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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양파씨 Feb 10. 2021

아예 재활용을 그만둡시다

아프리카에서 배우는 쓰레기 재활용


"재활용"이란 면죄부를 주다


"군대에서는 쓰레기로도 애들을 갈굴 수 있는 거 알아?" 남편의 군대 시절, 재활용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단다. 쓰레기를 아주 칼 같이 분리배출을 하는데 플라스틱 중에서도 PP, PET, Others 등 종류별로 씻고 구분해서 내놓았다. 제대로 못하면 분리수거장 담당 병사에게 퇴짜 맞고 갈굼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그러던 어느 날, 한 병사가 심부름 차 분리된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덤프트럭을 따라갔는데 목격한 광경은 충격이었다. 병사들이 그렇게 구박받아가며 기껏 분리 배출한 쓰레기는 결국 한 땅 구덩이에 우르르 쏟아져 매립되고 있었던 것이다. 분리배출은 결국 생활규율이었을 뿐(또는 병사를 갈구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재활용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던 셈이다.

 

2015년 한국의 1인당 연간 포장용 플라스틱 소비량은 61.97kg으로 세계 2위를 기록했다.(a)  재활용하니까 상관없다고? 2018년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재활용률은 87%에 달하는데, (b) 이 자랑스러운 재활용률은 2018년 중국의 폐비닐 금수 조치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며 그 민낯이 드러났다. 해외로 수출해버리면 재활용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 한국의 재활용품 선별장에서도 “하루 들어오는 폐기물 대부분을 소각장으로 보내"고, 실제 “재활용되는 양은 전체의 30~40%” 뿐이다.(c) 심지어 해외로 수출되는 쓰레기가 정말 재활용이 될까? "어차피 재활용할 거니까"라며 플라스틱에 한 없이 너그러워진 것은 아닌지. 재활용 정책은 일회용 쓰레기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죄책감 없이 소비재를 구입하도록 소비를 조장하는 면죄부가 되어버렸다. 






정책 없이도 꿈틀대는 재활용 시장

한 미용실 앞에 플라스틱 병을 따로 모아뒀다. 이런 모습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지 않는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 같은 것도 당연히 없다. 언뜻 보기엔 아주 엉망인 것 같다. 공식 통계로는 전체 플라스틱의 5% 정도 만이 재활용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매립장도 항상 부족해서 아비장 같은 대도시 근교는 쓰레기로 아우성이다. 


나만 해도 수돗물의 안전성에 확신이 들지 않아 특히 생수병을 샀다. 우기에는 도시 내 홍수로 인한 시설의 침수가 잦고, 하수처리 시설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강으로 오염물이 방류된다. 한국에서 처럼 분리수거를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재활용을 하고 싶어도 안되니 죄책감을 느꼈다. 


잘 들여다보면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재활용이 꽤 잘 되고 있다. 길거리에는 플라스틱 병을 줍기 위한 꼬맹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처음엔 꼬마들이 길거리 청소 알바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플라스틱 병을 모아서 파는 거였다. 이런 꼬맹이나 주부들은 모아둔 플라스틱 병을 모아서 중간상인 격의 아낙들에게 병 10개에 40원 정도에 판다. 이 아낙들은 자기 몸집보다 두세 배는 큰 포대를 끌고 매일 같이 동네를 순회하는데, 이걸 시장에다 다시 내 다판다. 시장에서는 이것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는 셈이다. 이렇게 모아진 플라스틱 병들은 세척 후 땅콩이나 쌀알 따위를 담는 용기로 시장에서 재사용된다. "돈"이 되니 자연스럽게 재활용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생활밀착형 재활용 실태가 통계에 제대로 잡힐 리가 만무하다.





생활 속에서 녹아있는 재사용, 재활용

(좌) 길거리 좌판에는 중고의류를 판매하는 상인이 흔하다 / (우) 골목에서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민간 서비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선진국에서 헐값에 수입해온 중고의류를 사 입는다. 중고의류도 상태에 따라 몇 백 원에서 몇 천 원 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어가 쓰인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다. 우리 사무실을 청소하는 용역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은 항상 "00동 노인회"가 적힌 조끼를 입고 다녔다. 그 외에도 월드컵 때 유행한 붉은 악마 Be the Reds 티셔츠는 길거리에서 아주 자주 눈에 띈다. 얼마나 한국에서 버려진 옷들이 아프리카로 많이 흘러들어오는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집 가정부 Anne만 해도 중고시장에서 구한 한국산 중저가 브랜드의 가방을 자주 들고 다녔다. 물론 한국산인지 알고 고른 것은 아니었다.


 

(좌) 거리 중간중간 배치된 쓰레기장 (중) 적어도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는 현장 (우) 큰길을 돌아다니는 현대화된 쓰레기차


큰길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차가 쓰레기를 수거한다. 우리 집 같은 골목길에 위치한 집들은 별도로 쓰레기를 주 2~3회 치워주는 서비스를 이용한다. 나는 월세를 낼 때마다 1만 원 정도를 쓰레기 처리비용으로 냈다. 골목 주민들이 돈을 모아서 낸다. 일단 내가 쓰레기를 밖에 내놓으면, 우리 집 건물 관리인이 일차적으로 쓸만한 것을 챙긴다. 내가 내놓은 생수병도 꼭 따로 챙긴다. 이차적으로 쓰레기 처리업체 사람들이 오면 또 이것저것 사용할 만한 것들을 챙겨간다. Anne은 내가 요구르트를 먹고 내놓은 용기를 집에 챙겨간다. 나중에 보니 도시락통으로 쓰고 있었다. 다른 집에서도 자잘한 텀블러부터 귀걸이 같은 것 까지 망가져서 버린 물건을 가정부가 주워서 쓰고 있더라는 이야기가 흔히 들렸다.  


