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애란 작가의 문장을 좋아한다. 위트 있고 웃음이 새어 나오게 하면서도 막상 문장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은 가볍지 않다. 다르게 말하자면 무거운 내용을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그러면서도 그 속성은 해치지 않고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빠져들도록 만든다. 가독성도 뛰어나다. 술술 읽힌다고 해야 할까. 문장에 걸리거나 막히는 부분이 없어서 한 호흡에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이 ‘침이 고인다’라는 소설집도 앉은자리에서 모두 읽어버렸다. 재밌고 쓸쓸한 소설집이었다.
‘침이 고인다’는 총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묶인 소설집이다. 여덟 편 모두 특별한 인물이나 상황을 다룬다기보다는 어디선가 본 듯한, 우리 주변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 평범한 상황에서 우리가 미처 집어내지 못한 감각들을 언어로 재단해 풀어내는 솜씨가 기가 막힌다. 지극히 흔한 상황도 작가의 손을 거쳐서 문장으로 내려앉으면 창의적인 묘사와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을 꼬집는 놀라움으로 그 상황에 대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예를 들면 영어 공부를 하던 언니가 펜을 집어던지면서 “야, ‘미래’가 어떻게 ‘완료’되냐?”라고 묻는 장면처럼.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미래완료 시제지만 언니가 저렇게 묻는 순간 그렇네? 미래가 완료된다는 게 뭐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평소에 잘 떠올리지는 않지만 문장으로 본 순간 공감하게 되는 것들이 이 소설집에는 차고 넘친다. 김애란 작가가 평범함 속의 어렴풋하고 불명확한 감정을 얼마나 예리하게 집어내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소설은 ‘칼자국’이었다. 주인공 ‘나’의 엄마는 칼 한 자루로 ‘나’를 먹여 살렸다. 국숫집에서도 칼을 잡았고 집에서도 ‘나’를 먹일 음식을 만들기 위해 칼을 잡았으며 그 칼은 몇십 년간 수없이 썰고 베어 닳고 닳아버렸다. 엄마에 대한 ‘나’의 기억 끝에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이 나오고 ‘나’는 속옷과 양말 좀 갖다 달라는 아빠의 부탁에 장례식장을 나와 엄마의 국수가게 맛나당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잠시 잠들었다가 일어난 ‘나’는 엄마의 칼로 사과를 깎아 먹고 말한다. “아, 맛있다!”
집에서 김치를 썰고 과일을 깎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소설 속에서 ‘나’는 엄마의 수많은 칼자국을 먹고 자랐다고 이야기하는데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칼로 썰어낸 수많은 음식들을 먹고 나는 자라났고 그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칼과 어머니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공감이 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칼은 칼이고 어머니는 어머니였던 것이 이 ‘칼자국’ 속의 이야기를 통해 내 머릿속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가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칼자국’의 묘미는 단연 결말이다.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나’가 엄마의 국수가게 맛나당에서, 엄마의 닳고 닳은 칼로 칼자국을 잔뜩 낸 사과를 먹는 것은 엄마가 ‘나’에게 주었던 칼자국을 이제 ‘나’가 자신의 뱃속 아이에게 전해주는 느낌이었다. ‘나’가 엄마의 칼자국을 먹고 자랐고, ‘나’는 내 뱃속의 아이에게 칼자국을 먹여 키우고 또 그 아래로, 아래로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다. 영원히 반복되는 칼자국이 이어주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 아픈 어머니가 생각나며 슬프고 고맙고 아프고 씁쓸하고, 그렇다.
아직 못 읽어 본 김애란 작가의 소설들이 많다. 달려라, 아비나 비행운 같은 소설집도 그렇고 장편인 두근두근 내 인생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읽어야 할 김애란 작가의 소설이 많이 남아 있음에 든든한 느낌이다.
소설 속 한 문장 :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