해 놨다. 24시간 이상 안자는데 도중에 일어났다가 다시 자면 안되고 술이나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잔다는 규칙. 만일 이게 안되면, 나는 술이나 약 없이는 못잔다 라고 하면 당신은 지금 잠이 필요한게 아니라 수면 루틴이 필요한거니까 그것부터 챙기는게 나을거 같다.



2. 좋아하는 것을 하자. (긍정적인 거라면 뭐든 좋다)

   개인적으로 나는 요즘 과일 먹는걸 자주 하고 있다. 과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수준이다) 식사를 제때 하는 미션은 아직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럭저럭 배도 채울수 있고 게다가 달콤한 맛에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이렇게 달달한 과일을 많이 먹는데 내 당뇨수치는 아직 정상인게 신기할 정도이다. (간당간당 하긴 하다. 요즘 조절 중이다) 요즘은 사다 모은 책을 뒤적거리는 일도 하고 있다. 집중력이 바닥이라 진득하게 책을 다 읽진 못한다. 이 책도 찔끔, 저 책도 찔끔, 요 책도 찔끔 읽는데 그러다 보면 그 중에 한권씩은 다 읽게 된다. 굉장한 활자중독에 엄청난 다독가이자 유쾌하고 지적인 대화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사랑해서 책을 읽으며 중요한 부분을 연필로 밑줄 긋지 않고 책을 읽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중인 내 파트너는 나를 이해하는것을 포기했다.



3. 한 곳에 집중하지 않고 멍 때리기

   멍 때리기는 자주하는 편인데 시간이 짧아서 문제다. 머릿속에 해야할 일들이 늘 떠다니는 편이라 길게 하질 못한다. 그래서 좀 길게 해보려고 하는데 어려워서 그냥 어떠한 것에 집중하지 않기로 했다. 비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 천둥 소리, 바람 소리 등등 장마가 만들어 내는 소리에 집중 하지 않으면 무서움이 좀 덜해진다. 이 쯤되니 정신병 안정기라 꽤 그럴싸 하게 넘길수 있게 되었는데 요즘은 우리집 화재경보기 불빛이 무서워 종종 파트너를 부르기도 한다. 그 말은, 훈련중이라는 거다.



장마는 두려운 시간이었다. 나는 침수지역에 사는 것도 아니고 집에 물이 세는 것도 아니었는데 무언가에 대해 대비를 해야했고 늘 겁에 질려 있었다. 그 시간이 끝나지 않을것 같았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그럭저럭 장마는 나에게 시끄러운 기간이지만 평온하게 지나갈 수 있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시도한 그 모든 것들이 헛된 것들이 아니기 떄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무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은 앉혀 놓고 3박 4일 이야기를 해 줄수도 없는 것이고 그 방법이 잘 맞는다고 할수도 없지만 누군가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이야기 해 줄수 있다. 한 때 내가 겪은 이런 것들 때문에 아직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얕잡아 보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도 노력하는 편이다. 누군가 이야기 했듯이 나의 우울도 너의 우울도 그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아픈 것이니 누가 더 낫고 더 아프고 이야기 할 것은 없다. 다만 모두가 이 길을 잘 벗어나서 살만한 길에 들어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태풍이 왔다고 한다. 낮 시간에 고요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별 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어갔던 나를 비읏듯 비가 많이 오고 또 그 날의 소리가 작은 방에서 울렸다. 나는 더 이상 귀를 막지도,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지 않았다. 나의 할일을 하면서 소란스러운 축제의 기간을 보낼 생각이다.




당신의 장마도 축제의 피날레를 무사히 맞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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