"가난하니 어쩔 수 없이 재사용하는 거지"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Thrifting" 이라부 르는 중고 쇼핑이 젊은 세대에 굉장히 유행하면서 덩달아 중고의류 가격이 상승 중이다. 유튜브에서는 "Thrift queen"라고 불리는 중고 쇼핑으로도 옷을 잘 입는 유튜버들이 스타덤에 오른다. ThredUp, Poshmark, Depop 등등 중고의류를 사고파는 플랫폼도 활성화되어 이를 활용한 부수입을 창출하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다. Goodwill 같은 곳에 옷을 기부하면 연말정산에 기부 인정도 받을 수 있다. 재활용이 "정책상으로는" 잘 되어있는 한국에 부족한 것은 바로 이처럼 폐기물을 자원으로 보는 시각과 시장이다. 


풍요 속에서 사는 우리들은 사고 금방 지겨워지면 내다 버리는 것이 습관이다. 의식하지 못하고 내다 버리는 쓰레기가 다른 이들에게는 자원이다. 그 흔한 요구르트 용기조차 말이다. 물론 내가 내놓은 쓰레기를 다른 사람이 뒤져서 재사용한다는 게 썩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내게 필요 없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가치가 된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생리대 같은 쓰레기들은 (언제 어떻게 헤쳐질지 모르기 때문에) 몇 번씩 꽁꽁 싸서 버려야 했다.  이처럼 코트디부아르에서 지켜본 생활 속 재활용, 재사용은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도 배울 점이 있다. 한국처럼 분리수거 종류만 계속 늘리고 규제만 강요해서는 한계가 있다. 폐기물이 "돈이 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순환경제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다.


한국의 재활용 쓰레기의 질이 낮은 원인에 역설적이게도 재활용 촉진과 쓰레기 배출 감축을 위한 종량제 정책도 연관되어 있다. 재활용이 안 되는 플라스틱들은 종량제 봉투에 담아야 하지만, 봉투도 곧 비용이기 때문에 그냥 분리수거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너무 많은 환경 정책이 실제로는 환경을 해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부분이다. 


재활용이란 명목으로 더 이상 면죄부가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 우린 사실 죄책감이 좀 필요하다.






부첨.


1. 업사이클링: 쓰레기 아트 

좀 더 재미있는 예시도 코트디부아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념품 가게 따위를 방문하면 쓰레기를 재활용해 만든 작품이 많다. 이런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장인들은 꽤나 "아티스트"로 대접받는다. 

(좌) 하이네켄이 가면으로 / (우) 병뚜껑도 수탉으로 재탄생했다


2. 재활용 플라스틱 호텔

70만 개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호텔


아비장의 석호에는 유명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호텔이 있다. 아비장의 플라스틱 문제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던 한 프랑스인 사업가가 건축했다. 작은 규모지만 숙박시설, 노래방, 레스토랑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태양열 에너지를 주로 사용한다. 10만 원 정도의 가격이면 식사를 포함해 묵을 수 있다(C). 플라스틱 문제를 혁신적으로 접근한 예시로 유명했는데 아깝게도 작년에 며칠간의 폭풍우가 칠 때 호텔 전체가 바다로 떠내려가 버렸다. 


3. 재활용 플라스틱 학교

플라스틱으로 만든 벽돌로 학교를 짓는 프로젝트가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사진출처: UNICEF 홈페이지) 

코트디부아르 북동지역에는 UNICEF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벽돌로 학교를 짓고 있다. 레고와 같이 벽돌을 끼워 맞추는 방식이다. 환경문제와 교육, 고용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한 번에 다루는 혁신적인 프로젝트로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아비장에서 여러 공장들이 위치한 요푸공 지역에는 플라스틱으로 벽돌을 만드는 공장도 있다.


4. 재활용 쓰레기 놀이터 

아비장 근교에서 동네 아이들을 위한 쓰레기 놀이터를 운영하는 NGO 350을 방문했다. 동네 아이들은 주말마다 모여서 시민활동과 들과 함께 해변 쓰레기를 주워서 동네의 작은 놀이터를 만들어 간다. 

(좌) 시민활동가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폐기물로 장난감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 와중에 경희태권도 티셔츠가 눈에 띈다 (우) 쓰레기로 만든 장난감



출처

(a) [팩트체크] "한국 플라스틱 소비 세계 최대" 언론보도, 사실일까? - 스냅타임 (edaily.co.kr)

(b) 2018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 / 환경부 환경관리공단

(c) 조선일보 (링크: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7/2018050700128.html)

(d) Insider 기사 2019 (링크: https://www.insider.com/floating-resort-island-made-of-700000-plastic-bottles-and-waste-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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