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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실 Jul 19. 2023

꼬리 물린 생각

늦은 밤, 이른 새벽의 사색에 대하여


정신과 약을 한 번쯤 먹어 본 사람들은 이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물론 먹어 보지 못한 사람에게도 설명할 수 있는 느낌이지만 뭔가 말로 설명하자면 0.005%쯤 부족한 무언가가 있는 그런 느낌. 나는 그런 느낌 때문에 나를 해하는 방법으로 제대로 복용하지 않은 약들은 마치 쓰지 않아 세척도 제대로 하지 않는 액세서리처럼 종류 상관없이 한 번에 어딘가에 모아두곤 했다. 그리고 달이 차오르는 것처럼 어느 날. 

 


원샷, 꽤 독한 술과 함께, 나의 지옥같은 인생에 치얼스.

 


일단 그 0.005%쯤 부족한 말이지만 가장 비슷한 말은 무척 나른하고 졸리다는 것이다. 개과천선하여 꽤 수년째 착실한 약 복용법을 지키고 있는 나는 그 느낌 때문에 약을 먹으면 대부분 한 시간 이내 잠이 들곤 한다. 마치 지금부터 내가 수면에 들어갈 것이니 이 집안에 모든 물체들은 모두 조용해질 것이라는 선전포고를 하는 것처럼 정직하게 약과 물을 들이켠다. (가끔 쪼개서 처방해 준 약이 입안의 물과 만나자마자 만들어내는 그 쓴맛이 너무 싫어서 홍차음료와 먹기도 한다. 그것도 무척 달콤한 음료로.) 그리고 나서는 꽤 어려운 일을 해 냈다는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싱크대를 벗어난다. 안타깝게도 내 저녁 루틴과 같은 이 행위는 머릿속에서 신호를 보내오는 착실한 약 복용을 벗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바로 잠이 들고 싶지 않을 만큼 생각이 많아질 때이다.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네들, 흘러넘치도록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요즘 유행한다는 MBTI의 두 번째 자리가 S인 나는 그것의 기준으로 봤을 때 몽상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이게 병 때문인지 내 원래 본질이 그런 것인지 말을 트기 시작했을 때부터 일명 쓸데없는 공상에 빠지고는 했다. 지금도 그렇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서 잠을 이룰 수 없는, 아 정정하겠다. 잠을 자고 싶지 않은 밤이 종종 찾아오곤 한다. 그래서 나의 저녁 루틴을 건너 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치마와 체육복 바지를 함께 입고 있던 교복 차림의 내가 신성한 수업을 째고 담을 넘어 코앞의 떡볶이집 이모와 조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거창해 보이지만 그냥 해서는 안 되지만 재미있는 일이라는 거다.


그래도 양심의 가책은 좀 있는지 꽤 이른 시간에 하는 편인데 저녁을 먹고 이제 슬 자볼까 하는 저녁 10시쯤부터 시작해서 아, 이제 잠을 자지 않으면 내일 주옥 되겠구나 하는 새벽 3시쯤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늦은 밤과 이른 새벽의 사색이라고 스스로 호칭하고 있다. 멋지지 않은가. 사색은 철학자나 요가 수련자나 하는 거창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게 별거 아니다. 생각 말고 공상, 공상 말고 사색.


