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기억
1.
겨우 나 하나 들어가는 비좁은 이곳에서 나는 깨어났다. 내가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엔 단지 이곳에 내가 있다는 것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방은 꼭 나를 중심으로 생겨난 것만 같이 꼭 맞게 몸을 감싸고 있다. 내가 이 압박감으로부터 나를 느끼고 있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나는 나를 알고 있었으므로. 그러던 중에 눈을 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곳을 이미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짙은 어둠 사이에 아주 조그맣고 반짝이는 물고기 떼가 징그럽게 펄떡이는 광경이었다. 오래도록 그것을 지켜봤다. 지겹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잠깐만, 물고기가 뭐지?
2.
당신은 물고기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언젠가 막 한글을 깨치기 시작한 때였을까요? 그림책 같은 데에서 매끈한 몸뚱이에 꼬리가 달린 어떤 것을 보았을 때? 아니면 식탁 위에 올라온 생선 구이를 처음 맛봤던 때였나요?
3.
물이 흐르고 있다. 이곳의 어디에나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엔 뭔가가 헤엄치고 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물안에는 자연히 헤엄치는 무언가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또한 그것이 헤엄친다는 것을 빌미로 물은 언제까지나 흐를 수 있게 된다. 이런 사실들이 자연한 기억이 되어 우리에게 남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이것을 실제로 자신이 겪었다고 느끼지 못한다. 어렴풋하게 느끼지만 뚜렷한 감각과 심상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너무도 막연하고 황당하게 느껴 사람들은 대체로 이것들을 기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양수 속에서 본 물고기 같은 것은 미덥지 못한 상상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물고기에 대한 첫 기억 따위는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4.
아주 작은 반짝임이 떼 지어 움직이는 모양은 몹시 부드럽고 순했다. 그러나 동시에 억세고 세찬 모양이기도 하여, 눈을 뜨자마자 보게 된 첫 번째로서 굉장한 자극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물고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금세 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때가 되니, 그것이 눈 속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나의 모든 구석에서 펄떡이는 흐름을 알아챘다. 강렬한 움직임이 몸속을 헤집으며 끓고 있었다.
물고기는 언제부터 내 안을 헤엄치고 있었을까. 언젠가 내 눈을 파고들어 왔고, 그때부터 이미 나를 점령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어쩌면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유순하며 거센 움직임으로부터 이곳에 있는 나를 자각하였던 것인지도.
5.
아주 오래된 기억을 꺼내본다. 물고기 떼가 몸속을 헤집고 다녔던 때를 다시 골똘히 떠올리려 하니, 몸이 근질근질하고 머리가 쭈뼛 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나서야 한숨을 돌리면서,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그리고 물고기에 대해 언제쯤 알게 되었는지, 물고기에 대한 첫 기억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러는 동안 익숙한 모양으로 눈앞을 헤엄치는 물고기 떼와, 그와 비슷한 것들이 몸안을 들쑤시는 감각은 흐린 데 없이 분명해지고 있다.
6.
당신은 물고기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 한글을 배우면서 배웠다고요? 그럼 그전에 알고 있던 물고기는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