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대신 글을 써줄 수 있겠냐?'는 그때의 제안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회사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사람이었는데, 변호사를 찾아가도 속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장문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긴 문장을 적어 메일로 보내왔었다. 요약하자면, 자기가 당한 일들을 글로 풀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요청이었고,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넋두리에 불과했다. 핵심은 빠진 글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그 글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어슬렁대며 어지럽혔다.
궁금한 마음은 앞섰지만, 일은 돈과 연관되기에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웠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라면 분명 돈이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연민의 정 같은 것들이 마음을 뒤숭숭하게 흔들어 놓았기에, 그냥 거절하면 찜찜한 마음 안고 몇 날 며칠을 보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연락처를 남겼다. 자세한 내용은 전화로 이야기하자고 메일을 보냈는데, 메일 보낸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급하긴 급한 모양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전화를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잠깐 나눈 인사말을 통해 의뢰인의 마음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했다. 내 개인적인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참을 통화했다. 처음 통화인데 생각보다 길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 돈 얘기를 먼저 꺼내지 못한 게 통화를 길어지게 한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대충 들어봐도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그렇다고 무상으로 글을 써줄 수는 없었다. 이 일을 하기 전에 ngo 단체에 근무하면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돕는 일도 4년 넘게 해왔던 터라, 돈 한 푼 없는 사람이라면 무상으로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다. 그저 이야기를 듣고 글로 푸는 것이었기에, 그 일을 계속 해왔기에, 나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 사람에겐 이 일이 절박하고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하였다. 말미에 그 의뢰인이 먼저 원고료를 물어봤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얼마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으니 생각해보고 전화를 하겠노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고민이 앞섰지만, 형편이 어려운 듯 하니 원고료는 형식적인 수준으로 받으려 마음먹고 수화기를 들었다. 평소 받던 고료의 20% 정도 수준을 제시했다. 나 역시 원고료가 비싼 작가가 아니었기에, 부담 없는 수준일 거라 아니 거저 써주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반응이 좀 시큰둥했다. 원고료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따뜻하다 못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양하던 말투가 차갑게 식어버린 것이다.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그 순간 들 정도였으니.
내심 감사의 인사를 기대했던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럼 그냥 처음부터 공짜로 해달라고 하던가, 싶은 마음이 들어 순간 욱했지만, 나 또한 냉정하게 "그럼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하고 끊었다. 그 후로 연락은 없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필요할 거란 생각에 기다려 봤지만, 기다린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과연 그가 만났다는 변호사에게도 가격이 맞지 않아 의뢰를 하지 않았을까? 변호사 비용은 이보다 수십 배나 더 비쌀 텐데, 그걸 모르고 있었을까. 작가의 글은 자격증을 여하지 않으니 비용은 더 저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나 스스로의 망상에 불과했고, 그 일은 그냥 그렇게 끝났다.
다소 허무한 결론이지만 이 이야기가 나에게 주는 교훈은 적지 않았다. 바로 나 스스로 판단하고 걱정하고 위해주는 마음, 그 마음이 때로는 상대방에게 전해지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을 믿으며 살아온 세월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믿음은 그저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지 말고, 의뢰인과 적절한 선에서 먼저 타협을 했더라면 괜한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나에겐 큰돈이 상대방에게는 적은 돈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는 그 일감을 어떻게 받아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우선 그 일을 맡게 될지 말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우선순위를 정해놓지 않은 채로 혼자 고민해봐야 시간만 낭비할 뿐, 아무 소용없다. 모든 일은 철저히 돈거래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돈이 먼저 정리가 된 후에야 비로소 일은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내가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한다 한들 상대방은 알아주지 않는다. 정가가 매겨진 물건을 판매하는 일이 아닌 이상 상대방은 저렴한지 아닌지 여부를 모른다는 말이다. 물론, 원고를 사고파는 회사의 경우는 에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의뢰인을 탐탁지 않게 여긴 나 자신에게 더 큰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의뢰인은 원고를 사고파는 일을 하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내가 100원을 제시 한다한들 그 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만약 500원짜리를 100원에 주겠노라고 해도 정가가 매겨진 일이 아닌 이상 그렇게 파격적으로 일을 해준다는 현실을 부정했을 수도 있다. 각박한 세상에서 80%를 할인을 제시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겠느냔 말이다. 그냥 생색내기에 불과한 제시라고 내 호의를 평가절하했을 수도 있다.
그저 한 번 겪었던 일화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기억은 평소 머릿속 한편에 조용히 숨어있다가, 필요한 때가 되면 짠 하고 등장하여 '그래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라고 나를 다잡아 주곤 한다. 별거 아닌 일이라고 해도 상관없고 지극히 당연한 일을 과장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누군가에겐 이러한 일들이 지극히 당연한 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에겐 일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소통 방식에 대한 깨달음을 주었다는 의미가 있는 사건이기에, 이렇게나마 기억하고 되새길 뿐이다.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프리랜서들의 고충은 이런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