그렇다고 뭐 대단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닌데 보통 내일 할 일이나 지금 당장 할 일이나 앞으로 할 일이나 등등등 일에 관한 생각을 한다. 누가 보면 내가 엄청난 워커홀릭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와 같은 침대를 쓰는 내 파트너 “두밥”씨는 자주 그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앞서 말했듯이 내 집중력은 정말 지속시간이 짧고 이쯤 되면 그냥 ADHD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딴짓을 잘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거다. 아, 내일은 이 일을 해야지. 어? 오늘 이거 했어야 했는데 못했네 지금이라도 할까. 아니야 이것도 못했네 그럼 이걸 먼저 하고 그걸 하고.. 이번 달에 무슨 약속이 있었던 거 같은데 (꼭 핸드폰을 뒤적이다가 자주 하는 편이다) 그때 누굴 만나서 뭘 하고.. 이런 식으로 생각이 계속 이어지는 거다.(스케줄 관리를 엄청 잘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렇게 생각해 놓고 실천하는 건 몇 없다. 말하지 않았는가. 이건 사색이다.) 어쩌면 일이라는 틀 안에 갇혀서 하는 생각이니 사색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름은 내 맘대로 붙이는 것이니 뭐 어떤가. 괜찮다. 그래도 생각을 한다는 건 아직 살 의지가 있다는 의미니까. 온 세상의 우울증 환자분들, 그대들의 우울한 생각도 살고자 하는 마음에 하는 것임을 꼭 알아주길 바란다. 사실 죽을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실천해야지 하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 다수의 경험상 그랬던 거 같다.



왜 같다 라는 말로 끝나냐고? 
제정신으로 죽을라고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아무튼 내 늦은 밤, 이른 새벽의 사색은 신생아의 체력을 가지고 있는 내가 다음날의 체력을 당겨쓰는데 어리석게도 선이자를 떼고 이후 이자까지 넉넉하게 얹어서 갚아야 하는 나쁜 점도 있지만 좋은 점이 더 많다. 가끔 신박한 아이디어가 튀어나올 때도 있고 (나오기만 하고 적어 놓진 못한다. 그래서 까먹어서 내가 아직 가난한 거 같다. 다 적어 놨으면 난 못해도 경기 인근 지역에 전원주택 하나쯤은 있었을 듯. 근데 이러는 게 왠지 나뿐인 것 같지는 않다.) 지금처럼 뭔가 저질러야겠다는 생각이 날 때도 있다. 어디서 숨어있던 행동력과 추진력이 마침 타이밍이 절묘하게 떨어진 버스 환승처럼 튀어나와서 행복한 생각에 빠지곤 한다. 꼭 꿈을 꾸는 거 같다. 세상은 이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것이라고 표현을 한다. 이 정도로 깊게 생각을 하다 보면 주변에서 누군가 말을 거는 소리는 물론이고 시야도 흐리멍덩 해져서 내가 지금 무엇을 보는지 인식하는 기능을 뇌가 차단해 버린다. 앞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면 자면서 꿈을 꾸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도 다른 점이 있다면 대기모드로 돌리지 않고 덮어놓은 노트북처럼 계속 내 체력을 깎아 먹고 있다는 정도?

     

다이빙이 끝나기 전 바닥을 찾아 계속 내려가고 있던 나는 그런 상태일 때 제일 많이 하던 생각이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사실 그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답을 아직 못 찾았다. 누군가는 왜 태어났는지 생각 말고 태어나서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라는데 일단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되는 내가 납득할 리가 없다. 지금 내가 내려가고 있는 이 구멍에 바닥이 언제 튀어나와 내 사지를 찢을지 모를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 이야기는 귓등에도 안 들어왔고 그렇다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엔 나는 그 이유라도 꼭 찾아야 했다. 왜? 습관적으로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살던 답답한 시절이니 남에게 의지해서라도 해답을 찾고자 했던 거다.


     

