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보성 May 24. 2018

나는 이른 봄비에 늦게 꽃을 봤다.

이별한 모든 이가 공감할 이야기

나는 환절기 탓에 감기에 시달렸으며 이른 봄비에 늦게 꽃을 봤다     


요즘 나는 감정 기복이 심하다. 고장 난 신호등처럼 급격하게 변하여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감정의 색마저 다양해서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기는커녕 나조차 이해하기가 어렵다. 사회에 있을 때는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는데 경험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더니 나의 감정이 들쑥날쑥 하니 그들을 이해하고 싶어 진다. 또 이기적인 생각임을 알면서도 내가 수시로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표현하고 싶은 맘에 작은 돌멩이에도 크게 요동치는 내 마음의 우물에 그들을 빠뜨리곤 한다.      

내가 왜 변한 걸까?     


나는 올해 3월 초까지만 해도 사귄 지 2년이 넘은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변인들의 부러움까지 받았던 꽤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고 군대에 입대하면 자주 못 만날까 봐 걱정이 됐지만 헤어질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안일한 생각을 했던 탓일까? 입대한 지 일 년쯤 됐을 때 나는 이별을 통보받았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싫은 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 물어봤다. 내게 돌아오는 말은 자기 잘못이고 마음이 변했다는 것이었다. 배신감에 화를 냈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한결 나아지지도 않을뿐더러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며칠을 밤새 잠도 못 자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기억에서 내가 한 나쁜 행동이나 말을 끄집어내 고치려 했다. 그러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변 한 사람을 되돌리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그 애와 나는 이미 끝난 사이고 흘러 울리는 노랫말처럼 한순간에 남보다 더한 남이 돼버렸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누구나가 다 겪는 흔한 일이며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데는 딱히 이유나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흔한 일이 본인의 상황이 되면 납득하기 어려울 뿐이었다.     


군대에서 거의 유일한 버팀목이던 존재가 예상치도 못한 때 사라져 버리고 기다리고 기대했던 많은 날들이 물거품이 돼 버렸다.

이렇게 휘청거리는 나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던 습관과 추억이었다. 매일 공중전화박스로 데려다준 수화기는 갈 길을 잃어버렸고 문득문득 생각하는 그 애와의 계획은 그저 공상으로 변했다. 그러다 취침시간이 되면 잠이 들지 못한 채, 오래된 옛날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미 멀어져 버려 추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것에 빠졌고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달에게 달려가듯 나를 자학했다.     


공허해진 빈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채워져야 했기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나 다른 것에 집중하려 하면 할수록 내 생각은 나를 더 괴롭혔다. 내가 힘들어지자 나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그 애를 욕하며 나쁜 사람으로 치부하고 싶었다.(사실 자신 스스로가 힘들게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신의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힘들 때면 누구든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자기합리화를 시키려는 습성이 있다. 나 또한 그러했고 나는 그러기에 유리한 편이었다. 그 애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 명분은 충분했다. 군대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을 안 좋게 보는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박힌 통념이기에, 하지만 지난 2년간 좋은 시간들의 결말을 내막과 전혀 관계없는 제3자들의 생각에 동조하여 헝클어뜨리기 싫은 마음이 나를 자제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샌가 내 마음은 그 애를 욕하고 한편으로는 존중하면서 그 애의 대한 내 감정을 상쇄시켰다.     


의지할 것이 필요한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딱히 할 말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았고 전화를 받더라도 당연하게도 나 혼자만 하는 일방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또 매번 전화를 건 쪽은 나였어도 전화를 끊는 건 상대방이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이번에는 망상에 빠졌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그렇지 않다면 관심조차 없는 건가.’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외면당하고 무관심의 대상이 된 나를 생각하니 내 자존감은 멈출 새 없이 추락했다. 삶에는 의미가 없어진 듯했고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진다는 흔하디 흔한 조언을 믿어보려 흐르는 시간을 재촉해봤지만 시계는 그런 나를 골려주려는지 초침의 시곗바늘 소리만 천천히 반복했다.     

‘째깍째깍’     


느리게 끌려가는 시간을 걷다 보니 모든 것이 낯설고, 복잡했으며 불안했다.     


