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진지한 관심이 필요한 때
나는 기업인이 아니라 그들의 세상은 모르지만
한 동안 꽤 궁금했다.
왜 백화점은 직원에게 갑질하는 VIP 손님을 내쫓지 못할까.
"무례한 당신, 이제 우리 백화점 이용을 금합니다."라는 말을 왜 하지 못할까.
저 한 명의 손님쯤 사라진다고 백화점이 무너질까?
저 손님의 영향력이 커서? 친구 vip들도 따라 나가서?
그들만의 인맥, 한 다리 건너 다 연결되어 있는데 백화점 ceo가 난감해져서?
직원보다 매출을 올려주는 손님이 더 소중해서?
결국 '돈'으로 귀결되는 건가?
학교에도 공교육을 개인 맞춤형 교육처럼 사유하고자 떼쓰는 VIP 학부모가 존재한다.
내 아이를 더 많이 이해해주고, 특별히 대해달라는 한 학부모가 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너무나도 자기 중심적이고,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질 못했다.
욕하고 때리는 아이를 좋아할 아이는 없었다.
그런 그 아이를 훈육하는 날엔 곧장 교실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은 내 아이를 오해했으며, 상대 아이가 먼저 내 아이를 화나게했다는 무한 반복의 학부모 말.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 급기야 그 학부모는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하소연한다.
그렇게 서로 상처만 남긴채 아이의 1년이 마무리 되었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그 아이는 2반이 되었다.
2반은 자연스럽게 해당 학년에서 가장 순하고 착한 아이들로 구성되었다.
이제 담임은 누가 할 것인가.
어느 교사도 그 학년을 지원하지 않았다.
교사들은 학년 희망서를 제출하지만
결정은 교장의 고유권한이다.
학년은 정해지지만 반은 보통 뽑기를 한다.
평소 사명감과 책임감이 강한 A교사는 갑자기 그 아이의 담임을 맡으라는 명을 받았다.
어떤 한 해가 벌어질지 지레 짐작되지만 교사의 사명감으로 결국 받아들였다.
그 아이는
최고의 친구들과 책임감 강한 선생님을 만나는 특별 대우를 받는다.
그 아이 부모는 더욱 아이 학교생활을 감시한다.
행여나 우리 아이가 선생님과 친구들 때문에 행복한 학교생활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그 반 아이들은 1년 내내 즐거운 놀이 활동을 하지 못했다.
놀이 활동을 하려 하면 시작과 동시에 다툼이 일어났다.
그 중심엔 그 아이가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아이들이 그래도 놀고 싶어 점심시간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놀면
그 아이가 뛰어 들어간다.
뛰어 들어온 그 아이를 보며 시무룩 해지는 아이들의 표정에 그 아이는 자지러진다.
"선생님! 친구들이 절 따돌려요!"
그 아이 부모에게 전화가 온다.
그 아이를 함께 잘 키워보고자 A교사는 대화를 시도하지만 정말이지 쉽지 않다.
이제 점심시간에도 아이들이 나가질 않는다.
VIP와 함께 놀 수 없다면 너희도 놀이를 멈추거라.
다행히도 그 담임은 최선을 다해 학급 경영을 했고
온 힘을 다해 살아남았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찾아왔다.
그 반 아이들 모두 우울했다.
그 아이도 우울했다.
그 반 부모들은 한 아이 때문에 자녀들이 힘든 걸 알고 있었다.
그 부모가 보통 이상인 걸 알았기에 엮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게 흘러간 1년이란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그 반은
과연 정말 괜찮았을까.
아이들은 선생님께 제대로 공부를 배우지 못했다.
선생님은 가르침보다는 학급 생존에 에너지를 더 썼다.
아이들은 단 한 번을 친구들과 즐겁게 놀아보지 못했다.
백화점 갑질 VIP가 여전히 VIP로 대접받는 것과
이기적인 학부모가 존중받는 학교는 너무나도 닮아 있다.
백화점은 이제 먹고 살만큼 살지만 아직도 '돈'이 우선이라서 그렇다 치면 학교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이유를 계속 찾고 있다.
왜일까.
왜일까.
설마, 무관심은 아닐까?
어느 날 친구가 전화로 하소연을 한다.
"우리 애 유치원에 여자 애 한 명이 좀 이상해. 어제는 우리 애 머리카락 자른다고 갑자기 가위를 갖다 댔다는 거야. 얼마나 놀랬던지. 선생님한테는 말했는데 너무 걱정된다."
한 달뒤
"내가 접때 말한 여자 애 있잖아. 계속 위험한 행동을 해서 학부모들이 유치원에 찾아갔거든. 그 아이 부모도 오고 다 만나기로 했어. 근데 희진이라고 있는데 그 애 아빠가 이렇게 말하는데 내 좀 놀랬다."
"뭐라 했는데?"
"민주 부모님, 민주의 유치원에서의 행동 잘 아시지요? 저희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민주의 행동을 고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노력을 하고 계신다면 저희도 이해하고 도울 생각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민주 부모는 즉시 병원 상담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학교라는 곳에도 희진이 아빠같은 학부모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학부모
아이들의 교실에 관심을 가지는 학부모
다음 세대들이 살아갈 세상을 도와주는 학부모.
그 어느때보다
어른들의 진지한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지금의 학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