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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투왈 Sep 03. 2024

1950년으로 떠나는 길

민둥산을 넘어


어느새, 차는 굽이굽이 산 중턱에 올랐다. 아내가 운전하고, 나는 차 뒤 좌석에 누워 있었다. 제천 IC를 빠져나와 영월을 지났고, 민둥산 일 거라 생각했다. 몸을 일으켜 창밖을 보았다. 겹겹이 쌓인 산들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하늘은 솜사탕을 뿌려 놓은 은하수 같았다. 하얀 구름이었다. 날씨는 맑았지만 장마철답게 수증기를 머금고 있는 듯 뿌옇게 보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방울이 햇살에 부딪쳐 대기가 흐릿한 빛으로 반짝였다.


* 2017년 몽블랑 트레킹에서


2017년 알프스에서 본 그림 같은 마을 풍경이 떠올랐다. 비가 내려 무지개가 뜨고 이내 사라졌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 마을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런 알프스보다 더 환상적인 풍경이 스치듯 지나갔다. 아내에게 차를 돌려 다시 가보자고 했다. 왕복 2차선 도로에, 하늘길 같은 아슬아슬한 구간이었다. 인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나가는 차가 전혀 없진 않았다.

조그만 갓길에서 차를 간신히 돌렸다. 까마득히 조그만 마을이 보였다. 무릉도원이 아닐까, 속세를 벗어난 느낌이었다.

다시 차를 돌려 목적지로 향했다. 어머니의 고향 정선으로 가는 이 길은, 마치 호그와트로 가는 비밀의 문 같았다. 어머니의 기억은 1950년에 머물러 있었고, 그런 어머니의 영정사진과 함께 우리는 2024년에서 1950년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첫 목적지, 화암약수에 도착했다. 그림 같은 이 마을의 8경 중 하나이다.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물 맛이 특이하다. 마시면 짜릿짜릿한 맛이 오색약수 보다 훨씬 세한 맛이 난다. 어린 나이엔 제법 먼 거리인데, 외할아버지를 따라 자주 오곤 했던 추억의 장소다.

우리 가족은, 내가 중학생 때 딱 한 번 여름휴가로 외갓집에 갔었다. 장마에 모든 길이 끊겼었다. 첩첩산중 오지 중의 오지에 고립되었다. 민둥산을 걸어서 넘어갔다. 다행히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해지기 전 어둑어둑할 때쯤 제천역에 도착할 수 있었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보았던 콸콸 흐르는 민둥산 계곡물을 오늘 다시 만났다.
추위와 공포에 떨면서 산을 넘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머니의 고향 마을 초등학교로 발길을 재촉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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