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체의 이질감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야기하자면
이 이야기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시선도 무시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자신에 신체에 대한 바램, 희망 사항, 욕망이라기보다 세상에서 자신을 제일 사랑해 줘야 할 자신 스스로 가져서는 안 되는 자신의 혐오에 대한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 경험에 대한 굉장한 주관적인 이야기이고 어쩌면 누군가의 이야기 일 수도 있다. 결론은, 그냥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읽어주면 만족이지만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기억해 주면 좋겠다는 꿍꿍이도 있다는 것이다.
이질감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괜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꽤 내 생활에 밀접하게 붙어사는 이 녀석은 가끔 계단을 내려가다가 다음 층계를 밟는 내 발걸음을 이상하게 만들어 낯깎이는 일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말을 하다가 이 단어가 맞나 싶어 이미 뱉은 후인데도 입안에서 뱅뱅 맴돌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평화로운 일상 안에서 나 혼자 전쟁통 속에 피난이라도 떠나야 할 것 같이 불안 속으로 입장하게 한다. 멀리서 울리는 경보음 같은 삐이- 하는 잠깐의 이명과 곧 들어오는 제정신의 퓨즈가 꼭 우주로 번지점프를 한번 갔다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이질감이 주는 잠깐의 불쾌한 여행을 아무렇지 않게, 티를 내지 말아야 하는 무의식의 훈련이 내 인생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나에게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은 먼저 말했던 것처럼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꽤 스스로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내 ‘가슴’이라는 존재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이라는 지정 성별로,
그것과 다르지 않게 내면적 성별도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다른 여성들처럼 그럭저럭 규칙적인 주기로 정혈이라는 것을 하고 제법 동글동글한 생김새를 하고 있고 뚱뚱하지만 네모지지 않은 생김새를 하고 있다. 빠르진 않지만 내가 뛰어 지나가도 아마 다들 내가 여성이라는 것은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의 가슴과 좀 내외하는 사이이다. 덕분에 브래지어와 아직까지도 친해지지 못해서 구입할 때마다 갈등을 유발하곤 한다.
그러니까, 보건 시간에 이야기하는 2차 성징의 시작이라는 가슴 몽우리가 생기는 게 나는 국민학교 4학년쯤 찾아왔었다. (놀랍게도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쯤까지 국민학교였다. 지금 한글 프로그램을 쓰면서 국민학교라고 치면 자꾸 초등학교라고 바뀌는데 무척 기분 나쁘다. 내 코찔찔이 시절을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이건 그냥 내가 예민하다고 치자.) 나는 동네 어르신들의 이쁨을 독차지할 비주얼인 하얗고 통통한 어린이라서 불행하게도 가슴이 드넓은 벌판처럼 판판한 적은 없었지만 이게 옷을 입었을 때 티가 날 정도로 뭔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으니까 움직이는 반경 곳곳에 있는 거울 안의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뭔가가 이상했다. 내 모습이 아닌 거 같다는 느낌을 넘어서서 뭔가 암 덩어리 같은 게 내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나쁜 것 같았다. 전혀 나쁜 게 아니었는데 나쁜 것 같았다. 아니 나쁜 거였다.
몸에 달라붙는 상의를 거부했다. 워낙 통통했던 체질이라 (안타깝게도 난 마른 인생을 살아 본 적이 없다.) 살짝 헐렁하지만 제법 체격에 맞춰서 입고 다녔는데 그때부터 확연하게 붙는 상의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일단 내 몸의 형태가 밖으로 보이는 게 싫었다. 하체는 그렇다 쳐도 상체는 정말 극구 반대했다. 나는 거의 6년 내내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당했는데 (아마 내가 있는지도 모르지 않았을까?) 기억 왜곡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학교생활이든 일상생활이든 내 신체의 변화에 대한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부분이 있어 집중도가 떨어진 게 가져서는 안 되는 생각이 든다. 내 집중력은 아무리 털어봐도 쥐뿔 나오지도 않았고 덕분에 학업성적은 안 봐도 뻔했다. 다행히 내 부모님은 성적에 크게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이사를 자주 다니던 시절이니까 내가 모르는 집안 사정이 있었을 거고 아마 내 성적이 높은 관심사에 들어오지 않지 않았을 듯?) 크게 혼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렇지만 놀림을 받아 맞고 들어오면 왜 안 때렸느냐고 하면 좀 억울하긴 했다. 나는 안아주고 달래주는 엄마가 필요했던 거 같다. 우리 엄마는 그런 스타일이 못됐다.
