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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성 Sep 04. 2018

빈방

처음엔 빈방으로 시작한다. 빈방에 무언가를 채워간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채우기도 하지만 보통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채워간다. 그러다 방을 둘러다 보면 이게 내가 원했던 것인지 남이 원하는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그렇게 방은 내 것도, 남의 것도 정리되지 못하고 먼지만 쌓여간다. 그렇게 지저분해진 방에 변화가 필요할 때면 낡은 것들을 버리기 시작한다. 오래된 물건은 소거되고 비교적 새로운 물건들로 방은 정리된다. 그렇게 어른이 돼 간다. 정리된 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가 않다. 더 이상 방에 새로운 것들을 채울 마음도 정리할 마음도 없기 때문에. 다만 다른 세련된 방이 부러울 뿐이다. 이따금 한 번씩 다시 빈방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한다. 하지만 방을 정리할 마음은 없다. 그러다 주변에 방을 채워 넣는 사람을 보고는 한 마디씩 한다. 

“너 방이 이게 뭐야”

정리된 듯 그렇지 않은 방에 먼지가 쌓여간다.     


20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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