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과 나
세잔과 졸라는 왜 결별하였을까? 누구의 잘못 이었을까? 그들은 모두 훌륭한 작가이고 나에게도 호감이 가는 인물이기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그들의 관계를 정확히 알고 싶었다. 세잔과 졸라의 우정과 갈등을 다룬 영화를 봤다.
2016년 개봉한 <Cézanne et moi>라는 프랑스 역사 드라마이다. 원제는 '세잔과 나'인데 국내에서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으로 개봉됐다. 졸라는 세잔을 결코 위대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럼, '나의 위대한 친구'란 무슨 뜻일까 궁금하다. 졸라가 세잔을 위대하다는 생각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세잔은 위대하다는 뜻인가? 아니면 둘 다 인가? 나는 국어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정확한 의미는 모른다. 사실과는 다른 제목인 듯하다.
졸라는, 아버지는 이탈리아 이민자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인 혼혈이다. 따라서 졸라는 이탈리안 성이다. 졸라는 중학교 때 댐 공사를 하는 아버지를 따라 파리에서 엑상프로방스로 전학을 왔다. 이민자 출신에 타지인 이었던 졸라는 아이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구타까지 당한다. 고흐가 아를에 갔을 때도 일어났던 같은 문제가 졸라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도 이민자의 나라인데 텃세가 유별났던 것 같다. 이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바로 폴 세잔이었다. 세잔은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고 당시 덩치도 제법 컸었다. 다른 아이들이 무시할 수 없었으리라. 그 둘은 금세 친해졌고 내내 형제처럼 같이 성장하였다.
졸라는 파리에 가서 먼저 자리를 잡은 후 세잔을 불렀다. 세잔은 졸라의 주선으로 인상주의 화가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마네, 모네, 피사로, 르누아르 같은 이들이었다. 당시, 마네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은 당선전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졸라가 이를 옹호하는 글을 써 주었고 마네는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세잔은 자기에게도 좋은 글을 써 달라고 졸라를 졸랐다. 졸라는 거절했다. 졸라가 마네에게 돈을 빌려 어려운 형편의 세잔의 동거녀에게 매달 생활비를 주었다 것은, 나중에 밝혔다.
"그림에서 보아야 할 것은 풀밭 위의 점심 식사가 아니라, 빛의 큰 부분으로 모델링 된 이 단단한 살, 이 유연하고 튼튼한 직물,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경에 녹색 잎 가운데 사랑스러운 흰색 점을 만드는 셔츠를 입은 여성의 맛있는 실루엣입니다. 마침내 이 광활하고 공기가 가득한 앙상블, 이렇게 단순하게 표현된 자연의 한 구석, 예술가가 그 안에 있던 특별하고 희귀한 요소들을 모두 담아낸 이 감탄스러운 페이지 전체 말입니다."
- 1867, 에밀 졸라의 비평 중 발췌
졸라는 소설 <목로주점>으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되었다. 프랑스 최초의 베스트셀러였다. 부와 명성을 동시에 얻었다. <목로주점>은, 졸라가 쓴 '루공-마카르 총서' 총 20권 중 하나다. 루공가와 마카르가 후손들의 삶과 비애를 다룬 소설집이다. <목로주점>의 내용은 이 글 1~6편에 소개되어 있다.
졸라는 세잔의 고향집에 그의 부모님을 뵈러 갔다. 세잔의 그림을 선물로 가지고 갔다. 졸라의 집안을 그린 그림이었다. 괘종시계에 바늘이 없는 이유는, 그 둘의 영원한 우정을 상징한다고 말해 주었다.
졸라는, 세잔 몰래 그의 동거녀에게 매달 생활비를 주었다. 이때 둘이 다투는 걸 본의 아니게 듣는다. 이 내용은 나중에 졸라가 쓴 <작업>이란 소설에 그대로 등장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