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HHD로부터 카톡이 왔다. UDT를 연상케 하는 이니셜의 그는 등산 마니아다. 2017년 그와 함께 알프스 몽블랑 트레킹을 갔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갈 계획을 이미 세웠었고 동반자를 구했고 나는 무임승차했다.
몽블랑은 알프스 최고봉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에 걸쳐 있고 피크는 프랑스에 있다. 그 둘레길을 한 바퀴 도는 코스를 Tour De Mont Blanc(투르 드 몽블랑)이라 하고 샤모니에서 출발하여 다시 샤모니로 돌아오는 165킬로 정도의 거리다. 가이드 없이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가는 산행이었기에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가장 중요한 코스 연구와 산장 예약도 그가 도맡아 했었다.
단연코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이었다. 우리는 매년 이름난 트래킹 코스를 가자 했었다. 그러나 약속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당시 대장인 HHD는 교수직이라 방학이 있었는데 그 후 방학이 없는 보직으로 바뀌었다. 연달아 코로나가 찾아왔다. 코로나가 끝날 무렵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새로운 직업에 적응해야 했기에 경황이 없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좋았던 추억으로 우리는 큰 후유증에 시달렸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그의 카톡은 느닷없이 뜬금없고 생뚱맞은 것이었다.
* 길에서 우연히 만난 프랑스 20대. 우리는 금세 친해졌고 일행처럼 함께 다녔다.
"뉴질랜드 밀퍼드 트레킹(Non Guided)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반 사정 고려하여 12월 28일(토) 출국, 2025. 1. 6.(월) 귀국하는 일정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쁜 메시지였다. 그 명성은 익히 들었으나 다시 찾아보니 이 세상 가장 멋있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트레킹 코스라 하고 혹자는 그중 최고의 하이킹 코스라고 한다. 당연히 옆에 있던 아내에게 즉시 허락을 얻어냈다. 2017년에 같이 갔던 친구라고 하니 새삼 검증 같은 건 필요치 않았던 것 같다. 나는 2019년 마지막 해외여행을 갔었다. 2020년 은혼 기념 여행도 코로나로 캔슬했었고 코로나 이후 보복 여행이 시작됐을 때에는 집안 사정으로 가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아직 불편한 허리 디스크 때문에 일단 코스와 난이도를 살펴봤다. 총길이 53.5킬로. 3박 4일의 일정이고 Day 3만 빼면 험하지 않아 보였다. 몽블랑 트레킹보다는 일정도 훨씬 짧고 쉬운 코스였다. 그래도 염려는 된다. 12월까지 상태를 보기로 했다.
또 그동안 집을 비울 수 있는 것인지,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없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는 마치 내가 없으면 지구가 망할 것처럼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처구니없는 착각이었다.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해도 이 세상이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내가 죽으면 슬퍼할 누군가를 떠올려 봤다. 소중한 나의 가족과 친구들이다.
12월 28일부터 9일간 제가 없어도 너무 슬퍼하진 마시길 바란다!