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너구나.
또 자른다. 내가 하는 말의 서술어가 나오기도 전에
또 본다. 친구가 못하는 것만 찾아내서 보려는
또 말한다. 내 속, 친구 속, 뒤집는 너의 기분 나쁜 말
인정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친구들의 민원에도 넌 늘 억울하고, 이유가 있다.
우리 만난 8개월 동안 마음공부만 12장이요.
내 관찰일지 기록엔 네 이야기가 가득하구나.
그래도 기죽지 않고
그래도 삐치지 않고
"잘해보자!" 하면 "네"
"달라지자!" 하면 "네"
그래서 널 포기하지 못한다.
헤어지는 그날까지 끝까지 가보자.
"체육 시간 별일 없었니?"
"선생님!" 영화가 손을 든다.
"왜?"
"진우가 저한테 '니애니'라고 했어요!"
영화의 목소리에 울분이 가득하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뭐라고 했다고?"
"'니애니'라고 했어요."
"내가 언제~"진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니애니가 뭔데?"
"'니애미'에서 한 글자만 바꿔서 말한 거예요. 저희 엄마 욕한 거예요."
심장이 빠르게 뛴다.
"아니 그게 아니고~"또 진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 조용히 해!"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니애니'라는 말이 그런 뜻인 건 어떻게 알아?"
"유튜브에서 봤어요. 엄마 욕하는거예요. 패드립한 거예요!"
패드립이란 2000년대 이후로 흔히 사용되고 있는 인터넷 용어로, 패륜+드립의 합성어다. 본인의 부모와 남의 가족, 친척을 개그의 소재나 비하의 표현으로 삼은 모욕성 발언을 의미한다.
-나무위키-
우리 반 나머지 아이들은 이 말을 모른다고 했다.
하루 4시간 이상 게임과 유튜브를 하는 영화는 이 말의 의미에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온 몸에 힘이 빠진다.
내가 3월부터 지금까지 너와 나눈 이야기, 시간, 그 많은 기회들이 얼마인데...
10월에도 이렇다면, 게다가 그런 저급한 말을 평소 더욱이 불친절하게 대하는 영화에게 하다니.
2024년 오늘이 가장 화나는 날이다.
처음이다.
진우가 자신의 행동을 인정했다.
그 말의 뜻을 본인은 알고 있으며, 장난을 치고 싶었고, 한 글자만 바꾸면 영화가 화내지 않을 줄 알았다고.
보통 아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교사들은 더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내가 화가 많이 났기에 끝낼 수 없었다.
영화를 낳아주고 키워주시는 어머니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최선을 다해 일러주었다.
"네가 쓸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글씨와 내용으로 영화에게 사과 편지를 써."
"네"
내가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급식도 오늘은 맛이 없다.
게다가 사래까지 들리고 소화도 안된다.
꾹 참고 있던 믹스커피가 너무 생각난다.
"부장님~"
컴퓨터 작업을 하던 교무부장선생님이 날 쳐다본다.
"부장님, 제가 웬만한 건 아이랑 이야기를 하고 끝내는데 오늘 일은 부모님께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망설여지네요."
"그래 무슨 마음인지 알겠다."
"네, 가능한 부모님께 연락을 안 하고 싶고 그렇게 해왔는데, 이건 갈팡질팡합니다."
"내 생각은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요즘은 참 고민되네."
"네 고민해 봐야겠어요."
뒤돌아 교실로 가는 나를 향해 부장님이 말씀하신다.
"근데~ 기대는 하지 말고~"
"기대는 하지 말고~"라는 부장님의 말씀이 가슴 깊게 들어왔다.
기대라...
나의 기대는
학교에서의 아이 모습을 알고 부모님이 더 아이의 학교 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것.
아이 마음에 빈 곳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채워주는 것.
좀 더 매력 있고, 예의 바른 아이로 함께 키우는 것.
맞다. 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는 하지 말고~"
"네,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집에서 더 교육시키고 친구들에게 피해 주지 않게 가르치겠습니다."라는 말
"네, 저도 학교에서 더 잘 자랄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안 하련다.
그냥 이번에도 진우, 너와 나만 알자.
진우가 마음공부를 써왔다.
"진우야, 넌 누구보다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이잖아."
"네"
"진우는 똑똑해. 잘해.라는 말을 듣고 싶잖아."
"네"
"그런데, 너의 행동이 네가 원하는 친구들의 인정과 인기를 가져다 주니?"
"아니요."
"그래, 선생님이 보기에도 그래. 진우행동이 수업에 방해된다고 하잖아. 그런데도 계속할 거야?"
"아니요."
"혹시,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인기 많아지는 방법을 모르는 거야?"
"어... 네.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선생님이 그 방법을 알려줄게. 그 방법대로 행동할 수 있겠어?"
"네"
"내일부터 시작하자. 내일 우리 반 친구 3명에게 구체적인 칭찬이나 격려의 말을 해. 그리고 나한테 말해줘. 네가 어떤 말을 했는지, 그때 그 친구는 어떻게 반응했는지. 할 수 있겠어?"
"네"
"그리고 진우야, 오늘 너는 영화를 슬프게 했어. 친구를 슬프게 하지 마."
"네"
"넌 오늘 잘못했지만 선생님은 네가 달라질 거라 믿어. 우리는 3월 2일에 만났잖아. 선생님은 우리가 이 교실에서 헤어지는 날 그때 진우의 모습을 평생 기억할 거야. 알겠지? 그리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
"네"
"그리고 진우야 이 마음공부는 부모님께 보여드렸으면 좋겠다. 집에 가서 오늘 일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들어봐. 선생님이 사실 이걸 집에 보낼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이 더 나은 진우가 되는데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용기 내서 말씀드릴 수 있어?"
"네"
마음공부를 들고 집에 가는 네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겁겠지만, 영화의 울분과 울먹임에 대한 책임을 너도 느껴야 하지 않겠니.
영화 부모님이 오늘 영화의 그 모습을 보셨다면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래서 선생님은 네 부모님께서 오늘 일을 아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부쩍 겁이 많아진 선생님이지만
이런저런 안 좋아질 수 있는 상황은 피하고 싶은 선생님이 되었지만
내 진심은 여전히 널 잘 키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