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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아리 Oct 02. 2024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저도 못 참을 것 같아요!

꼬맹아 VS 뚱돼지

"선생님, 지금 어디세요?"

"네 교감선생님. 지금 동학년 출장 나와있습니다."

"그렇죠? 그 반에 효준이 학생 있죠?"

"네."

"오늘 그 학생 무슨 일 있었나요?"

"음.. 아니요. 별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그 학생 어머니께서 담임선생님과 통화하고 싶다고 하는데..."

"무슨 일인가요?"

"나도 모르겠어요. 담임선생님과 통화하고 싶은데 교실에 전화해도 통화가 어렵다고... 조금 급해 보이던데... 제가 톡으로 어머니 전화번호 보내 놓을게요. 전화 한 번 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길래 교무실에까지 전화를 했을까.

교감선생님도 내가 민원을 받는 건지 염려하는 눈치다.

오늘 학교에서 효준이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별일 없었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어머니, 효준이 담임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오늘 학교 마치고 민철이가 우리 효준이에게 "꼬맹아"라고 했답니다. 마치고 애가 전화가 와서 속상해하는데..."


효준이는 학년 친구들에 비해 키가 눈에 띄게 작다.

부모 입장에서 매우 신경 쓰이는 부분일지라.

어머니의 속상함과 흥분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네 어머니 그런 일이 있었군요. 지금 효준이를 만난 건 아니고, 통화를 하신 거죠?"

"네 선생님 이게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1학년때부터 계속 애한테 그러는데 이제는 이러면 안 될 것 같아요. 그 친구 부모님도 교육을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네, 그렇지 않아도 화요일 방과 후에 효준이가 저에게 와서 민철이가 꼬맹이라고 했다고 일러줬어요. 조금 있다 민철이가 교실을 지나가길래 불러서 꼬맹이라고 한 적이 있냐고 하니 했다고 바로 인정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효준이도 자기에게 "뚱땡이, 돼지"라고 했다고. 서로 놀렸다고 하더라고요. 다음날 효준이에게 물으니 인정하더라구요. 효준이도 민철이도 서로 놀리는 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또 그런 일이 있으면 곧장 선생님에게 오기로도 약속했는데 오늘 방과 후에 그런 일이 있었나보네요. 제가 교실에 없어서 어머니께 전화를 했나 봅니다."


"네, 선생님. 민철이가 우리 효준이를 계속 놀리는데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으면 저도 이제는 좀 참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네 효준이 집에 오면 잘 다독여주시고, 제가 내일 두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사들이 뻔히 잘 알면서 빠지는 함정이 있다. 오늘 내가 그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오롯이 효준이의 말을 믿어버렸다. 평소 민철이가 친구들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하고, 4반 담임선생님의 에너지를 많이 가져가는 아이라는 이유로 함정에 빠져버렸다. 선생님과 민철이의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그 아이 탓만 했다. 그 아이 걱정만 했다. 

"선생님, 내일 제가 두 친구를 만나볼게요. 민철이 오면 저희 반으로 보내주세요."

그렇게 전화 한 통으로 동학년 출장은 걱정과 한숨으로 마무리되었다. 


효준이과 민철이를 만났다.

"민철아, 어제 효준이에게 '꼬맹이'라고 했니?"

"아니요. '땅꼬마'라고 했어요."

"왜 그런 말을 했니?"

"제가 어제 효림문구에서 테이프를 사서 나오는데 쟤가 저한테 '너 그거 훔쳤어?'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아니.'라고 했는데 계속 '너 그거 훔쳤어?'라고 말해서 짜증 나서 '땅꼬마'라고 했어요."

"그랬구나."

"효준아, 민철이 말이 사실이니?"

"어.. 음.. 그게..."

효준이가 내 얼굴을 계속 쳐다본다.

"네..."

"왜 훔쳤어?라고 물었어?"

"제가 효림문구 갔을 때 민철이가 테이프를 들고 나오는 모습만 봤어요."

"그래서 훔쳤다고 생각한 거니?"

"네."

