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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야 (2025)

태도, 온도

by 김민주

1.

내장이 바글바글 끓는다. 손끝은 바싹 식었다. 충분히 익은 속은 어떤 소리를 내면서 터질까, 산산조각 난 손가락 파편들을 주우면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니 곧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좀처럼 가만히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문득 엄마가 다리를 툭툭 건드리면서 '다리 떨지 마, 복 나간다' 하여 다리를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다리도 마음대로 못 떨어?"


잘 익은 속알맹이도 터지지 못하고 차디찬 손으로 엄마를 밀어내기도 싫으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급히 튀어나온다. 엄마는 황당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면서 헛웃음을 짓는다.


"얘가 왜 이래, 왜 성질을 부리고 그래?"


나는 말없이 엄마를 노려보다가 터무니없는 눈물을 쏟는다.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엄마가 당황하여 쉴 새 없이 중얼거린다.


"왜 울어, 엄마가 뭘 했다고 울어. 왜 그래? 뭐야, 왜 그래. 다리 만져서 그런 거야? 말을 해 봐. 왜 울어."


가슴도 타고 손끝은 깨졌는데, 엄마는 애꿎은 다리를 계속 토닥거렸다.


2.

엄마. 나는 엄마라는 단어만 봐도 눈물이 난다. 글자가 슬프게 생긴 탓이다. '엄마'라니. 누가 만든 거야. 이번 주 내내 엄마를 생각하면서 울었다. 눈두덩이 붓고 코끝이 헐었다.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엄마라는 단어를 저런 모양으로 만든 사람이. 왜 저런 생김새로 만들어서 볼 때마다 나를 울게 만드는 건지. 잡으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가만 두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 인간을 붙잡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울고 또 울 것이다. 당신 때문에 내가 엄마만 생각하면 울보가 돼.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를 다섯 번 쓰면 대성통곡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또 소리 내어 말하면 기절할 때까지 울 수 있다. '엄마'가 가진 딜레마다. 쓰거나 읽는 것, 부르는 것도 못 한다. 울다 기절해 버리는 것을 엄마가 보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3.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있으면 그이들이 참 예쁘다 싶다. 내가 보기에도 이렇게 예쁘니 그 어머니와 그 아버지의 눈에는 얼마나 예쁘게 보일까 가늠해보곤 한다. 내겐 아직 없을 마음을 짐작해 보면 자연스레 우리 어머니가 떠오르곤 하는데. 나는 어머니 눈에 들 자신이 없어서 잠든 엄마의 발아래에 조용히 누워서 엄마의 발을 잡고 울곤 했다.


4.

엄마.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사랑받는 사람이면 좋겠어. 엄마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잘 잤으면 좋겠어. 내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면 좋겠어. 엄마가 사랑이 필요할 때 내가 줄 수 있으면 좋겠어. 엄마가 울면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어. 엄마가 잠들지 못할 때 엄마에게 배운 자장가를 불러줄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나는 잘할 자신이 없어. 그 사이에 마음은 익어 짓무르고 손은 벌겋게 식었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애먼 다리를 붙잡아. 나는 엄마에게 성질을 부리면서 떼를 써.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기어코 정신을 잃을 때까지 엄마를 불러.


5.

그 어머니는 쓰러진 민주를 부둥켜안아 쓰다듬는다. 애먼 다리를 매만지면서 이름을 부른다.


"민주야. 민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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