아마 자기 계발 서적이나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보는 심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때의 나는 뭔가 꼬일 대로 꼬여서 그런 이야기를 쭉 보고 듣고 씹고 맛보고 있자니 뭔가 다른 사람의 생각에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될 거 같았다. 답은 내가 찾아야겠다는 만화 주인공 같은 대사를 머릿속으로 치면서 분기탱천했지만 그래서 뭐? 달라지는 게 없는걸? 나는 여전히 구멍의 바닥을 기다리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더 보기 버튼에 가려진 이야기가 많이 있겠지만 결론을 내린 건 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얼마나 깔끔하고 파격적인 결론인가.
그럼 뭐 때문에 살아야 하는데?
그러니까 내가 답을 못 찾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도 모른다. 왜 살아야 하는지. 그럼 왜 죽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도 나도 모르지. 현재 나는 애초에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할 만큼 난 한가하지 않다. 일단 인생에서 뭔가 책임을 지게 된 성인이고 (된지 좀 오래되긴 했지만 나는 철이 없었고 여전히 철이 없기에 가장 먼저 이 이유를 내세워 본다) 지금 내가 벌려놓은 일을 수습하기에도 내 남은 인생을 다 쓸 거 같은데? 내가 죽으면 내 대출금은? 내 카드값은? 내 고양이들은? 하다못해 내 장례식 비용은? 일단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대책 없이 죽어버리면 이건 누가 다 수습할 것인가? 이 생각을 한번 해 보면 죽겠다는 생각이 3분의 1 정도는 쏙 들어갈 수 있다. (아니면 당신은 당신의 가족과 주변인을 괴롭히는 개쓰레... 흠흠! 아무튼 개인차가 있지만 이 정도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아직 괜찮은 거다.) 어쩌면 누군가의 노래처럼 올 때 저세상 갈 때 빈손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데 그거 진짜 인생 잘 살아야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아버렸다.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에서 내 삶을 마칠 수 있다는,
마치 원카드 게임 룰처럼 내 손에서 모든 카드를 다 털고
호탕하고 시원하게 원카드! 한번 외치고
까매진 스크린에 엔딩 크레디트를 올리는 그런 이상적인 끝 말이다.



늦은 밤 이른 새벽의 사색 중에 이 기준을 생각해 내고 나서 얼마나 화들짝 놀랐는지 (유레카! 하고 먼 옛날 과학자처럼 알몸으로 춤이라도 출 거 같았는데 생각보다 아니더라) 손으로 쓰다듬고 있던 고양이 뒤통수를 나도 모르게 꽉 쥐었다. 말 그대로 개 소리 같지만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거기서 다시 시작했던 거 같다. 내 대출금만 다 갚고 가야지, 내 카드값 다 갚고 가야지, 내가 장례비용만 모으고 다시 시도한다는 생각을 하고 삶에 집중을 하다 보니까 어느새 그 실행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애초에 그 대출금, 카드값, 장례비용 미션 따위는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다. 여전히 가지고 싶은 것은 많아 사야 할 것은 많고 비워진 한도를 채우는 것은 쉬우며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세상이고 결정적으로 그걸 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던 내가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밝고 긍정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괜찮다. 다시 살고 싶어질래! 우울에서 벗어날 거야!라는 허황된(이건 전적으로 내 주관적 기준이다. 나는 우울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사라졌던 검은 개를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은 수도 없이 반복된다.) 생각보다는 이런 작고 현실적인 기준을 한번 세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미 머리가 부정적인 걸로 꽉 들어찼을 땐 부정적인 걸로 덜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거다. (그렇다고 도박이나 살인이나 뭐 기타 등등 법을 어기는 건 좀 아니다. 인생 바꾸자고 인생을 망치는 똥멍청이 같은 짓을 하진 말자)

 

한참을 이렇게 사색을 하다가 보면 꽤 질이 좋은 졸음이 찾아온다. 오늘도 쓸데없이 무언가를 해 냈다는 느낌의 졸음.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해도, 직장에서 일이 진전이 없다고 해도, 하고 있는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아 한 장도 넘기지 못했다고 해도 꽤 쓸데없이 무언가 열심히 해 낸 결과의 졸음이다.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떠한가? 쉬지 않고 사색이라는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 낸 나의 뇌와 체력에게 박수를 보내 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행동하는 일이 남았겠지만 충분히 그대는 다음 단계인 그것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하고 싶어지고, 욕구에 약한 것이 인간인지라 언젠간 그대의 팔과 다리가 움직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공상으로 꽉 찬 뇌를 미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죽고 싶은가?


       

일단 너의 카드 내역서 혹은 대출 상환 일정부터 한번 보자. 어쨋거나 저쨋거나 내일을 살아갈 힘을 줄지도 모른다. 그것이 머리끄댕이 잡고 캐리 하는 책임감이라는 놈일지라도, 


 

오늘 더웠던 낮의 열기를 품어주는 밤 그림자의 끝이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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