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학교에서 잘 운다.
그냥 우는 것도 아니고 엄청 큰 소리로 운다.
내가 울 때마다 우리 교실에 선생님들이 우르르 오신다.
지난번에는 교감선생님이 오셔서 우는 나를 달래다가 계속 우니까 포기하고 가셨다.
내가 울 때 우리 선생님 표정을 보면 힘들어 보이고 친구들 몇 명은 놀라고, 몇 명은 웃으면서 구경한다.
그런데 내가 한 번 울면 학교가 떠날 듯이 울고, 어떨 때는 물건을 던지면서 울기도 하니까 내가 왜 우는지 궁금해하기보다 그냥 빨리 그쳐주길 바라는 눈치다. 그래서 계속 내 이름만 부른다.
선생님도 그랬다.
“수림아~”
“수림아~~”
“오수림! 그만 울어! 일어나!”
아무리 나를 말려도 소용없다.
나는 내가 그치고 싶을 때 멈춘다.
그렇다고 내가 그냥 우는 건 아니다.
특히 나를 화나게 하는 김민수.
나만 들리게 놀리고 가버린다. 그래서 안 들킨다.
선생님께 말해도 김민수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다며 팔짝 뛰고 어떨 때는 지가 울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더 억울하고 화가 나서 운다.
그런데 내가 너무 시끄럽게 우니까 나만 미움받는 것 같다.
“수림아~ 화장실 가서 세수하고 와."
내 소리가 잦아들면 선생님은 화장실 가서 세수하고 오라고 한다.
세수하고 와서 자리에 앉으면 선생님도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으신다.
나도 울기 싫은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눈물이 계속 난다.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지난주에는 내가 너무 울어서 할머니가 학교에 오셨다.
할머니는 복도에서부터 내 이름을 불렀다.
“오수림! 니 안 그치나?”
“어서 일어나라! 가자”
“아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집에 데꼬 갈께예.”
집에서 할머니께 엄청 혼이 났다. 그래도 계속 한 번 울면 멈춰지지가 않는다.
‘이제는 교실에서 울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잘 안된다.
“사인펜이랑 색연필 준비하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물함으로 가는데 김민수가 내 옆에 오더니 또 “오수림 바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사물함 앞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또 교실이 떠날 듯이 울었다.
“수림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른다.
친구들이 다 쳐다본다.
더 크게 울었다.
“자, 바르게 앉고 색칠하자.”
선생님은 친구들이 날 쳐다보지 못하게 해 주신다.
선생님이 더 이상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목이 아프다.
어쩔 수 없이 그만 우는 건데 선생님은 이제 내가 다 울었다고 생각하실 거다.
“수림아~ 다 울었어?”
“...”
“화장실 가서 세수하고 올래?”
“네...”
“수림아, 수업 마치고 선생님이랑 이야기 좀 하자."
“네...”
방과 후 선생님이 앞, 뒷문을 닫고 세 번째 분단 책상 두 개를 마주 보게 한 뒤 나를 앉게 하셨다.
“수림아...”
“네”
“수림이 왜 그렇게 울어?”
“...”
“이유를 모르겠어?”
“...”
“수림아... 수림이 엄마 생각나서 그래?”
“...”
선생님이 ‘엄마’라는 말을 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안 나온다.
‘엄마’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우리 할머니뿐이다.
자식 버리고 간 게 엄마냐고 매일 엄마 욕을 한다.
나는 할머니가 좋은데 할머니가 엄마 욕을 할 때마다 할머니가 너무 싫다.
엄마.
내가 5살 때, 잠을 자다 현관문 소리가 나서 눈을 떴다.
그때 엄마가 현관문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봤다.
그 뒤로 나는 엄마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아빠가 나랑 오빠를 여기 할머니 집으로 데려다주고 가버렸다.
“수림아, 엄마 얘기해도 되니?”
“네...”
엄마를 욕하는 것만 듣다가 선생님이 엄마 말을 하니까 싫지가 않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나?”
“조금요.”
“엄마 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많이 나?”
“걱정이요.”
“엄마가 걱정돼?”
“네.”
그냥 엄마가 걱정된다.
걱정된다는 게 뭔지 모르겠다.
그런데 ‘엄마’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이거다.
이상하다.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고 나서 내가 울지 않는다.
김민수가 아무리 나만 들을 수 있게 놀려고 눈물이 나지 않는다.
주저앉지도 교실이 떠날 듯이 울지도 않는다.
이상하다.
기분은 나쁘고 화는 나는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
엄마가 생각나는데 눈물은 안 난다.
엄마가 보고 싶은데 눈물은 안 난다.
이제 울지 않아도 엄마를 생각하게 된다.
1학년 중반에 전학 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운동장 시소에 늘 혼자 앉아있던 수림이.
친구들과 자주 싸우고 남학생이든 오빠든 화가 나면 악을 쓰며 때리던 수림이.
전학 오자마자 그렇게 인싸가 되었다.
그런 수림이를 2학년 때 담임으로 만났다.
한 번 울면 교실에 주저앉아 학교가 떠날 듯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 크고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저 어린것이 무슨 저런 소리를 내며 울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몇 십 번 이름을 부르며, 야단도 쳐보며 울음을 멈추게 했다.
정 안될 때는 할머니를 부르기도 했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수림이~"
5살, 새벽잠을 뒤척이던 어느 날 현관문을 나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본 수림이는 그 뒤로 엄마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뒤로 우는 아이를 보면 내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엄마'라는 마음속 응어리를 터뜨려주고 싶었다.
어렵지만 어렵지 않게 '엄마'이야기를 꺼냈다.
수림이는 그 와중에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다.
'미워요'가 아닌 '걱정돼요'를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그 뒤, 품이 넓고 사랑 많은 신규 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나 수림이는 더 나아졌다.
수림이는 더 이상 바닥에 주저앉아 울지 않았다.
그리고 3년 뒤.
수림이를 함께 가르쳤던, 이제는 각기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는 후배들을 만났다.
"부장님, 저 지난주에 수림이 만났어요."
"왜?"
"카톡 하다가 수림이가 자기 생일이라고 하더라구요. 케익 사서 수림이 만나러 학교로 갔어요."
차도 없는 영은샘은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수림이를 만나러 갔다.
수림이가 걱정하는 엄마는 곁에 없지만
수림이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걸.
그래서 수림이가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이 덜 외롭길 바래본다.
그리고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길 오늘도 문득 생각난 수림이를 위해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