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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아리 Sep 11. 2024

저마다의 액션가면

애쓰는 우리들

2학기 시작과 함께 동학년에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다.

개학 첫 주는 너무 바빠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오늘에서야 서로 얼굴 보며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

오후 3시.

"메뉴판 사진 보냅니다. 원하시는 음료 알려주세요."


"밀크티 아이스"

"플레인 요거트 스무디"

"제주 당귤 선셋 슬러쉬"

"아보카도 바나나 스무디"

"애플망고 스무디"


선생님들의 답장에 웃음이 났다.

모나미 볼펜처럼

정형화되고 좀처럼 자신의 색깔을 잘 드러내지 않는 분들이

하나같이 메뉴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크롤해 각기 다른 음료를 선택한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나 역시도 학교에서와 학교 밖에서의 내가 다르니

동료 선생님들도 교문을 들어서며 교사로서의 자신이 되는 거겠지.


아이들은 어떨까.

다양한 종류의 음료들이 올려진 테이블 속에서 문득 우리 반 아이들이 생각났다.

23명 모두 각기 다른 개성과 특징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있다.


그러나 아이들도

학교 정문에 들어서면서 '이 학교 학생'으로

교실을 들어서며 '이 교실 학생'으로

자세와 태도를 갖추리라 생각한다.


우리 반 서연이는 아직 나를 보면 수줍어하고 말하기보다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으며 의사표현을 하는데

학기 초 기초 조사서에는 '집에선 말괄량이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헤어지기 전에 그 말괄량이 모습을 한 번 보고 싶은데 '학생으로서의 서연'이 모습만 보게 될 것 같다.


해야 할 일을 잘하지 않는 아이를 보면

교실에서 '선생님'인 나는 아이의 성실한 태도가 길러지지 못할까 염려되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행동을 개선시켜 보고자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적용해 본다.

교실에서의 '내'가 아니라면 저 아이의 삶을 걱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내 앞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삶이 더 나아지길 간절히 바란다.


집에선 40분을 한 곳에 앉아 있기 힘든 아이도

교실에서 '학생'이기에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수업에 참여하며 자신을 조절하는 것이다.

집에선 입에 대지도 않는 김치를 학교에서 먹을 수 있는 것도 '지금은 학생'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적응하며 학생으로서 잘하고 싶어 한다.


학부모 상담 때 아이의 꼬불꼬불한 글씨 때문에 집에서 아무리 고쳐보려고 해도 말을 안 듣는다며

속상해하는 학부모의 고민에

"어머니, '바른 글씨 쓰기'책 하나 사서 보내주세요. 저랑 해볼게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시윤아, 선생님이랑 오늘부터 글씨 쓰기 연습해 볼까?"라고 하면

아이는 "네"하며 할 거라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교실 밖의 '나'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교실 안 '나'는 할 수 있다.


저녁부터 잠들기까지의 시간을 게임과 함께하는

집에선 공부자체를 하지 않는 민찬이도

교실에선 느리지만 세 자릿수 × 한 자릿수를

해내기 위해 쉬는 시간도 반납하고 공부한다.

학교에서는 그리해야 하는 걸 아는 거다.


아침 독서 20분,

집에서 나라면 드러누워 핸드폰을 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 앞이기에 함께 책을 읽는다.

아이들도 집에서 이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을까? 학교니까 바른 자세로 잘 읽는다.


교문을 나서면

또 다른 역할인 '엄마'로서의 내가 되고,

아이들도 한 집의 '사랑스러운, 또 엄마, 아빠 말을 듣지 않는 개구쟁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서 만나는 우리는

잘 가르쳐보려는 교사로서,

잘 배워보려는 학생으로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8시 35분까지 교실에 도착해 하루 교과서를 모두 준비하고

아침 독서 20분을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수업 시간 40분을 많게는 6교시까지 성실하게 공부하고

학급에서 맡은 자신의 역할을 까먹지 않고 매일매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새삼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 오늘이다.


학교는 그런 곳이다.

그리고 계속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내일 만나자. 짱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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