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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Mar 15. 2021

그저 그런 시기가 있을 뿐

영원하지 않은, 발 묶이지 않아도 되는

언제나 나부터 의심하는 시기가 있다.

시험을 치고 난 다음엔 ‘제대로 답을 썼던 게 맞나? 그 답이 정말 답일까?’ 하고

면접에서 탈락하면 ‘내가 분명 실수를 했을 거야’ 하고

대화를 나누던 상대의 표정이 어두워지면 ‘내가 뭔가 잘못 말했나?’ 하고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면 ‘내가 부족했나’ 하고.

나를 향해 싹트는 의심은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려서 떨치기가 쉽지 않다.

언제부터 시작이었는지 기억할 순 없지만 적어도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은 안다.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자존감,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가 SNS를 휩쓸고, 관련된 에세이집이 서점 베스트셀러 매대를 가득 채웠을 때 나는 두려웠다. 그들이 말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특징에 나 또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좋은 말과 위로를 전하는 책일지라도, 마치 강요하듯 다가왔다. ‘네가 힘든 건 낮은 자존감 때문이야. 자존감을 기르라고!’ 이런 메시지를 귓가에 소리치는 듯했다. 그래서 부러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외면했다. 동시에 책에서 말하는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의 행동에 반대되게 행동했다. 혹여 누군가 나의 ‘낮은 자존감’을 눈치채고 손가락질할까 봐, 필사적으로 숨겼었다.


        술자리에서 속 얘기를 나누다가 무심결에 스스로를 박하게 평가하는 못난 소리가 나갈까 봐 조마조마했다. 실수로 그런 말을 하는 순간이면, 바로 상대의 표정을 살폈다. 티가 났을까, 나를 못나게 보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마음이 힘든 건 당연하고, 관계도 위태로워진다. ‘자존감 높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쓴 채 진심을 숨기고 겉핥기의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어쩔 수 없이 거리가 생긴다. 다가오려는 상대에겐 선을 긋고, 다가가고 싶은 상대에겐 거짓된 모습만 보여주게 된다. 그런 부작용을 다 품더라도 못난 모습을 들키는 게 무엇보다 싫었다. 두터운 가면 뒤에서 어떻게든 위기에 유연하고 웃어넘기는 사람인양 보이려 했다.


        아무리 탄탄한 가면이라도 깨지는 건 한 순간이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었다. 왕래가 잦지도 않고, 마음을 터놓는 가까운 관계도 아니었다. 그런데 무심코 그가 던진 ‘너는 왜 그렇게까지 생각해?’라는 말에, ‘그런가?’ 하며 웃어넘겼지만 집에 오는 길 내내 생각했다.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냐고 말해, 무슨 과민 반응하는 사람 취급을 해, 쉴 새 없이 속상했다. 어느 날, 애인이 던진 별 것 아닌 한 마디에 그동안 쌓인 서운함이 둑 터지듯 쏟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지하철에 마주 앉은 모두는 때로는 남 탓도 하고 어느 정도의 잘못은 웃어넘기며 유연하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오로지 나만 모든 일을 ‘내가 잘못했구나’하며 끌어안고 가는 듯했다. 그 무게에 다리가 질질 끌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서도, 결국 버리지 못하고.




        “그래도 항상 다시 하잖아, 너는.”

사람을 위로하는 덴 그리 거창한 말솜씨가 필요하지 않다. 울적한 마음으로 그 날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열심히 하다 마음만큼 되지 않으면 나를 의심하다가도, 한 번 울고 다시 또 한다고. 가끔은 울면서도 하는 걸 보고 징그럽기도 하다고. 그 말에 웃음이 터지면서 안심이 됐다. 그래, 나는 항상 다시 했지. 의심하고 탓하다가도 한 번 더 믿어보자며 나를 다독였다.


        ‘자존감을 높여!’의 휘몰아치는 호통 속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자존감,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그 마음이 누군들 없을까. 모두가 가지고 있고, 아마 생존만큼이나 본능일 텐데.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아니다. 단지, 부쩍 나를 탓하는 시기가 있을 뿐이다. 주로 공모전에서 탈락했을 때, 시험에서 원하는 만큼 성적이 안 나왔을 때, SNS 속에서 성취하고 기쁨을 누리는 지인들 틈에 나 홀로 정체된 기분이 들 때. 그럴 땐 아무 약속도 잡지 않고 집에 꽁꽁 숨어 술 한 잔 하며 엉엉 울어버린다. 의심하고 탓할 만큼 실컷 한다. 그러고 나면 슬그머니 반발이 고개를 든다.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뭐, 이런 마음들. 그럼 이제 그 시기를 한 차례 흘려보낸 거다. 다시 할 마음이 샘솟는다.




        내가 득도하여 성인이 되지 않는 이상 마음의 굴곡은 끊임없을 거다. 그럴 때마다 울고 털어버리고를 반복하겠지만, 어쨌거나 내려가면 다시 올라간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알게 됐다. 멀쩡한 나의 자존감을 해치려는 호통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가끔 실수할 수도 있듯이, 가끔은 끝도 없는 우울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무작정 나를 탓하고 의심하지만, 그저 그런 시기일 뿐이다. 영원하지 않고, 금방 사라질 테니 결코 발 묶이지 않아도 되는, 그저 그런 시기.


#Cover Photo by freestock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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