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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실 Aug 18. 2023

비워내고 비워내도

아가리 미니멀리스트의 고백



그런 시즌이 있다. 이걸 시즌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때때로'가 아니라 1년 중 제법 그 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간은 분기라고 하기엔 짧고 월간이라고 하기엔 길다. 한마디로 그냥 오고 싶을 때 온다는 것이다. 변덕쟁이 주제에 말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게 생각보다 어느 정도 규칙이라는 것이 있어서 제법 물건을 모았다고 생각이 들면 곧 그것을 어느 정도 비워야겠다는 충동이 강하게 드는 시즌이다. 그렇다. 미니멀리스트는 물건을 사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는데 난 늘 실패한다. 난 아가리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한다. 그것도 꽤 꾸준하게.



우리 모친은 무언가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집안 돌아가는 것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던 부친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그 시절의 그 누군가의 아버지들 마냥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것을 더 즐기셨던 터라 집안 살림은 온전히 모친의 몫이었다. 내가 교복을 입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 살림은 그나마 다른 집보단 꽤 괜찮은 축에 속해서 성실하진 않았지만 제법 목돈의 생활비를 쥐여 주었던 부친 덕에 모친은 그것을 아끼고 아껴 집안의 물건들을 바꾸는 것을 좋아했다. 예를 들어 겨울철 동안 썼던 침구 세트를 화사하게 레이스가 달린 밝은색으로 바꾼다든지 아토피가 심했던 나를 위해 내 방의 침구류를 계절마다 새것으로 교체하고 그것을 그대로 쓰지 않고 빨아서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말려 태양의 냄새를 가득 실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나는 버릇이 잘 못 들어서 현재 과학의 산물인 건조기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친은 집 안에 계절이 들어오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 당시 항상 우리 집엔 식물이 곳곳에 있었고 계절마다 알맞은 커튼과 침구, 식기들이 보였으며 계절마다 꼭 먹는 음식들도 있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과일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작은 장식품 같은 것을 좋아해서 소소하게 장을 보러 나가면 꼭 한두 개씩 사서 오는 것이 모친의 거의 유일한 취미였다. 꽤 애정과 증오가 섞인 이 지역으로 이사 오기 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모친은 하얀 지점토로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꽤 잘했다.  (내가 꽤 손재주가 좋은 건 모친의 영향이 아닐까.)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그저 그런 나무판자 바구니가 화려한 포도송이와 장미꽃이 달린 멋들어진 예술 작품이 되어 있었고 어제까지만 해도 하얗고 심심한 간식 접시는 뽐내듯 예쁜 제비꽃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그때마다 내 반응을 살피는 모친의 젊었을 적 눈을 기억한다. 놀랍게도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그때의 모친은 누군가에게 칭찬받을 일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돌아보니 그때 조금 더 과하게 예쁘다고 이야기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자기의 새끼에게 받는 칭찬도 그 당시 힘들고 어려웠던 모친에겐 조금 기운 나는 일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돼서 부터 시작된 밖에서 새는 바가지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로 심해지고 있었던 우울증으로 모친은 나를 종종 손에 잡히는 모든 것으로 때리기도 하고 (이건 모친이 내가 20대 후반쯤 나에게 사과했었다.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그 매질이 화풀이였다는 것을 알았던 건 좀 놀라웠다.) 입도 험하고 그다지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건 다 그 시절을 견뎌 내고 있는 모친의 노력이었으리라. 아마 나는 그 중 얼마 안 되는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하여튼, 우리 모친은 물건을 모으기만 하고 버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직접 만드는 그 작품들이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작은 소품들이 집안 곳곳을 장악해 마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에 내가 걸리버쯤 되는 존재인가 생각하게 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뭐든 하나 잘 버리는 것이 없었다.



물건 버리기 병에 아마 그 부분이 좀 일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조울증 환자들의 증상 중 하나가 돈을 굉장히, 그러니까 돈의 가치를 모르는 것처럼 쓴다는 것인데 (이걸 알았을 때 뭔가 차가운 찐 감자를 먹고 체한 게 한 삼일쯤 가고 있는데 한방에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돈은 물건을 살 때 써야 하는데 그저 교환 수단으로 생각하는 거다. 아니, 생각이란 걸 하지 않았다는 게 더 맞을 거 같다. 사고 싶다 라는 사고에서 물건이 내 손에 쥐어지기까지 크게 고민하는 절차가 삭제된 것 같았다. 심지어 그것이 음식 같은 거라면 더더욱 심했다. 목이 말라서 커피든 음료든 사서 입에 대려고 하면 기분이 나빠져서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일이 수도 없었다. (이 기회를 빌려서 그 당시 내 뒤에서 당황하던 직원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절대로 당신이 만든 그 음료가 가치가 떨어져서 뒤돌아서서 바로 버린 것이 아니다.) 사고 싶어서 안달하던 물건을 손에 쥐는 순간 가치가 없어져서 그대로 집 안에 처박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쓰레기 같은 절차가 아닐 수 없다. 물건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그렇게 많이 듣고 살았는데 그 당시 나는 그걸 그냥 지우개로 박박, 아니 그냥 칼로 깔끔하게 도려낸 것처럼, 아예 태어나서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던 것처럼 살고 있었다.



논리는 단순했다. 일정 양의 물건이 모이면 버린다. 
왜냐?
다른 물건을 채워 넣어야 하는데 내 집이 늘어나진 않으니까. 