"그런데 안 훔쳤다고 했는데도 왜 계속 훔쳤어?라고 말했어?"

......


"어머니~ 안녕하세요. 효준이 담임입니다."

아침에 아이들과 나눈 대화를 전달했다.

"앞으로도 둘 사이에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놀리는 말을 주고받지 않고 담임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로도 약속했습니다."

"아... 네... 선생님.. 효준이도 집에서 잘 교육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네, 효준이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선생님께 말하기로 했는데, 혹시나 저에게 말하지 못하고 부모님께 얘기할 때는 제가 알아야 할 일이라면 꼭 연락 주세요."

"네,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등학령기 아이들은 발달단계상 자기 중심성이 강하다.

자기 중심성은 이기적인 것과는 다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 내 생각이,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어떤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것이 더더욱 나에게 불리한 상황이라면 그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어른들도 그럴진대 아이들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이 느낀 불편한 감정이 너무 분하고 화가 난다.

이때 아이들은 행동한다.

내가 받은 이 기분 나쁨을 똑같이 돌려준다. 똑같이 기분 나쁜 말이나 폭력으로.

그런데 왠지 상대가 나보다 세 보이거나 내 힘으로 돌려줬는데도 분이 불리지 않을 때는 나보다 더 힘센 사람, 상대가 두려워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다.

그게 바로 선생님이나 부모님이다.

그만큼 아이들은 성찰과 관용에 취약하다.

 

"선생님 쟤가 저를 놀렸어요."

"선생님 쟤가 제 지우개를 가져가서 안 줘요."


"너 oo를 놀렸니?"

"쟤도 저 놀렸어요."


"너 oo 지우개 가져가서 안 줬니?"

"쟤도 제 연필 가져가서 안 줘요."


그래서 아이들의 말을 들을 때는 '그래. 이건 니 입장이지.'라는 전제로 들어야 한다.

반쪽 이야기다. 아직 나머지 반쪽을 듣지 않았다.

교사로서 수 십 년 동안 하루에도 몇십 건의 고자질과 민원을 받으며 깨달은 진리다.

놀림, 때림, 물건 가져감, 기분 나쁜 말하기 등은 열에 아홉은 서로 주고받음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은 아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아이를 믿지 않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발달특성과 수십 년의 경험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부모 앞에서 슬픔과 고통과 억울함을 호소하면 부모는 무너질 수 있다.

부모는 학교라는 공간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고, 부모이기에 내 아이의 말에 감정이입이 된다.

내 아이를 속상하게 만든 B는 너무 나쁜 아이다.

내 아이의 울먹임에 속상하고 뭔가 아이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이 상황을 담임선생님께 알리고 싶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빨리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이톡으로 문자로 어쩌면 전화로 선생님께 아이의 말을 고스란히 전한다.

그게 퇴근 후든, 밤이든, 새벽이든..

반쪽짜리 이야기가 완전한 이야기인 것처럼.


그러나 지금은 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위로가 될 것이다.

아이는 '지금 당장 선생님께 일러줘!'를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 거다.

부모로부터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은 걸 지도 모른다.


"엄마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엄마 괜찮아."

그럼 괜찮은 것이다.

그 순간, 아이는 다시 우주의 중심이 된다.

우리 부모님이 내 마음을 공감해 주었으니까.

그리고 아주 짧게 내가 그 친구에게 했던 못난 장면도

훅 지나갈 것이다.

'그래, 뭐. 너와 나는 주고받은 거야.'

그리고 며칠 동안 학교 이야기를 물으며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살피면 된다.


지금 원수처럼 싸워도

서로의 어깨를 쓸며 "미안해"라는 친구의 말에 "괜찮아" 하며 손잡고 뛰어노는 게 또 아이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도와줄까?라는 물음에

"엄마가 나 대신 선생님께 말해줘."라고 한다면 다음 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선생님, 우리 oo가 이런 이런 이야기를 해서 사실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돼서 연락드렸습니다."
바로 이때가,

아이의 학교생활에서의 어려운 점을 돕기 위해 교사와 학부모가 힘을 합쳐야 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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