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딱 한창일 나이에, 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엄마에게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놈의 청춘, 도대체 뭐가 청춘이고 한창일 나이란 말이야. 확신컨대 지금의 20대는 역대 청년층 중 가장 희망을 품기 힘든 세대이건만. 가장 불안정하고 불확신으로 가득 찬 세대이건만. 우리는 세상이 말하는 그놈의 ‘평범한 삶’을 얻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아득바득 발버둥을 쳐야한다고. 미친 경쟁에서 비롯된 탈락과 거부의 경험을 10대 때부터 짊어지고, 매순간 불안과 무기력과 싸우며 힘겹게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고.
10대 때는 닭장에 갇힌 병든 닭처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입시지옥을 견뎠고, 비로소 근사한 세상이 펼쳐질 거라 기대했던 20대 초반에는 학점관리와 스펙 쌓기,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로 건강을 망쳤다. 스물 중반에는 지옥 같았던 취업준비와 처음 겪는 사회생활에 정신건강마저 망쳤다. 그리고 도달한 스물일곱. 몇 번의 계약직과 취업준비를 거듭하며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정신과 육체를 혹사하는 동안 불안과 우울, 무기력과 불면의 정도가 정상 수치를 한참 벗어났거든. 아 맞다, 참. 그걸 말 안했네. 스물 중반부터 과민성대장군과 신경성두통도 얻었다. 돌은커녕 고기도 소화하기 힘들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친구들도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 식도염, 위염, 스트레스성 탈모까지, 한 가지 이상의 질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청춘이라니, 새싹이 파랗게 돋아난다는 청춘이라니. 무언가가 돋아난다면 그건 곰팡이겠지. 푸른곰팡이.
최연소 공무원으로 <유퀴즈>에 출연했던 분이 스스로 생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요즘 애들’은 너무 나약하다고, 끈기가 없다고, 우리 때는 새벽 3시까지 회식하다 다음날 아침 정시 출근을 했다고, 그렇게 버텨냈다고 말한다. 친구와 나는 이에 대해 우리는 나약한 게 아니라 희망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인생이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부재. 7%가 넘는 경제성장률과 대학만 나오면 대기업에서 모셔갔던 시대를 겪었던 기성세대들은, 그렇게 버티고 버텨서 집과 결혼, 안정적인 삶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삶이 지금보다 나아지리라, 그렇게 믿었고 그것이 실현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우리들은 그렇게 버티면서 얻을 수 있는 게 뭐지? 내 집 마련이 가능한가?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결혼해서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아니. 우리가 그렇게 버티면서 얻을 수 있는 건 병 밖에 없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이제 정말로 사라졌고 기업은 우리를 책임질 생각이 없다. 사람을 뽑아 일을 가르치고 회사와 함께 성장시킬 생각은커녕 당장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중고신입’을 원한다. 당장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콘텐츠를 기획하고 사업계획서를 쓰기를 원한다. 잘 몰라 쭈뼛거릴 때면 우리가 신입을 잘못 뽑았나, 같은 말을 서슴없이 입에 올린다. 정작 당신들은 NCS니, 인적성 검사니, 토익이니 자격증이니, 토론면접이니 PT면접이니, 아무것도 거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건데 말이지. 웃겨 참나. 그러면서 요즘 애들은 패기가 없다느니, 끈기가 없다느니, 그렇게 말하는 것은 기만 아닌가. 기만.
OECD 국가 중 청년 자살률 1위를 앞 다투는 나라에서 20대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과 ‘사상 최고치의 실업률’이라는 수식어가 나란히 공존하는 시대에서 산다는 건. 그건 아마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혐생(혐오스런 인생)’ ‘헬조선’ ‘N포세대’ ‘픽미(PICK ME)세대’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들)’ ‘욜로(YOU ARE ONE AND ONLY)’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2030 투자개미’와 같은 단어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양질의 정규직은 바늘구멍이 됐고 사람을 쓰다버리는 계약직은 넘쳐난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그 계약직이라도 손에 넣으려 피가 터지게 경쟁한다. 삶의 가장 기본적인 뿌리가 되는 생계가 흔들리니 그 위에 차곡차곡 쌓일 미래는 물안개와 같은 형상이 되어버렸다. 형체도 없고 앞도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허공에 열심히도 손을 뻗어본다. 뭐 하나라도 잡힐까 싶어서,
하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이 자비 없는 세상에서 양팔을 힘껏 휘두르며 앞을 헤쳐가야 한다. 언젠가 친구가 책에서 해파리에 관해 인상 깊게 봤던 구절을 공유해준 적 있다. '해파리는 헤엄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수면을 떠돌며 생활한다. (중략) 헤엄치는 힘이 약하면 수면을 떠돌며 살면 된다. 죽어버리는 게 아니라.’
어쩐지 내 얘기 같아 울컥했다. 항상 스스로를 경쟁에 최적화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성취’ ‘쟁취’ ‘경쟁’ ‘결과’ '성과' 따위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고성능, 고효율, 다(多)경험자 우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시대에 잘못 떨어진 구식형 인간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죽어버리는 게 아니라,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게 아니라, 해파리처럼 수면 위를 떠돌며 살면 된다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그저 물결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면 된다고.
다만, 이 시대에서 바다 아래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는 수면 위에 손톱을 단단히 박고 있어야 한다. 하늘로 올라가는 건 꿈도 못 꿀 노릇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가라앉을 수도 없기에 안간힘을 쓰며 수면 위에 착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 살아있으므로, 살아있기에, 앞으로도 살아내야 하므로 이 알 수 없고 지난한 시대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세기말에 태어나 지구에서 악착같이 표류 중이라고. 우리는 90년대 생이라고.
이 책에는 그런 것들을 담았다. 세기말에 태어나 마주한 풍경과 그 황폐함 속에서 이끌어낸 성찰, 지긋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긍정하기 위한 노력,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지나온 사람이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위로. 부디 나의 두 눈과 귀로 보고 느꼈던 것들이 당신에게 '공감'과 '위로', '용기'가 되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닿기를 빈다. 우리 모두 자기자신을 데리고 이 황량한 시대를 무사히 건너갈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정문정 작가의 에세이 <더 좋은 곳으로 가자>에서 청년들에 대해 목소리를 낸 구절을 함께 나누며 에필로그를 마무리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희망이란 결국 확장에 대한 이야기인 듯도 하다. 눈에 보이는 크기가 아니라 조금씩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갈 수 있느냐에 따라 희망을 품을 수 있는지 아닌지가 갈린다. 요즘 청년들이 절망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윗세대보다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노력해도 주변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박탈감 때문에.(중략) 부모 세대가 가난했지만 희망이 있었던 건 집을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이 평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 행로가 운 좋은 사람에게만 해당 되는 게 아닌가 허탈해하고 있다. 기성 세대는 탐욕을 조절해 양보해야 하고 청년들은 더 나은걸 욕망해야 한다. 청년들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거라 낙관할 수 있고 바라는 것을 조금씩이나마 이뤄갈 수 있는 세상에만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