나는 깔끔하고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는 것이 좋고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좋다. 그래서 청소든 정리든 자주 하는 편인데 새로 사온 물건이 구석에 쌓여서 묘한 기류를 뿜어내고 있다. 그럼 정리를 해야지, 근데 자리가 없어 그럼 뭐? 이전에 있었던 가치가 떨어진 물건을 버려야지. 그게 책이든 액세서리든 부터 침대든 책상이든 뭐든.



손때가 탄 물건이 주는 귀함과 안정감을 그때는 몰랐다. 당시 내가 가진 물건은 거의 새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새 물건이 내는 냄새를 좋아하긴 한다.) 무언갈 사 들고 작은 방 안으로 돌아올 때 채워지는 것이 없이 자꾸 공허하기만 한 그 마음 때문에 나는 물건을 사다 모으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의 모친도 그러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남편, 마음대로 되지 않는 딸, 구박을 넘어서 핍박에 가까운 시댁과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친정, 그리운 고향에 모두 두고 온 친구들과 연이은 뒤통수에 점점 사람을 믿지 못하게 변해가는 자신을 채우려고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채워지고 있는 그 집으로 위안 삼았던 것처럼 나도 똑같이 그러고 있었다. 아, 이건 내가 얼마나 사고 버리고를 반복해도 채워지지 않아. 머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내 지갑은 열리고 내 카드값은 늘어나기만 했다. 웃기게도 오히려 그것이 내 삶을 연장해 주고 있기도 했다. 꼴에 민폐 전문가는 되기 싫어서 이것만 사고 죽어야지, 다음 달 카드값만 다 갚고 죽어야지. 대출 끝나고 죽어야지 등등 블랙코미디와 같이 나는 삶을 연장하고 있었다. 자살하면 내 빚이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나는 뭔가 더 알아보고 죽을 길을 찾기엔 그다지 에너지가 없었다. 나중에 자살유가족에게 그런 부분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 같은 것들이 있다는 걸 알았던 때는 



내가 죽기를 귀찮아서 관둔 시점이었다.



곤도 마리에의 책을 몇 권 읽어 보니 사람은 참 깔끔하게 살 방법이 다양하게 많았다. 주변을 이렇게 심플하게 하고 살 수 있구나 하는 그 내용에 감탄하며 이것저것 실천해 보려고 하자 내 삐뚤어진 자살 충동은 그래, 기왕 죽을 거 주변 좀 정리해 놓고 죽자 라는 이상한 길로 가기로 했고 그건 내 환경을 넘어서서 내 신체에 적용되었다. 한마디로 웰빙보다 웰다잉을 하기로 했는데 이거 생각보다 어렵다. 지금 혹시 죽으려고 준비 중이거나 가까운 시일 내에 시도할 예정인 사람이 있다면 한마디만 좀 해주고 싶은데 당신이 죽고 나서 주변에 생각보다 정리할 것이 많다. 생판 모르는 남이 시체 치우기도 힘들 텐데 민폐쟁이가 되는 거 보다 다른 건 손이 좀 덜 가게 기왕 시도할 거 좀 정리라는 걸 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집안도 좀 정리하고 내 몸도 좀 정리하고 기왕이면 깨끗하고 좋은 환경과 모습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거 아는가? 저 과정을 하다 보면 신기하게 죽고 싶은 마음이 좀 수그러든다. 청소하다가 힘들어서 죽을 날을 미루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몸에 보기 싫은 털 때문에 왁싱 시술 중에 극도의 따가움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가 왠지 모를 억울함에 펑펑 울고 집에 돌아왔는데 알 수 없는 후련함에 매듭지어 놓았던 밧줄을 치워버릴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면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 해봐라. 



개인적으로 네일샵보단 왁싱샵을 추천한다. 굉장히 깔끔한 기분이 든다.



아마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죽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걸 다 비워내는 것도 힘든 일일 것이다. 거둬내고 비워내면 마치 물미역과 같이 앞을 가리는 것이 사람의 욕구 아닐까? 나도 그 최종목표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일단 내가 덕질을 하고 있는 한 불가능하다. 절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을 통달한 큰스님이 될 것도 아니고 뭐든 베푸는 제2의 마더 테레사가 될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 욕구에 매번 지면서도 비우고 거둬내는 일을 조금씩 쉬지 않고 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 나쁘게 보이지 않으면 된 거 아닐까? 그게 물질적이든 마음 속이든 꾸준하게 하다 보니 조색기 아래  페인트 통 내부처럼 어지러웠던 내 마음의 색도 조금씩 거둬지고 정리가 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아마 언젠간 내 마음의 색도 두어가지 색으로 단순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집 안 어딘가에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보며 저걸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움직이는데 부딪히는 물건을 바로 버리지 않기 위해 생각이란 것을 하려고 노력한다. 비워내고 난 후에 오는 공허함 때문에 또 새로운 물건을 맞이하는 즐거움보다 이제 손때가 탄 물건에 애정을 쏟고 그 물건에 다른 역할도 주는 방법도 꾸준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도 안되면 가차 없이 버린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도 여전히 비우고 비우는 중이라서 그런 듯하다. 또한, 여전히 웰다잉은 실천 중이다. 다만 그 죽는 날이 꽤 멀리 도망쳐 있어서 위기는 넘겼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날이 와도 꽤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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