그래서 나는 이놈의 가슴을 이 전의 상태로 돌리기 위해 무척 노력을 많이 했다. 그 과정에 알게 된 사실은 나는 엄마를 닮아서 새가슴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가슴뼈가 중간이 툭 튀어나와 있다는 것, 똑같은 가슴 사이즈라도 더 나와 보인다는 것. 머리가 아찔했다. 어린 나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상황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브래지어를 하면 가슴 모양이 잡혀 그 나쁜 가슴이 점점 커진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 와서 브래지어를 안 하고 다니기도 하고 그래도 점점 커지는 그 모양새에 결국 약국으로 향했다. 제일 넓은 압박 붕대를 사서 가슴에 둘렀다.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붕대 하나는 모자랐다. 하나 더 사서 두 개를 두르니까 어느 정도 둘러졌는데 이게 살이 삐져나와서 하나 마나였다. 그리고 또 하나 더, 하나 더 하다 보니까 그 약국의 약사 아저씨한테 어디에 붕대를 이렇게 많이 쓰냐는 소리에 하지도 않았던 인형 만들기 하는데 쓴다고 거짓말까지 했었다. 손바닥 한 뼘 정도 되는 붕대 네 개 정도 쓰니까 얼추 맘에 드는 가슴 모양이 만들어졌다. 흔들리지도 않고 옷 바깥으로 둥근 모양이 비치지도 않았다. 어깨에 브래지어 끈이 나오지도 않았고 뛰는데 가슴이 아프지도 않았다.
아 이제 됐다 했는데 이제 거기서부터 문제였다.
아침마다 이걸 두르자니 나는 아침잠이 너무 많았고 우리 집은 엄마의 신경 예민 때문에 방문을 닫을 수 없는 거스를 수 없는 수칙이 있었다. 아침마다 이걸 두르는 난리 부르스를 보면 우리 엄마가 나에게 뭐라고 할까? 과연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먼저 맞을 거 같긴 한데 얼마나 맞을까? 이런 고민을 하고 안 되겠다 싶어 가방에 몰래 챙겨서 학교 화장실로 향했던 시절이었다.
근데 또 문제가 나는 피부가 상당히 약간 쪽에 속해서 갑갑하게 갇혀있는 이놈의 나쁜 가슴도 피부이기 때문에 땀이라는 것을 배출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거칠고 얇기 그지없는 붕대 소재에 흡수되지 못하고 고여있기 일쑤였고 그 고여있던 자리는 트러블이 일어났고 그리고 가려웠고, 나는 또 집중을 못 하고, 화장실을 가고 긁고 긁고 긁고..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 난리가 나고 목욕하다가 엄마는 여긴 왜 그랬냐고 묻고 대답 못하고 나는 또 잔소리 듣고 맞고 아이고 두야, 그리고 붕대를 감는 방법도 갈수록 허술해져서 가슴을 모아서 감아야 모양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이게 편하게 한다고 가슴을 벌려서 감다 보니까 모양도 이상해져서 가뜩이나 안 이쁜 가슴이 총체적 난국을 맞이하게 된다. 이게 내 14살 중학교 입학 후 어느 날이었다.
중학교 가니까 교복이란 걸 입으니 어쩔 수 없이 속옷을 착용해야 했고 여름이 다가오면 더워 죽겠는데 안에 이너웨어도 챙겨 입어야 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어서 그냥 깡으로 브래지어만 하고 다녔다. (보통 이런 부분은 무용 선생님이 주의를 주거나 그랬는데 나는 하도 많이 걸리다 보니까 나중엔 그냥 포기하시더라. 하긴 그다지 성적인 느낌을 주진 않았을 거 같다. 한창 운동할 때라 덩치가 오졌을 때니까) 중고등학교 때는 뭐 그럭저럭 보냈던 거 같다. 엄마가 사준 브래지어를 입고 다니면 되고, 사이즈에 크게 신경 안 쓰는 게 운동했던 때라 나는 스포츠브라를 주로 착용했고 중학교 때 다리를 다치고 나서 운동을 그만뒀는데 그 이후에 정신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라 당시 나는 먹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거의 안 먹고 살 때라 내 인생 최저 몸무게를 유지해서 가슴 사이즈도 AA 사이즈를 유지했다. (게다가 댄스 동아리에서 추러 다녔다. 무슨 기운으로 그랬을까)
인생이 그렇듯이 나에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 사람들과 육체적인 접촉이 있었다. 한참 인생 따위 뭐가 어찌 되든 상관이 없었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고 있을 때라 지금은 누군지 기억도 안 나는 첫 키스의 맛과 느낌은 어땠더라.
딱 하나 기억나는 건
키스와 섹스가
이렇게 기분이 이중적인 건가 싶은 것이었다.
