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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벽 세시까지 잠이 안 오더라

나는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엉뚱한 곳에 우겨넣은 퍼즐조각 같았다.

by 김예란

[대학내일 884호 – 20’s voice]


졸업을 했다. 길고 지난했던 6년간의 대학생활이 끝났다. 6년 전 딱 이맘때쯤엔 마치 새 세상이 도래할 것 마냥 가슴이 벅찼는데.

축하, 꽃, 사진, 학사모던지기까지.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졸업식매뉴얼’의 모든 단계를 착실히 수행한 후, 마지막으로 졸업증서를 받으려 인사대 건물로 향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길을 지나다니며 저 건물에 들락거리곤 했는데. 그것도 이제 마지막이겠구나,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시원섭섭할 줄 알았는데. 시원하지도, 섭섭하지도 않았다. 대신 심란하고 착잡했다. 이로써 지긋지긋한 조별과제와 피말리던 수강신청도 끝나겠지만, 동시에 나의 사회적 신분과 소속도 사라질 터다. 다른 무리로부터 나를 구분 짓고 보호해주던 울타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것들이 언제 다시 생길 거라는 기약도, 보장도 없으니··· 갑자기 모든 게 막연하고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감회가 새롭겠다.”며 축하의 운을 뗀 지인에게 마음속에 있는 말을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채 줄줄이 읊어댔다.


아니요. 감회가 새롭기보단··· 그냥 제가 번듯한 데 취직하고 나서 이 자리에 참석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랬다면 마음껏 시원섭섭해 할 수 있었을 텐데, 언니 말대로 감회가 새로웠을 텐데요.”

옆에서 언니가 당황한 듯 무어라 말을 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졸업식 특유의 달뜬 분위기 탓에 공중에 살짝 떠다녔던 발이 인사대 건물과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다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본가로 내려왔다. 6년간의 타지생활을 끝내고 이제는 노년기에 들어선 부모님과 늦둥이 아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누구에게도 달갑지 않은, 그러나 어느 정도 예견된 이 상황으로 인해 18살짜리 사춘기 남동생은 누나에게 자신의 방을 내어주고 아빠와 방을 공유해야 했다.(우리 집은 엄마와 아빠가 각방을 쓰신다.) 남동생뿐만 아니라 엄마와 아빠도 각자 자신의 공간을 일정량 떼어주고, 없어진 공간만큼의 불편을 감수해야했고. 그러니까 이 집에서 나는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엉뚱한 곳에 겨우 우겨넣은 퍼즐조각 같았다. 본래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꾸역꾸역 비집고 들어가 가장자리가 쭈글쭈글해진. 집으로 내려온 첫 날, 그 이질감과 위화감을 견딜 수가 없어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에 집을 나와 근처공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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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공터를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내일부턴 당장 뭘 해야 할까.’ ‘자소서는 또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봐야하지’ ‘자격증도 빨리 따야하는데.’ 한 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꾹 누르고 있었던 상념들이 툭툭 터져 나왔다. 답도 없고 끝도 없을 것 같은 질문과 성급한 계획, 부질없어 보이는 다짐들을 그렇게 한참을 반복하다불현듯 며칠 전에 아는 동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요즘 새벽세시까지 잠이 안 와. 개강하면 다시 수업에, 실습에. 또 이제 4학년이니까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다보면··· 어느덧 새벽세시야. 그때서야 기절하듯 잠이 들어.”


항상 밝고 씩씩해 보였던 동생이 갑자기 저런 말을 해서인지, 아니면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같은 떳떳하지 못한 안도감이 순간 들어서인지, 그 날 들었던 수많은 말 중에 저 말이 유독 진하게 마음에 남아있었나 보다.그래서 이 작고 별 볼일 없는 동네에 아무도 없는 공터에까지 따라왔나 보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12시가 되기 15분전. 나는 오늘 몇 시에 잠이 들 수 있을까, 가늠해 보았다.

곧장 집에 들어가 씻고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다, 또 달갑지 않은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 올 때면 핸드폰을 켜 SNS를 하염없이 들여다보겠지. 그러다 눈이 따가워지면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마음속으로 일부터 아주 느리게 수를 헤아릴거야. 그러다보면··· 새벽세시언저리쯤 잠이 올 것 같다. 그래, 딱 새벽세시쯤 잠이 들것이다 오늘은. 사실은, 오늘도. 그래서 어쩌면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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