아침에 구보를 할 때, 밥 먹을 때, 교회에서 혼자 일과를 할 때, 개인정비 시간 때, 잠에 들기 전 등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것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로켓까지 생각이 미치는 것처럼 나비효과를 일으켰고 좋은 생각을 의식해서 하려고 하면 무의식 중에 나쁜 생각이 침범했다. 생각의 결론을 세울 수는 없지만 멍하게 뭔가에 홀린 듯 있는 나를 자각할 때면 대개는 찜찜한 느낌이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축구를 해도 별반 다를 게 없었고 일부러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봐도 감흥조차 없었다. 그러다 청소시간이 되면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였으며 취침시간에는 잠들지 못하고 새벽까지 뒤척이다 아침이 되면 나쁜 꿈을 꾼 탓인지 찝찝한 몸을 일으켜 점호를 받으러 갔다. 그렇게 매일 한 시간도 버티기 힘든 시곗바늘을 겨우 돌리며 하루를 보내고 또 그다음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곧 일상이 됐다.      

허탈한 일상의 반복에 내 몸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한 가지 희망을 걸었다. 그 희망은 기다림 이였으며 내가 기다리고 있던 날은 월요일이었다.      

나는 군종병으로 토, 일에 교회에서 바쁘게 지내는 덕에 월요일은 휴무여서 목사님이 출근을 안 하신다. 교회에는 일반전화가 있으며 전 여자 친구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애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냐고 먼저 전화가 와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그저 기다림뿐인 하루가 지나고 나면 나머지 6일은 조금 더 우울해졌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고 나니 나 스스로 가르침을 줬다.


‘희망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분히 희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야.’


기대치는 점점 떨어져 갔고 그제서는 연락이 오더라도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기대치가 떨어져도 기다림은 조금 더 지속됐다. 전화가 온다면 ‘난 너 없이도 잘 살아’를 어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정말 그 애 없이도 잘 살아야 했다. 그래서 다시 다른 것들에 관심을 돌려봤다. 처음부터 잘 될 리가 없었다. ‘괜찮은 척’이라는 가면을 쓰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화났다가 슬퍼졌다가 우울해졌다가, 아니,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알 수 없는 색깔을 꺼내 들고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극기야 내 몸은 어떻게 반응을 해줘야 할지 갈피를 잃곤 말았다. 귀찮은 감정에 일일이 답변하기가 귀찮은 탓일까? 나는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결국은 나도 흔하디 흔한 사람이었다. 전에는 전혀 집중이 안됐지만 이제 살짝이나마 다른 것들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축구의 재미를 다시 찾았고 TV를 볼 때만큼은 내가 주인공과 동일인이 되어 그 기분을 공감할 수 있었다. 또 과학적 원인을 찾지 못해 처방받을 수 없었던 가슴통증은 서서히 자연 치유되어갔고 평생 지속될 것 같았던 망상은 간헐적으로 바뀌어갔다. 또 가끔은 일찍 잠에 들 수 있었다. 나는 서서히 활력을 되찾았다. 생활관 사람들하고 장난을 치고 가면을 쓰지 않는 채 웃을 수 있었고 PX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들고 빈 생활관으로 가 킹스맨을 보고 비밀요원을 동경했다. 나는 신기할 정도로 특별한 계기도 없이 자연스럽게 나를 찾아갔다.


수동적인 삶에서 유동적이라고 하기는 조금 부족하지만 얼추 비슷한 삶으로 변화하니 시선이 바뀌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이색적이었으며 산뜻했다.


책을 읽을 때 작가가 쓰는 표현, 단어 하나하나에 동요했으며 선선한 바람과 어깨를 주물러 주듯 편안하게 다가오는 햇볕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그런 행복의 때에 사색에 잠기며 별것도 아닌 것에 물음표를 던지고 나 나름의 답을 내릴 때면 내 몸을 빌려줘서라도 그 사소한 깨달음과 소소한 행복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누리게 하고 싶을 정도로 그것들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이 글의 첫 줄 같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해서 언젠가 시니컬한 아이가 돼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매 순간의 감정과 생각이 소중해졌다. 만약,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상자가 있다면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공간으로 가서 살며시 그것들을 꺼내어 느끼고 싶다.     


내 상황은 어느샌가 훌쩍 다가와 버린 계절처럼 변했고 내 감정은 날씨처럼 변덕스러웠다.                


2015.5.8~2015.5~20     



이전 08화 홀로 눈뜬 세상, 다 눈 감은 세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