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발한다!
1898. 1. 13일
역사적인 날이 왔다.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가 나타났다. 공화국 대통령 포르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였다. 졸라는 당시 세계적 명성의 정상에 서 있었고, 그의 소설은 거의 모든 문명국에 번역된 베스트셀러였다.
긴 편지를 끝내며 졸라는 다음과 같이 고발했다.
"나는 뒤파티 중령을 고발합니다."
"나는 메르시에 장군을 고발합니다."
"나는 비요 장군을 고발합니다."
"나는 국방부를 고발합니다."
"나는 군사법정을 고발합니다."
"나는 명예훼손죄로 기소될 수 있음을 알고 이를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3만 통의 편지와 전보가 졸라의 호소를 환영했다.
마크 트웨인은 ⌜뉴욕 헤럴드⌟지에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졸라를 향한 깊은 존경과 가없는 찬사에 사무쳐 있다. 군인과 성직자 같은 겁쟁이, 위선자, 아첨꾼들은 한 해에도 100만 명씩 태어난다. 그러나 잔 다르크나 졸라 같은 인물이 태어나는 데는 5세기가 걸린다."
* 클로드 모네(왼쪽)와 조르주 클레망소
이 공개서한은, 모네의 오랜 친구인 조르주 클레망소(1841-1929)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의사이자 정치가인 그는, 자신이 창간한 <여명 L'Aurore>라는 신문에 이 편지를 게재했다. 클레망소는 훗날 이렇게 술회했다.
"프랑스를 치명적 위기에서 구한 것은 사상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였다."
* 조르주 피카르
에밀 졸라는 영웅이기는 했으나 순교자까지는 아니었다. 진정한 순교자는, 새로 임명된 방첩부대장 조르주 피카르 중령이었다. 그는 군인으로서의 모든 것과 목숨까지 바쳤다.
피카르는 부임 직후 명세서의 필적이 드레퓌스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참모차장 공스 장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군, 그는 무죄입니다."
"장군! 장군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정말 구역질이 납니다. 이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지는 않겠습니다."
최연소자 장군이 될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가 진실을 위한 순교자의 길로 나선 것이다. 그는, 군사기밀 누설죄로 체포되었고 파리에 있는 몽 발레리앙 요새에 투옥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