이건 좀 오르가슴이나 통증 등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건 저기 뒤쪽으로 좀 밀어 놓고 일단 기분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뭔가 동의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도가 불순한 것도 아니었는데 항상 과정엔 기분이 좋았다가 끝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누구나 바라는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뒤처리를 깔끔하게 해 준다든지, 팔베개를 해 준다든지 그런 거. 나는 항상 담배를 피웠던 것 같다. 근처에 술이 있으면 술도 마셨다. 뭔가 가글 하듯이 우물우물하고 마셨던 거 같은데 담배도 아마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고 지금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 아닌데, 그래서 종종 나는 내가 무성애자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못 알고 있는 건가? 뭔가 다른 감정인데 내가 이 감정을 사랑이라고 잘못 알고 있어서 지금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고 하긴 난 너무 사랑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강아지풀 같은 사람이긴 했다. (뭐 이건 지금도 그렇다. 나는 내 파트너를 너무 좋아한다. 너무 잘 생겨서 미쳐버릴거 같다.)
꼭 내 가슴을 만질 때는 그게 더 심했다. 잘나가다가 확 식어버리는 느낌이 있었다. 물론 그 부위가 만져지는 느낌이 주는 쾌락이 싫진 않았지만 아, 그래 그곳이 있었어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지금은 어떤 모습이지. 내가 매체에서 봐 왔던 그런 여러 가슴의 모양 중 하나일까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속이 좋지 않아 왔다. 아마 옷처럼 벗을 수 있으면 같이 벗어 버리고 하지 않았을까. (물론 상대방이 난감한 상황이 될지 모르겠지만.)
내 20대는 섭식장애를 겪고 있던 기간이 종종 있어서 체형이 훅 빠졌다가 훅 찌기도 했고 그 와중에 진료 중 먹었던 정신과 약들의 부작용 아닌 부작용으로 살이 많이 쪘는데 이게 살이 찌면 가슴부터 찌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슴이 처지기 시작하면서 이 녀석과의 갈등은 더욱더 심하게 치닫기 시작했다. 여름이면 가슴 밑부분에 브래지어가 닿는 부분에 땀이 차 피부 이상 때문에 피가 날 정도로 긁고 딱지가 생기고 없어지고를 반복하면서 시커멓게 착색이 되어버렸다. 브래지어 소재를 잘못 사면 온종일 가렵고 신경 쓰여서 일도 생활도 집중을 할 수 없었고 커진 가슴 사이즈에 두꺼워진 흉부로 내 옆모습이 보이면 흉측해 보이기 이를 때가 없었다. 그 부분을 노출할 일은 인생에서 거의 없을 것 같지만, 나는 진지하게 의학의 힘을 빌리고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내 가슴을 꿈꿔봤다.
심지어 유륜도 젖꼭지도 없는 그냥 아무것도 없는 피부만 있는 가슴.
정확히 신체의 명칭이 필요가 없을 듯한 그런 밋밋하고 아무것도 없는 그런 부분을 생각해 봤다. 더 이상 예쁜 속옷으로 스스로 어르고 달래지 않아도, 브래지어 밑에 천을 덧대 땀을 받아내지 않아도 되고 속옷을 살 때마다 모험가의 마음으로 택배를 럭키박스 마냥 기다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를 내 파트너는, 나의 엄마는, 내 주변인들은, 나의 환경은 받아 줄까. 그리고 내 몸은 멀쩡하겠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그럼 나는 여성인가 아닌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작은 여성은 있어도 가슴이 없는 여성은 없지 않을까? 병세 탓에 어쩔 수 없이 외과적 수술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크기와 상관없이 다 있어야 하는 것이 유방이라는 것 아닌가. 그럼 난 뭐지? 나는 남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닌데. 그 몽우리가 생길 때부터 꼭 밤손님 마냥 몰래몰래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이 가슴에 대한 생각은 도대체 어찌 된 거지.
항간에 찾아보니 이런 사람들은 뉴트로이스(Neutrois)라고 한다고 한다.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았지만 정의 내리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스스로 혐오하진 않기로 했다. 내가 나를 스스로 정의 내리기 전에 최대한의 정보를 모은달까. 아무래도 이건 그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예쁜 물건을 보고 사는 것과는 선택의 여지가 다른 구역이고 나는 변덕이 남들의 천 배쯤 죽 끓는 사람이니 신중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을 듯하다. 지금 다니고 있는 병원의 선생님과 충분히 상담도 해 볼 것이고 그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 부디 내가 현명하게 대처하길 바라고 있다.
어쩌면 좀 별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여전히 그 ‘가슴’이라는 것은 내 몸에 달려 있다. 이미 달려 있는 거 나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라 부정도 못하겠고 답답한 마음이 순간순간 스쳐 지나간다.
제법 되는 이 가슴의 무게 덕분에 토닥 거리게 되는 허리를 다시 한번 세우며 다음 글을 기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