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없어 손 놓고 반백수나 다름없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몸속에서 조급증이라는 녀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마련이다. 그 녀석은 '걱정'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나를 자극하고, 나아가 일에 대한 불확실한 '미래'까지 비춰가며 '회의감'에 빠지게 만든다. 그럴수록 침착하게 대책을 세워나가야 하는데, 마음처럼 쉽게 몸이 따라오지 않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연락이 뜸한 거래처에 안부를 묻는 척하며, 슬쩍 떠보기도 한다. 그러다 운 좋게 일감을 얻게 되는 일도 종종 있다. 마침 잘됐노라고, 안 그래도 연락 한 번 하려고 했는데, 연락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일감을 던져주기도 한다.
과연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면, 그 일감이 나에게 들어왔을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경우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없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내가 먼저 연락했기 때문에 일감을 받을 수 있었다'가 맞을 것이다. 기획자나 PM은 대게 가장 최근에 일했던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일을 맡아서 해줄 사람의 역량은 차치하고 말이다. 나란 존재 자체를 잊고 있지는 않았더라도, 나보다 최근에 일했던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일감을 의뢰하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내가 일감을 받을 확률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점차 그 거래처 그 담당자와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멀어지게 된다. 특히 일할 사람이 넘쳐난다면, 나란 존재 자체가 그 거래처 데이터 목록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비단 이쪽 분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프리랜서를 고용하는 분야라면 모두 적용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렇다면 현실에 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소위 영업이라 불리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연락이 뜸한' 거래처에 먼저 전화를 하는 것도 이에 해당하는 행위이다.
물론 내 업무 능력이 마음에 안 들어 연락을 끊은 경우라면 이에 해당하지 않지만, 해당 여부는 일감을 의뢰하는 사람만 알고 있다. '아마도 내 능력이 부족해서 연락을 안 하는 거겠지'라는 섣부른 판단은 절대 금물이다. 따라서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그가 나를 잊지 않도록 내 존재를 끊임없이 드러내야 한다. 그래도 일감을 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그때는 쿨하게 포기해도 좋지만 시도 조차 해보지 않으면 일말의 가능성마저도 놓칠 수밖에 없다.
'내 능력이 뛰어나면 먼저 연락해 올 텐데 굳이 내가 먼저 연락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뒤집어 되물어 보자. '내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아마도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고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라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큰 판단 착오이다. 판단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자신감과는 무관한 상대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판단을 나 스스로 내리는 일은 자격지심만 부추기는 행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 흐르듯 능력에 대한 판단은 나에게 일감을 주는 사람의 판단에 오롯이 맡기는 것이 마음 편하다. 물론, 제 아무리 '주변에서 다들 글 잘 쓴다고 칭찬하는데, 그 정도면 내 능력이 뛰어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클라이언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뢰했던 일감에 대한 성과만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잘 쓴 글이라고 한들, 클라이언트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글은 잘 쓴 글이 아닌 게 된다. 적어도 업무적 관계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굳이 '내 능력이 뛰어나면 먼저 연락해 올 텐데...'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클라이언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다.
클라이언트의 판단은 결코 객관적 지표가 되지 않는다. 클라이언트 역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 클라이언트가 하청을 받을 경우도 그에게 요청하는 클라이언트의 말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지 않다. 그저 클라이언트 건 그 클라이언트의 클라이언트 건, 각자 스타일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객관적 지표가 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클라이언트는 나에게 일을 줄지 안 줄지에 대한 결정권이 있을 뿐이다. 그 결정권을 가진 이가 믿을만한 인간이건 믿지 못할 인간이건 상관없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갈 수도 있는 일감을 나에게 돌리기 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클라이언트의 판단을 따르라는 것이다.
나아가 클라이언트의 판단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내 능력이 뛰어나면 먼저 연락해 올 텐데...' 이 질문을 하는 순간 나에 대한 자신감만 떨어질 수도 있는데, 클라이언트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더 힘들어지겠나. 그러니 나 먼저 생각하자. 그리고 클라이언트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세우되, 그 반응에 내 능력을 대입하지는 말자.
무엇보다도 자격지심을 내려놓고 자신감을 끌어올리자. 회사 생활이라면 승진이나 보너스 같은 보상을 통해 능력을 검증받을 수 있지만, 프리랜서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칭찬하고 다독이며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는데, 나마저 스스로에게 박하게 평가한다면 그 얼마나 슬프지 않겠나? 생각해보자. 그러니 틈나는대로 스스로 다독이고 잘했다 칭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