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는 말만큼 힘이 나지 않는 말이 또 있을까, 싶으면서도 달리 대체할 수 있는 언어가 없어 다시 힘내라는 말을 기어코 입에 올리는 기분이란. 마치 주관식 시험 문제를 풀 때 오답인줄 빤히 알면서 차마 빈칸으로 놔둘 수가 없기에 그 ‘유일한 오답’을 꾸역거리며 적는 느낌이랄까.
도저히 힘을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다시 ‘힘을 내라’고 말하는 게 되려 미안해져 한날은 친구와 함께 대체어를 골똘해보았으나, 결론은 “글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 한 켠 자리 잡고 있던 이 무용한 표현에 대한 고찰도 슬슬 잊어갈 무렵··· 그때 마주하게 된 것이다(!) 여전한 물음표를 남기고 끝난 찬구와의 논의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단어를. 그러니까 그 말은,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예상치도 못한 형태로 뽕, 나타나 나의 근심어린 미간을 빡! 때리고 갔는데...!
때는 바야흐로 시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건너가는 어느 늦저녁.
나는 그날 하숙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과의 갈등으로 마음이 몹시 울적해진 상태였다. 그야말로 모기가 애앵~하고 와서 물어버리면 엉엉 눈물이 터질 것만 같은. 결국 아무것도 손에 잡지 못하고 일어났다 앉았다 이리 저리 갈팡질팡, 이 친구 저 친구에게 정처 없이 주절거리다 그만 부엌식탁 의자에 턱 앉아버렸다. 가슴께로 그러모은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고 있자니 외면하고 싶었던 직감이 기어코 뒤통수를 후려쳤고,
‘당신은 오늘 밤 침대위에서 대환장 눈물 파티쇼를 벌이게 될 것입니다.’
그 직감의 이름은 ‘타율 100%’였다. 아, 망했다. 낮에 귀로 담았던 말들과 입 밖으로 빠져나간 말, 그리고 마음에 남아 응어리가 되어버린 것들까지. 나는 오늘 밤 그 무수한 말들과 말들과 말들 사이를 헤집으며 길고도 어지러운 시간을 보내야 할 거 같다. 창도 없이 네모난, 그 음울하고 익숙한 1인분의 방안에서. 혼자 뒤척이고 혼자 훌쩍이다가···.
언니, 나는 오늘밤 언니가 진짜 푸욱 잘 잤으면 좋겠어.
“... 어?”
그때였다. 나의 심상찮은 행태를 가만 지켜만 보고 있던 또 다른 하숙집 메이트가 내 앞으로 걸어와 입을 뗀 건. 난데없이 불쑥 건네진 맥락불명의 말에 나는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벙 찔 수밖에 없었는데. 얘··· 혹시 내가 오늘 낮에 누구랑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는 건가...? 아닌데, 분명 그때 집안에 아무도 없었는데··· 아니 그보다 어떻게 이런 타이밍에 저런 말을···.
“언니, 오늘밤은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아무 꿈도 안 꾸고, 뒤척이지도 않고 중간에 깨는 일도 없이 정말 푸우우욱 자길 바라."
제대로 된 대답 대신 애꿎은 눈동자만 도록거리고 있는 내게, 동생은 이번엔 더 또박또박 천천히 힘을 주어 말했다. 그리고선 기꺼운 듯 자기 손을 가슴팍에 착, 올려놓고 “방금 내 덕담을 언니에게 준 거야.” 덧붙였다.
!! 순간 연분홍빛 강풍이 내게 몰아닥쳤다. 마음이 크게 일렁였다. 오늘 밤 내가 그 어떤 생각도 감정도, 심지어는 작은 뒤척임마저도 침범할 수 없는 숙면을 취하길 바란다니. 어쩜 그리도 무해하고 다정한 말이 있을 수 있을까. 저리도 따뜻하고 보드랍게 밀려올 수 있는지..! 그러니까 당신의 밤이 평안하기를 바란다고. 나는 그것이 더없이 절묘하고도,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현대인 중에 마음 편히 숙면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나 같은 경우엔 어느 순간부터, 실은 대학 4학년 때부터 잠자리가 썩 편치 않았던 거 같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야금야금 하루치의 밤을 좀먹어갔고, 졸업 후 취업준비를 할 적엔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사실이 불안을 넘어 공포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 시절 나는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선잠에 들 수 있었으므로.
직장에 다닐 땐 사방에서 밀려오는 업무더미와 기획회의, 그에 따른 숫자와 성과, 온종일 사무실을 가로지르는 사람들과 말소리에 쫓겨 이부자리에서 찔찔 눈물을 흘리거나 이불킥을 날렸다. 아니면 베개에 머리를 몇 번 쥐어박던가. 그런 것들이 잠들기 전 관례행사로 자리 잡았고, 퇴사 후엔 딱 2주간 행복하다가 다시 무언가에 쫒기는 꿈을 꾸게 되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이 시국의 아침을 맞이하는 대부분의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수험생, 오늘도 내일도 야근 기안을 올리며 한국의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내는 직장인, 한 아이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지고 있는 부모들과 현재 일상을 힘겹게 짊어지고 있는 자영업자들, 의료업계 종사자들, 취업준비생들···. 상황과 나이를 막론하고 모두 어딘가에 갇힌 듯한 긴긴 밤을 보내겠지.
그런 사람들에게 ‘밤의 안녕’을 빌어준다는 건, 그 짐을 대신 져줄 순 없지만 적어도 당신이 잠자리에서만큼은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오늘의 잔여물과 내일치의 몫이 뒤섞인 시간이 아닌, 오롯이 스스로를 재충전할 수 있는 밤을 누리기를. 양질의 무의식 속에서 무력하고 고단했던 심신이 회복되기를.
그리하여 당신이, 평소보다 조금은 가벼운 아침을 맞을 수 있길 바란다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일주일째 밖에 나가지 못해 답답해서 이제는 잠도 오지 않는다는 J에게, 최근 코로나에 걸리는 끔찍한 악몽을 꿨다는 S에게, 만성무기력증이 심해져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를 생각하고 있다는 친구에게, 그리고 매일 밤 이불을 끝까지 뒤집어쓰고 방안에서 헛도는 잠을 붙잡으려 애쓰는 나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