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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아리 Sep 25. 2024

닭이 못나는 건 네 탓이 아니야.

너희는 어떤 어른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니?

날개가 있는 동물은 모두 날 수 있을까요?

뒤뚱뒤뚱 뛰어가는 영상 속 펭귄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웃기다며, 귀엽다며 깔깔깔 넘어간다.


"펭귄, 닭, 타조는 날개가 있잖아. 그렇지만 모두 오래 또는 멀리 날 수가 없어."

"왜 그럴까?"


펭귄은 하늘이 아닌 바다를 날아가는 것처럼 헤엄치기에 알맞게 납작하고 단단한 날개로 바뀌었고,

닭은 날 수는 있어. 하지만 닭장에 가둬 키우면서 날 기회를 잃으면서 잘 날지 못하게 되었단다.

타조도 큰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적을 만났을 때 날아서 도망가기보다 빨리 뛰어 도망가다 보니 날 수 있는 기회를 점점 가지지 못하면서 못 날게 되었단다.


"이렇게 환경에 적응하며 날개의 기능과 생김새가 변화한 거란다."


뒤뚱거리던 펭귄 모습에 박장대소하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

 

급식에 닭요리가 있으면 아침부터 과흥분 상태인 현준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치킨을 너무 좋아하는 나 때문에 닭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지 못하게 된 걸까?'

혹시 이런 생각을 하는 거니?


"이렇게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무언가의 모습이나 능력은 발달하기도, 새롭게 생기기도, 사라지기도 한단다."


"음... 얘들아, 우리 반 친구들도 모두 사는 환경이 다르잖아."

"우리 집, 내가 함께 사는 부모님이나 가족을 떠올려봐. 나는 우리 집에서 태어나고 지금까지 자라면서 뭐가 특별히 발달했을까?"


"요즘 저희 형이 사춘기라서 엄마랑 매일 싸우거든요. 그래서 제가 눈치가 빨라졌어요. 엄마가 형이랑 싸우면 저한테도 뭐라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엄마랑 형이 싸울 때 빨리 책상에 앉아서 문제집 풀어요. 그럼 잘 안 혼나요."

"저는 삼각김밥을 종류별로 다 잘 먹어요. 아빠가 밤에 올 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많이 가져오시거든요. 그거 제가 다 먹어요."

"제가 동생이 세 명이잖아요. 저는 길에서 애기들 보면 몇 살인지 딱 보면 알아요. 그리고 아기 기저귀 오줌 안 새게 잘 갈아서 엄마가 저한테만 시켜요."

"저는 엄마 아빠가 아침에 7시 반에 회사에 가시거든요. 그래서 2학년때부터 혼자 밥 먹고 학교에도 잘 와요."

"저는 엄마가 수학공부를 많이 시켜서 수학만 문제집 3권을 풀거든요. 그래서 힘들긴 한데 수학실력이 높아진 것 같아요."

"저는 아빠랑 매일 게임을 2시간 넘게 하거든요. 브롤스타즈 레벨이 우리 반에서 제가 제일 높아요."


"선생님은 너희랑 같이 지내면서 웬만큼 시끄러운 소리는 다 참아낼 수 있게 되었단다."

"아하하하"


지금의 너희는

지금의 나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 특히 어른 환경이 만든 건 아닐까.


3학년 때, 차별의 일상과 반장만 편애했던 담임선생님으로 자신감이 뚝 떨어졌지만

그다음 해, 내 안에 리더십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꺼내 반장의 기회를 준 선생님으로 자신감은 곧 회복되었고

고 2 때, 우리들의 어떤 철없는 행동도 유일하게 이유를 물으시던 담임 선생님 덕분에 존중받는 게 무엇인지 알았고

스무 살 넘어 만난 교수님 덕분에 발표 공포증도 사라지고

사회에서 만난 좋은 어른들과 또 그렇지 않은 어른들로부터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를 배우고

그럼에도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좋은 어른들이, 좋은 환경이 더 많았음에 감사함과 안도감이 느껴졌다.


내 앞에 앉아있는

내 귀를 튼튼하게 만들고

내 얼굴에 주름이 안 생기게 계속 잔소리하게 만드는 요 녀석들의 10살 인생에

이제는 내가 어른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무겁고, 의미 있고,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는.


담임 선생님에서 10살 인생에 가장 영향력 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을까?


이제는

"친구들 안녕~!!" 웃는 얼굴로 교실에 들어서야지.

긍정적인 표현과 따뜻한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해야지.

두 자릿수 X 두 자릿수 어렵다고 안 하려고 도망쳐도 혼내지 않고 웃으며 앉혀서 공부 시켜야지.

 



"얘들아, 그러면..."

"너희는 올해 선생님이라는 환경 속에서 뭐가 발달하고 있니?"

(기대기대)


뭐야, 아까 그렇게 너도 나도 손들고 말하더니 왜 말이 없어?

왜 서로 쳐다보며 너희끼리 웃는 건데?


10살 인생에

사람 성격을 빠르게 파악하고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능력이 발달한 거니?


"저요!"

"오, 그래, 재민이!"

"저는 선생님 만나서 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2학년때까진 아무 생각이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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