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건, 세상은 점점 살기 힘들어질 거라는 겁니다.
친구 J가 일주일전 교수님과 주고받았던 메시지 내용을 화두로 꺼냈다. 어떤 용건으로 교수님께 연락이 왔는데, 마지막에 저 말을 툭 던지셨다고. 그런데 J는 한동안 그 말이 마음에 남아 괴로웠다고 했다. 왜냐하면 저 말이 사실이라면, 정녕 진실이라면 너무도 희망이 없으니까··· 실체 없는 허공에 혼자 아등바등 발길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아 힘이 쭉 빠진다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게 다 부질없이 느껴져서··· 도저히 힘이 안 난다고.
그도 그럴 것이 J는 지난여름까지 계약직으로 일을 하다 기간이 만료되어 현재 다시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고치고 떨어지고. 면접을 보고 또 떨어지고. 그런 지난한 과정을 수도 없이 겪고 있는 상태에서 저런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맥이 빠질까.
나는 J의 말을 가만히 들으며 속으로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지 솎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J가 갑자기 이야기의 결을 틀었다. 그런데 있잖아,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그건 그냥 교수님의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교수님의 경험의 한계일 뿐이라고. J는 줄곧 내리 깔고 있던 눈을 다시 위로 들어 올리며 뭔가를 덜어낸 듯 한층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답했다. 그래, 우리 그렇게 생각하자. 저 말이 사실이라면 너무 힘드니까, 그냥 우리 편할 대로 생각하면서 계속 걸어가자. ‘맞아 맞아.’ 우리는 서로에게 힘차게 맞장구를 치며 광안리의 밤바다를 걷고 또 걸었다.
전 직장에서 일할 때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그때 상사에게 탈탈탈탈 탈수기처럼 털리고 퇴근길에 비척비척 걸어가던 중 ‘지금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씩씩함‘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던 적이.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가장 필요했던 덕목이 ‘버티는 것’, 그러니까 가혹한 사회와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을 겪든 자기자리를 굳건히 유지하며 견디는 것이 필요했다면, 우리 2030세대는 세상에 맞서기 위해 씩씩하고, 또 씩씩해져야한다고.
지금의 청년들은 ‘먹고 살기’위해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에 무조건 ‘참을 인’자를 새기며 버텨야하는 세대가 아니다. 그렇게 해봤자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도, 지금의 고난을 통과해 안정적인 상태에 이르지도 못할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됐다.
대신 우리는 이 자비 없는 무한 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씩씩해져야 한다. 경쟁 뒤에 찌꺼기처럼 가려져 있는 무수한 탈락과 거부의 경험을, 비교와 좌절의 굴레를, 가혹한 ‘한줄 세우기’ 식의 폐해를 마주하고 넘어진다고 해도, 금세 다시 기운을 차리는 것. 얼마간 아파하다 가 툭툭 털고 얼른 다시 일어나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는 것. ‘괜찮아, 이거 안 되면 다른 데 지원하지 뭐, 조금 더 기다려보자.’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금 씩씩해지는 것. 우리에겐 그런 것이 필요하다. J가 생각의 결을 바꾸어 다시 씩씩하게 고개를 든 것처럼.
언젠가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언니가 자신의 전 직장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준 적 있다. 그때 자신도 상사에게 혼나고 있었는데, 상사가 이런 말을 했다고. “네가 유리멘탈인 건 알겠어. 그런데 너 말이야, 얼른 다시 일어서. 멘탈이 깨져도 괜찮으니까 얼른 다시 붙여놓으라고. 특히 이 업계에선 그런 게 필요하니까.”
이름 모를 상사님의 말대로다. 정말로 그렇다. 멘탈이 깨져도 얼른 다시 이어붙이는 것. 넘어져도 금세 다시 일어서는 것. 우리는 그런 것들을 연습하고 체화해야 한다. 그러니까 점점 씩씩해지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고.
나는 그러기 위해 일단 나름의 방법을 찾았는데, 그 첫 번째는 바로 ‘적당한 스탠스(stance)’를 유지하는 거다. 어떤 일을 할 때 너무 기대를 한다거나 온 마음을 쏟는다거나, 자신의 소중한 일상을 모두 포기하면서까지 무언가에 힘을 들이면 그것이 잘 되지 못했을 경우 엄청난 타격감을 입는다. 치명상이다. 몇날며칠을 침대에 고꾸라져 있어야 한다. 자신은 뭘 해도 안 된다며 자기비관과 혐오에 빠지기 쉽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분명히 하되,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의 마인드를 장착해야 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더라도 하루에 2개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꼭 해줘야 한다. 자신을 위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아야 한다고. 그래야 결과가 안 좋더라도 금방 기운을 차리고 씩씩해질 수 있다. 툭툭 털어내고 다시 걸어갈 수 있다.
2번째 방법은, 자신의 기본적인 일상의 패턴을 유지하는 것이다. 씩씩해지기 위해선 잘 먹고잘 자야 한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어서 마음이 맥을 못 잡고 있으면 몸이라도 정신을 차려야한다. 제때 건강한 음식을 챙겨먹고 제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려고 노력해야한다. 일상의 패턴을 망치면 정신은 더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회복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까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잠을 자고 사람을 만나야한다 평소처럼. 친구와 만나 떡볶이와 치킨을 시켜먹고 맥주를 곁들이며 ‘거 참! 그 회사 존X 인재 못 알아보네!’ 몇 시간이고 회사 욕을 하며 친구와 깔깔 대도 좋다. 그것 역시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는 방법이므로.
나는 이런 식으로 방법을 찾아가며 점점 씩씩해지는 훈련을 하고 있다. 아직 두 개밖에 못 찾았지만, 계속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5개고, 10개고 찾을 수 있겠지? 그래서 회사에서 꼰대상사에게 무례한 방식으로 털려도, 다시 백수가 되어 탈락의 경험을 마구 경험해도 쪼오끔 아파하다가, 금세 ‘뭐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다른 곳 지원하면 되지’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겠지? 지금보다 훨씬 튼튼한 마음이 되어서는.
그러니까, 우리 모두 조금씩만 더 씩씩해져 보자고요,
우리 존재들 파이팅! 와자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