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보성 Aug 08. 2018

슬럼프를 겪는 사람들에게

무뎌짐에 관해서

감사를 느낄 때, 무언가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행동에, 얼굴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여럿 봐왔다. 영원할 것 같은 환희에 찬 그들의 얼굴을 보면 나 또한 공감하고 감사한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무뎌진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들을 보고 내가 느꼈던 공감과 감사가 거짓말이라고, 당신의 지금이 영원하지 않고 무뎌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타날 찰나의 무색한 반응을 숨기기 위해 저항의 감정이 나의 감정을 속이고 거짓말 하는 거라고 말이다. 사람은 무뎌진다. 나는 이 '무뎌짐'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제와 오늘이 같고 내일도 같을 것이라 확신할 때, 성과가 없을 때, 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낄 때 삶은 무기력해지고 무뎌진다. 그리고 "슬럼프에 빠졌다."라고 한다.     

누구나 슬럼프를 겪는다. 무뎌진다. 그리고 이 슬럼프가 지나갈 것이라고 머릿속으로는 나름 알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슬럼프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지 못한다. 슬럼프를 겪는 이들은 이미 보통과 다른 공간과 시간에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있어도 혼자 있는 듯하고 넓은 운동장 한가운데에 있어도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또 그들의 시간은 물속에 잠긴 듯 작은 초침을 가까스로 튕겨내며 자연스러워야 할 일상에 기계처럼 끌려다닌다.       


 ‘내가 한 말들, 생각들, 느낌들은 수천 년 전 누군가 이미 했던 것들이고 내가 표현하지 못한 내 감정들도 이미 그림으로, 글로, 노래로 수없이 만들어졌다. 내 속에서 나왔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사실은 밖에서 나온 것이고 나는 결국 수없는 모방으로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하다.’      


나는 무뎌질 때면 이러한 생각을 한다. 아니, 이러한 생각을 할 때면 난 무뎌져 있었다.

        

무뎌짐은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에게 내가 무의미하다고 느끼거나 내게 있어서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 나타난다. 그래서 무뎌질 때면 어떻게든 ‘나’와 다른 모든 것들은 분리된다.      

어떻게 무뎌짐을 해결할 수 있을까? 보통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시간은 잔인하면서도 공평해서 우리의 환희만 무뎌지게 할 뿐 아니라 이 ‘무뎌짐’마저 무뎌지게 한다. 하지만 결국은 ‘나’와 다른 모든 것들을 분리시킨 벽을 허물어야만 무뎌짐이 해결되는 것이다. 시간은 그 성질상 이 벽을 무뎌지게 하는데 도움을 줄 뿐이다. 만약 누군가 영원히 이 벽을 더 단단하게 굳히려 한다면 이 무뎌짐의 끝은 없을 것이다. 무뎌짐을 해결하는 방법은 내가 느끼는 무의미에 대해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나는 그 의미를 한 물건에서 발견했다. 

     

교회에 들어서면 십자가를 가운데로 나뉘어진 장의자가 보인다. 성도들은 그곳에 앉아서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린다. 사람들은 그곳에 앉아 감사를 드렸고 깨달음에 찬송을 드렸고 어떠한 마음으로든 간절했다. 공허한 예배당에 노후된 장의자는 주름같이 갈라져있지만 성도들의 감사와 깨달음과 간절함은 그 주름 안에 스며들어있다. 누구나 다 열정이 있었고 누구나 다 무뎌짐을 겪었다. 공허하게 자리한 장의자는 그 모습과는 다르게 누군가의 열정을 고아냈다.      


수천 년 전의 날카로운 열정을 부르짖던 누군가도 언젠가는 무뎌졌을 테지만 지금도 그를 닮아 열정을 부르짖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느낀 것, 느끼지 못한 것, 표현한 것, 표현하지 못한 것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그것으로 환희를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그 환희가 무뎌졌을 것이다. 어찌 됐든 우리는 누구나 다 비슷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무의미하거나 내게 있어서 세상이 무의미하지 않는 것이다. 무의미의 무뎌짐을 허물려면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특별할 필요는 없다. 내가 잃어버렸던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사랑해야 한다. 언젠가 무뎌질 걸 알면서도, 그렇기에 더욱더 간절하게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는 그것이 당신을 녹여낼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의미를 줄 것이다. 내가 장의자를 보고 의미를 발견했듯이 말이다.       


2018.7.30.~2018.8.8                    



이전 05화 무의미와 의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