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투왈 Sep 11. 2024

어머니는 살아 계시다!

내 몸에! 내 마음에!


어머니를 면회 갔던 다음 날 새벽, 슬픈 비보가 날아왔다. 그날이 마지막 면회가 되었다. 아내와 가기로 했던, 신안으로의 여행은 잠시 미뤄 두기로 했다.

* 화암 약수



어머니가 꼭 가시고 싶어 하신 길, 1950년 어머니의 피난길, 그 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2000년 무렵 어머니와 가보려 했던 길이지만, 그 해 가을 허리디스크가 재발했다. 걷는 것조차 불편했고 자동차 운전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강원도 정선에 도착한 첫날. 내가 어릴 적 놀던 '용마소'를 찾았다. 옛날에는 '용산소'라고 했었는데 그때는 용이 죽은 산소쯤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이 지명은 아기장수와 얽힌 비극적인 전설이 내려온다. 나는 어린 나이에 이런 전설이 있는 줄은 몰랐지만 뭔가 음산하고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지만 경관이 워낙 빼어나서 자주 멱을 감고 놀았던 추억의 장소였다.

"조선 중기, 이 마을에서 태어난 아기장수가 태어났다. 그 부모는 역적으로 몰릴 두려움에 어리석게도 아기를 죽였다. 죽은 지 사흘 되던 날,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거대한 용마가 나타나 집 주위를 맴돌며 아기를 찾았다. 용마는 아기가 없음을 알자 미친 듯이 날뛰다가 소에 빠져 버렸다."




그림바위, 화암마을을 떠나 민둥산을 넘었다. 구름도 쉬어 간다는 '몰운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여름의 무법자 개망초가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햇빛에 반짝였다.


한 여름의 새벽, 정선에서의 첫 일출은 하늘이 온통 불타는 듯 오렌지 빛으로 수놓았다





여행 둘째 날, 영천 은해사에 도착했다. 그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이었다.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그곳은 피안의 세계라 느껴졌었다. 아름답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이었다.


* 은해사의 해바라기


 어느 날, 문득 책상 옆에 놓인 '가족 관계 증명서'를 봤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발급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성함 우측에 '사망'이란 표시가 보였다. 낯설었다.

정말 돌아가신 걸까? 납득하기 힘들었다. 믿고 싶지 않은 걸까? 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모든 인간은 죽는구나.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 죽는 건, 살아 있음과 죽음 이란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사망'이란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힘든 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태주 시인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시인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지 않았다"

시인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신다고 했다. 어머니의 일부가 내 몸 안에 아직 있기 때문에, 본인이 죽기 전까지는 어머니도 여전히 살아계신 거라고, 본인이 죽어야 비로소 어머니도 돌아가시는 거라고 했다.

나태주 작가의 이 말씀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에게 '사망'이란 말이 언어적인 의미일 뿐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살아 계시다!
내 몸에, 내 마음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